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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신앙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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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12-19.

  할렐루야 교회와 김상복 목사님은 우리 한국 기독교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교회이고 목사님이십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많은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독교의 3대 절기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안나오는 사람도 이 세 번은 교회에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 이런 사람을 ETC(Easter, Thanksgiving, Christmas)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대 명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까?

  40여 년 전, 제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 한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유태인입니다. 유태인이 예수를 믿고 목사님이 되셨어요. 저는 그 때 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분이 “Chaplain 신!”(교목이나 군목을 chaplain 라고 말합니다)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예” 하니까 “당신 예수 믿습니까?” 이렇게 물어요. 그 분과 인사할 때 제가 목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목사에게 “예수 믿습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순간 제 기분이 좀 언짢았습니다. 목사보고 예수 믿느냐고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생각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 목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 선교사가 “목사인 것은 압니다. 그래서 ‘목사님입니까?’ 이렇게 묻지 않고 ‘당신 예수 믿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그러면 목사 가운데도 예수 안 믿는 분이 있습니까?”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분이 “예수 믿습니까?”하고 물은 것은 요셉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예수 믿습니까? 오늘이 부활절인데 저는 그 말을 바꿔서 존경하는 성도 여러분들께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참으로 부활을 믿으셔야 됩니다.

  우리 찬송가 앞뒷면을 보면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세 가지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모든 기도의 표준입니다. 기도는 주기도와 같이 해야 됩니다. 제가 전도사 때 파고다 옆에 있는 성동교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 당시 그 교회 당회장은 고 이대영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새벽마다 주기도를 300번을 하세요. 어느 날 제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중국에서 33년을 선교사로 있었는데 한번은 의주로 압록강을 건너오는데 일본 경찰이 붙들더래요. “너 신사참배 안했지? 영창이야.” 영창에 들어가서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주기도를 드렸는데 주기도 오천 번째에 간수가 문을 열고 “이대용 나가” 이러더래요. 그때부터 새벽마다 주기도 300번을 드린다는 겁니다.

  주기도 다음은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표준입니다. 신앙은 사도신경대로 해야 됩니다. 십계명은 행위의 표준입니다. 행위는 십계명대로 해야 됩니다. 신앙의 표준인 사도신경의 제 1조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은 다 따라오고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참으로 믿으면 모든 것은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방언을 한다, 구제를 한다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부활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절)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도 성도들 가운데 “그럴 리가 없어! 부활은 무슨 부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사신 것을 보면 부활이 있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영존성(永存性)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종지부가 아니고 쉼표입니다. 바울은 죽음과 부활을 씨 뿌리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36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42절) 바울은 자연의 원리를 부활의 원리에 적용을 했습니다. 감자를 땅에 심으면 심은 감자는 썩고 없어지지만 그 속에 있는 생명은 싹이 돋아서 올라옵니다. 생명은 영존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내세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다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세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부활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세에 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에 관한 기사, 천년왕국, 신천신지 등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언의 성취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고, 주님의 말씀은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의 성취가 바로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믿어야 합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목회를 50년 동안 했습니다. 70세가 되니까 교회법에 따라서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역을 하면서 제 마음속에 항상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인가? 방언을 해야 되는가? 금식을 해야 되는가?” 저는 목회를 마치면서 신앙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히브리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 않으면 다른 건 다 헛것이요 쇼입니다. 신․구약성경의 제일 기준이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을 믿으면 다른 것도 다 믿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래, 그래! 그래, 그래!” 하는 것이지요. 옛날에 남산 신학교 때 명신홍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너무 너무 달고 맛있으니까 “흅~ 햐! 흅~ 햐!” 꼭 아이들 꿀 빨아 먹는 것처럼 하셨어요. 말씀을 그대로 믿어요. 성경에서 “살았다” 하면 산 줄 믿어야 하고, “준다” 하면 줄 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셋째, 말씀대로 살아가야 됩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야 되고, 말씀을 믿어야 되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활은 예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언의 성취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다 거짓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심으로 증거가 됐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신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죽음에 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신적 존재가 아니었다면 무덤에서 썩고 말았을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신체적 부활입니다. 요즘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신체적 부활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감화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니까 이것이 부활이지 무슨 몸으로 부활을 했냐?”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하셔서 떡을 잡수셨고 “옆구리를 만져 보아라” 의심하던 제자가 만져 보았습니다. 승천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이 주님의 승천을 친히 목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가 있으니까 둘째 셋째도 있는 것입니다. 가을에 농촌에서 고구마 수확을 할 때 고구마 줄기를 들고 당기면 고구마가 쭉 달려 나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둘째 셋째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절대로 부활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합리주의자들은 부활을 부인합니다. “훔쳐갔다” “기절을 했다” 천만의 말입니다. 기절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확인 사살을 했습니다. “무덤을 잘못 찾아갔다” “환상이다” “지어낸 이야기다” 등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기 전날 밤에 어떤 여자가 “저분도 예수님과 함께 한 자”라고 했을 때 “나는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로 저주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주까지 했습니다. 저는 천당 가서 베드로를 만나게 되면 꼭 하나 물어볼게 있어요. “당신이 예수님이 잡히던 마지막 날 밤에 예수님을 보고 욕을 했는데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도 같이 물어보십시다. 거기 보면 저주라고 했거든요. 이건 욕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부인하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보고, 예수님의 손을 친히 잡아보고, 예수님과 함께 저녁을 함께 하고서는 달라져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순교를 했습니다. 야고보도 순교를 했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부활을 친히 목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활을 친히 목도했기 때문에 순교를 한 것입니다.

