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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은 승리이다 (고전 15: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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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e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될 것인데, 마지막 나팔을 울릴 때에, 눈깜짝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f"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고전 15:51-58)

스텐리 존스 선교사가 인도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전도를 듣고있던 회교도 한사람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외쳤습니다. "우리 회교는 당신이 기독교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메다니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를 넣어둔 무덤이 있소. 그것은 마호메트가 역사적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무덤이 없지 않소." 그때 스텐리 존스가 손뼉을 치며 외쳤습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무덤이 비어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신을 섬기거나 죽은 교주를 신격화 해 섬깁니다만 기독교는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부활의 종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에서 주님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성현도 나는 부활이다 생명이다, 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부활을 한 마디로 말하면 승리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대적과 싸워 이긴 승리입니다.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은 세상에 어떤 위대한 사람도 이기지 못한 적을 무너뜨린 크나큰 승리입니다. 그 대적이 누구입니까? 부활은 무엇에 대한 승리입니까?

1.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54)

아담 이후 인류의 최대의 적은 죽음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의 종이었습니다. 이러한 죽음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 승리한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54절에 부활시에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55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지위도 문제가 아니고 돈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관계없고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직 문제는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어떻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단 말입니까? 부활입니다. 부활이 해답입니다. 참으로 부활이 확실하다면 죽음은 잠시의 안식일 따름입니다. 누가 안식을 두려워한단 말입니까? 어제밤 잠자리에 드시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공포에 사로잡혔던 분이 계십니까? 왜 그렇지 않으셨습니까?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다고 보고하셨을 때 "아니라. 저가 잠을 자고 있다고. 그러나 이제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께서 선언하신 유명한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였습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완벽한 처방이요 승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이 승리를 입증하시기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승리를 보장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본문 57절입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렇습니다. 감사할 것 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무엇보다 이 놀라운 감사를 찬양으로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55-56절은 사실은 노래입니다. 죽음을 이긴 승리의 노래요 찬미인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 사망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이길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과거 순교자들이 죽어가며 찬미한 이유가 아니었습니까?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어찌 찬양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믿으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고 살게 된것입니다.-이것 하나만으로도 영원히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자인 것입니다.

2.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바울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그는 언제나 악의 세력에 굴복하며 너무나 무능하게 산다고 고백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 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습니다.(롬7:24) 본문에서는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56절)고 깨우쳐 줍니다. 죽음을 가져온 독침은 우리의 죄였고 우리는 율법에 의해 정죄되고 죽음을 피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활의 희망으로 우리는 죽음의 지배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였다.

이백년 전 영국 폭력단의 일원인 열일곱 살 소년이 회심했습니다. 이 소년은 폭력서클의 주동자중의 하나였던 로버트 로빈슨이라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조지 휘필드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시인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이런 찬송시를 썼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잘못된 친구들을 만나서 죄악된 길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열 아홉 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어느날 너무나 공허하고 지친 모습으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차가 서더니 누군가가 그를 불렀습니다. "혹시 교회에 가시나요?" 교회를 가던 길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타세요. 저도 교회에 가는 길이에요. 같이 가시죠." 로보트 로빈슨은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마차안에서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제 이름은 라비스예요. 당신 이름은요?" "저는 로버트 라빈슨이라고 합니다." "그럼 혹시 '복의 근원 강림하사 ' 그 시를 지으신 로빈슨씨인가요?" "예.. 맞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당신이 지은 시를 통해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았어요." 로빈슨은 숨길 수 없어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저는 시를 쓴 후 또 다시 잘못된 친구들을 만나 죄악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는 너무 괴로와서 죽을 생각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힘으로 안되는 제모습을 저도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러자 부인이 말합니다. "로빈슨씨. 당신이 쓴 시의 세번 째 줄을 기억하십니까?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해서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우리는 연약해서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되지 않겠어요? '주의 은혜 사슬되사' 로빈슨씨 당신의 연약함을 주님은 그대로 받기 원하세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시 회개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붙드실 것입니다."

로빈슨은 부인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교회에 들어가 다시 회개하고 고백했습니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여러분도 이시간 같은 고백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의 사슬이 되어 주십시오. 제 삶을 주께 매어주시고 제 가정을 매어 주십시오. 저를 온전히 주께 드리오니 받아 주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연약한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능성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수없이 넘어지고 제자리 걸음 하는 것 같아도 주님의 몸을 여러분의 몸과 하나로 묶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거룩하게 하십니다. 능력있게 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은헤에 매이면 나같은 사람도 용서함받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 된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은 미움을 이긴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무리들은 자신들이 승리자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목적을 달성하고 자신들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 모든 증오와 미움의 갈등을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땅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 부활의 확신을 품고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통해 사랑을 확산시켜 가셨습니다. 사랑으로 미움을 몰아내는 놀라운 승리를 지금까지 계속 하십니다.

1800년대를 전후하여 영국교회와 영국사회를 부활시킨 정치가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양심이라고 일컬어지던 윌버포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amazing grace의 작사자 존 뉴턴 목사님의 도움으로 그의 나이 26세에 회심의 체험을 하고 깊은 영적인 각성을 하게 됩니다. 그는 매일 2시간씩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영국 땅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었던 노예폐지 운동의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당시의 영국은 노예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기에 노예폐지 운동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교회 친구들과 이런 비전을 나누게 되고 마침내 그는 그들과 클래팜이란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날마다 기도하며 이 일을 추진한 끝에 마침내 1833년 노예폐지 법령이 공포되게 되었습니다. 무려 46년 만의 결실이었습니다. 이 일의 실현을 보고 눈을 감기 전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나 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우리는 함께 이 일을 할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노예 폐지 선언직후 영국의 교회당들은 새 신자들이 물밀 듯 밀려오기 시작했고 한때 그의 영향으로 국회의원 3분의 1이 복음적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이 땅에 이런 부흥이, 이런 교회의 부활 사건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활은 어둠의 권세를 향해 하나님께서 승리를 선포한 인류 역사상 가장 신나고 감격스러운 사건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여러분 자신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전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면 승리자가 됩니다. 죄와 미움과 죽음으로 그리고 온갖 위험한 것을 동원하여 위협하는 어둠의 세력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고 온전한 승리를 체험하며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활신앙을 소유하여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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