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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새롭게 하라! (롬 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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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깊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깊은 계곡도 있고 깊은 바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마음이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유용한 자원은 다름이 아닌 자기 마음의 자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자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 가운데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자기 마음의 자원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도 잘 넘어가는데, 어떤 때는 훨씬 더 좋은 환경도 못 넘어 갑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어떤 환경이 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결정합니다.
성경은 마음을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인간 생명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면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음이 저러하면 저런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아침에 부활의 산 소망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어두움을 물리치고 새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내 안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다 물리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마음 한 번 잘 먹으면 인생사가 편안하지만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여정에서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장애물들도 있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장애물들 가운데서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속에 나타난 분노와 미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의 장애물도 있고, 의심의 장애물도 있습니다. 자신을 번민 가운데에 빠뜨리는 무서운 번민의 장애물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을까? 내 마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안에 있는 장애물들을 정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장애물들이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새벽에 햇빛이 비취면 안개가 사라지듯이 주님의 영으로 인하여 어둡고 답답한 마음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신 소망이 넘치는 아침에 주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우리들 주위에는 보이는 육체의 질병만큼이나 마음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사람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로 받을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마음의 상처야말로 더 빨리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모든 질병이 마음에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육신의 질병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면 육신도 힘이 듭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신도 병이 듭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하면 아무리 힘든 육체적 노동도 쉽게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손길이 상하고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오늘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아픈 상처들이 다 치유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이 땅에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소망을 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십시오. 일반적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그 행위와 태도 속에서 그 상처의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어쩌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성장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방어적이 됩니다. 그래서 내 안의 나를 가두어둡니다. 기억하십시오. 육체의 감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감옥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감옥을 깨뜨리십시오. 나를 억누르고 있는 모든 과거의 어두운 경험들로부터 자유하십시오.

마음에 상처를 깊게 입으면 고통스러운 상처가 잘못된 성격을 만들어갑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 상처로 인해서 삶 속에 무서운 결과를 나타내고 맙니다. 특별히 마음의 상처가 그 삶 속에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내 성장 과정이나 어떤 시기에 내가 남다른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힘듭니다. 무엇이든지 간섭해야만 합니다. 무엇이든지 주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의 마음이 안정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무시하고 반드시 자기 주장이 관철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속상합니다. 신경질이 납니다. 집안의 물건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놓았던 대로 그대로 놓아야지 흐트러지면 화가 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과 깊이 사귀지 못하고 친구들도 별로 없습니다. 사람을 싫어하여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도 싫어합니다.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는 것도 모르고 그런 일에 익숙하지 못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언제나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보다는 야박한 점수를 많이 줍니다. 늘 억울해 하기를 잘하고 내 안에 남을 깎아 내리고 싶은 어떤 것이 있습니다. 예민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교만한 모습으로 비추어집니다. 그런데 나는 모릅니다. 나는 내가 교만한지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부정적인 언어나 부정적인 태도가 늘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난도 고통도 모두가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그래서 마음의 감옥에 자기를 가두어두는 사람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그 사람과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고난을 당합니다. 아내가 고난을 당합니다. 형제자매가 고난을 당합니다. 자식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그냥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이 제일 존경하고 가깝던 사람들의 가슴에 무서운 못을 박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겁니다. 그게 뭐가 그리도 가슴 아프냐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더 큰 모순 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오히려 세상이 다 모순 투성이라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서운합니다. 하나님도 자신에게는 불공평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는 매일 싸늘하고 인정머리 없는 모난 성격으로 발전해갑니다. 이유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상태가 나를 정복합니다. 강박적 사고가 내 모든 힘을 신경에만 쏟기 때문에 신경과민에 걸립니다. 그래서 늘 수면 부족의 상태가 되고 이유 없는 우울증에 걸립니다. 변덕이 대단히 심합니다.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편 32편에 보니까 뼈가 쇠하여지고 여름 가뭄처럼 그 진액이 말린다고 했습니다. 늘 신경이 예민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나누어 줄 것도 없습니다. 주변에 존중할 사람도 없고, 신뢰할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끈기와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피곤하게 삽니다. 마음의 갈등이 뼛속 깊은 곳에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나 번민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을 진작 본인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속에 나도 모르는 울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이 고통의 축적이 내 성격을 잘못되게 만들어왔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이 마음을 잠재의식이라고 합니다. 혹은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잠재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숨겨진 마음의 70퍼센트를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성숙된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숨겨진 잠재의식을 아름답게 다스릴 수가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생명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그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산 소망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석을 땅에 끌고 다니면 여러 것들이 모여서 큰 덩어리를 형성합니다. 인간이 고난과 고통과 해결되지 않는 모든 마음의 아픔들을 그냥 자석처럼 끌고 다니면 다른 고통들이 끌려 다녀서 큰 덩어리를 만들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는 데 다른 사람의 허락까지 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해 가운데서 삽니다. 내 마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데에 다른 사람의 허락이 필요한 줄 압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다른 사람이 꼭 개입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 길의 첫 장애물은 자신이 세워놓은 정신적인 자기 마음의 장애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의 장애물은 남이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장애물의 기준도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장애물에 내가 짓눌리고 내가 계속해서 강요를 받습니다. 내 삶의 모든 자유를 반납하는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 나는 이렇기 때문에 못 고치는 사람이야, 나는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말 꺼야. 