  여러해 전에 터키 에베소를 갔습니다. 에베소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입니다. 소아시아 7개 교회 가운데 첫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찾아갔을 때 안내원이 그곳의 무덤들을 보고 “이게 다 순교자들의 무덤입니다. 순교자의 무덤이 이렇게 많습니다.” 하면서 순교 현장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다가 로마군대에 붙잡혀 갔습니다. 큰 가마솥에는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로마황제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이 가마솥에 집어넣겠다!” “나의 주님은 나사렛 예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집어넣어라!” 가마솥에 집어넣었어요. 발목까지 부글부글 끓습니다. “지금이라도 너의 주님은 가이사라고 고백해라” “아니요, 나의 주님은 나사렛 예수이십니다.” “더 집어넣어라.” 무릎까지 갔어요. 그래서 배까지, 가슴까지, 목만 남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을 해라.” “아니요, 나의 주님은 나사렛 예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가마솥에 풍덩 집어넣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삶겨 죽은 사람의 무덤이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눈으로 친히 보지 않았다면 가마솥에 삶겨 죽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했으니까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삶겨지면서도 “나의 주님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월이 많이 달라졌어요. 우리가 어릴 때 믿던 그 신앙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부활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무찌르고 승리하셨어요. 저는 할렐루야 교회와 김상복 목사님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가는데 따라서 한국교회가 뒤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할렐루야 교회는 성경적인 보수신앙으로 흔들림 없이 부활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부활의 소식을 모두 나가서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고 그 다음날 어떤 젊은 부인이 우리 아버지가 하시던 과수원에 달려와서 “세원이 아버지~”하고 불러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전쟁이 끝났데요. 그분은 자기 남편이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부인이에요. 남편이 돌아왔거든요. 온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아무개 아버지 전쟁이 끝났대요!” 또 저기 가서 “아무개 할아버지 전쟁이 끝났대요!” 온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부인이 온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전쟁이 끝났대요!” 하듯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여보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여보시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제가 1955년에 남산 총신을 입학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고향에 갔습니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맏아들이 서울에서 공부하고 내려오니까 반가워서 “공부 잘했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 “신학교 가서 공부해 보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더냐?” “예.”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느냐?” “예.” 제가 대답을 잘했습니까? 못했습니까? 신학생이 이만하면 A⁺ 맞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천국이 있다, 지옥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그쯤 대화가 갔는데 아버지께서 날 보고 “너는 아주 나쁜 놈이야. 비양심가야!” 그러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천당이 있다고 한 제가 왜 비양심가입니까? 양심적이죠.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가 하는 말을 알겠느냐?” “모릅니다.” “말할게. 이놈아! 하나님이 계심을 네가 확신하고, 천당이 있음을 확신하고, 지옥이 있음을 확신한다면 왜 우리 친척 가운데 불신자가 있는데 붙들고 울지 않느냐? 이 과수원에 사과 사러 오는 많은 손님이 있는데 뻔히 지옥에 갈 거 아는데 왜? 붙들고 울지 않느냐? 네 말대로라면 지옥 가는 게 분명하지 않냐? 왜 붙들고 울지 않느냐? 울지 않는 걸 보면 네가 신학생이니까 직업적으로 형식적으로 말로만 믿는 게 아니냐?”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평생 그 말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부활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가족 가운데 안 믿는 사람들 붙들고 왜 울지 않았어요? 지옥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여러분 가정에 불신자 가족을 보고 그분 지옥 가는데 붙들고 울지 않았습니까? 저는 우리 아버지가 하신 말씀과 캐나다 선교사가 하신 “당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이 질문이 늘 마음에 와 닿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주께서 부활하신 기쁜 날입니다. 부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세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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