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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라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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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릴리로 가라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무덤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이 여인들에게 다급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가셨음으로 제자들도 빨리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7절) 그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두려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 달려갈 때 부활하신 주님이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 역시“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6:3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빈 무덤이 아니라 갈릴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시 가장 큰 도시였던 로마나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 학문과 예술의 도시인 아테네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또 갈릴리로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고 천사를 통해서도 또 부활하신 직후에도 친히 말씀하셨을까요? 갈릴리로 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빨리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처음으로 만나 주셨을까요?

2.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 보자.

그것은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 보자는 그런 의미입니다.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 순간 제자들에게는 지난 3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갈릴리는 출발의 자리였고 소명의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고 제자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로 갈릴리에서 3년 동안 말씀을 들었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푸른 꿈을 안고 인생을 시작했던 새 출발의 자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신앙의 자리, 변화의 자리였습니다. 사역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이 잡히시던 날 주님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니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들의 모든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사명도 잊은 채 허탈한 심정을 가지고 옛 생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그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보자는 것입니다.
실패한 제자들에게, 배반하고 떠났던 제자들에게, 사명을 잃어버리고 옛 생활로 돌아가버린 제자들에게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지난 날의 실패와 좌절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그곳으로 부르시고 사명을 주었던 그 자리에서 그들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
□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17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제일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하면서도 그들 중에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의심하는 자”라는 말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의심하는 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열 한 제자 중에 몇몇 제자는 앞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을 경배하면서도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입으로 나의 구주라 시인하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도 부활의 주님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혹시 이런 분이 계십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3. 너희는 가라!

그런데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자신을 바라보고 경배하면서도 의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왜 믿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지도 않고, '믿으라'고 강요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부활하신 자신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 직전에 내리신 지상명령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라!”입니다. (19절) 그러면 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19절a) ②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19절b) ③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0절a)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시면서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그 놀라운 약속이 무엇입니까?“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절) 이 말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으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이 보다 더 귀하고 복된 말씀이 있을까요?
세상에 이 보다 큰 축복의 말씀이 있을까요?

4.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라

그러면 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주셨을까요? 또 자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을 꾸짖지도 않으시고“너희는 가라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빈 무덤이 아니라 사역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그 현장은 빈 무덤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부활하셔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논리가 아닙니다. 머리로 이해되고 지성으로 파악 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빈 무덤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에서 만나 주십니다. 제자를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그 현장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특권은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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