자기 정체의 위기에 걸려있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내 마음의 장벽과 장애물. 이것이 피해자들입니다. 이것이 눌려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우리 주님께서 무덤의 문을 열고 나오신 것처럼 내 마음의 감옥을 다 깨고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 우리의 경험이 어떻든 우리의 지난날의 고통이 무엇이든 오늘 하나님의 영으로 자유 함을 받으십시오. 내게 모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꿈을 전하는 꿈의 공급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꿈만 가지고서는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직 그 꿈을 따라서 조금씩이라도 변해 가는 행동만이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킵니다. 꿈만 안고 있는 사람, 꿈만 이야기하는 사람, 꿈만 꾸고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만이라도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오늘 마음의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작은 행동 하나가 역사를 바꿉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먼저 마음을 바꾸는 작은 행동 하나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꿈의 실현을 앞당기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는 것이 힘이 아닙니다. 아는 것은 잠재적인 능력일 뿐입니다. 아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 그것이 진정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행동하는 사람만이 늘 하나님의 기회를 붙잡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바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고치는 일에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마음 바꾸는 일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격과 기질에 대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삽니다. 성격은 후천적인 것입니다. 사실, 나를 울리고 남을 울리는 것은 성격입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성격입니다. 나와 남에게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것은 성격입니다. 결국에는 성격이 주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을 물려주는 것도 좋고 많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성격의 소유자로 키우는 것입니다. 좋은 성격이 그의 인생에 최고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좋은 성격의 소유자로 키울 것인가? 아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게 하십시오.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세워져감을 받는다면 그는 스스로 좋은 성격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격은 하나님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격은 내 자신이 만든 작품입니다. 잘못된 성격은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상처받은 아픔과 고통의 결과이고 우리가 그 동안 경험하고 체험하며 우리에게 끼친 모든 영향들이 모아서 만들어진 자기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모진 환경이 내 성격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본래 성질이 좋은 사람인데 누구 때문에 내 성질이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 성질은 내가 만드는 내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모진 내 성질을 내가 깨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성령을 붙들고 내 성격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성격으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내 안에 내가 할 수 없는 내 잠재된 자아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아프고 상한 마음을 치유 받으십시오.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품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의 이 아침에 여러분의 마음도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결코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내가 마음을 새롭게 해야지' 라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심했던 마음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들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한마디로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골라서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이 마음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아닐까요? 바울은 지금 굉장히 고민스러운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속에 숨겨져 있는 자기도 모르는 마음에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자꾸만 아닌 그 일을 하게 되는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원하는 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원함은 있는데 생각뿐이고 행함이 없다. 결국 마음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인 없는 행위, 의식 없는 행위, 그냥 끌려가는 자기 모습을 그는 스스로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나약한 모습 앞에서 그는 절규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자기도 주장하기 어려운 내 마음의 장애물을 누군가가 처리해 주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누군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치유를 받는 길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고쳐 주시면 나는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주의 성령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상처 난 내 마음을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내 과거의 상태를 만들었던 것은 내 마음이었습니다. 내 미래의 상태를 만드는 것도 내 마음입니다. 마음만 강하고 담대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만 풍요로우면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건강한 마음 이상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얼굴이 못생겼어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정말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입고 있는 옷이 조금 허름해도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싱싱한 얼굴로 웃는 사람은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생각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생각은 마음을 선택하는 습관에서 옵니다. 그래서 좋은 마음을 선택하는 좋은 습관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자기 단정적인 교만을 버리십시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아닙니다. 나는 나를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나는 나를 잘 모릅니다. 지난날의 내 과거를 뒤돌아보아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나만큼이나 아는 사람이 있겠는가 싶지만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서 나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결국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금의 모습도 보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일마다 때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붙잡힐 때에 귀하고 아름다운 성격의 소유자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내게 임하시면 마음이 상한 자마다 고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갇힌 자는 놓임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와 신원의 날이 이 땅에 전파 될 것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위로 받고 찬양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며 의의 나무가 생명을 받아 일어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여정에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지금 울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인간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보십시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되어지지 않는 나를 보고서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근심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도 시도해 보지 않고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앞으로 되어질 나를 소망합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그래서 더 큰 꿈과 소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본문 25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가 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내 육신으로는 정욕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있어서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있어서 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내 모습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루실 나를 생각하고 주님께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형편없는 인간이지만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기에 나는 감사하면서 주의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모든 인간을 향하여 고발합니다. 내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에 나타나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 내 속에 나를 웃기고 나를 울리는 또 다른 내가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 앞에 설 때에 입을 열 때에, 일 마다 때마다 내 안에 나도 정복할 수 없는 내가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정복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 갈등과 고통과 모순에서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정복되고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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