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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강물에 나를 띄우라!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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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풀리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오직 믿음 안에서만 풀립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언제나 용기 있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본능적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된 용기는 두려움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갈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취하는 자는 항상 용감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용기가 나타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능력을 덧입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에게 갑절의 영감을 주옵소서.  하늘의 영적 권세를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을 믿고 일을 저질러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약함을 핑계 삼아서 방종하는 삶은 비극입니다.  자신의 분주한 시간들을 핑계 삼아서 헌신하지 않는 삶은 하늘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바른 믿음에는 실상과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얻은 모든 꿈의 태동이 현실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음의 기적은 그 본 것을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 바꾸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아무런 일도 못합니다.

믿음이란 결국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기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치 않은 믿음에는 창조적인 기회의 바람을 불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만 붙들면 하나님의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의 권세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믿음으로만 살아가면 결국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오고 오는 여러 세대에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생애에 공급하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집중하여 따라가십시오.  문제를 자꾸 따라 다니는 사람은 문제에 얽매이고 맙니다.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면 문제가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가십시오.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가십시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때를 당하고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인생의 다른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안에서 다 해결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지지와 협력과 인정을 얻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연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믿음으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시야를 넓히십시오.  사람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십시오.

오늘 주 앞에 신령한 하늘의 만나를 사모하면서 이곳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나를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느껴보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내 연약한 마음을 점령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내 영혼을 뜨겁게 만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십니까?  낙심되는 인생의 밤을 맞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칠 때에 우리의 인생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붙들고 무엇보다도 먼저 무너졌던 심령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으려고 왔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언을 하고 꿈을 꾸러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은과 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는 것으로 여러분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꿈을 안고 일어나십시오.

진리의 소리는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들립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귀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시간 좋은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폭포수같이 크고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왔습니다.  많은 재물을 약탈하고 1만명의 젊은이들은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 포로들 가운데 25세의 젊은이 에스겔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30이 되던 해에 그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노예생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였고, 아모스가 정의의 선지자였다면, 에스겔은 소망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또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성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유다 임금 시드기야를 잡아서 두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발을 묶고 말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비참하게 끌고 다니다 처참히 죽도록 내버려둡니다.

이제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절망에 빠져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에 에스겔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보십시오.  도저히 소망을 말할래야 말할 수 없고, 소망을 가지라고 선포할 힘도 없었던 에스겔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일어나 소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펑펑 솟아 나와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갑니다.  그러더니 성전에 물이 가득히 고이며 한번 걸어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걸어갔더니 발목까지 물이 찰랑 찰랑 흘러 넘쳤습니다.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한번 걸어보라고 합니다.  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습니다.  다시 물은 점점 차 올라 허리까지 오더니, 나중에는 그 물이 걸어서는 건널 수 없고 헤엄을 쳐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 되었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솟아 나온 물이 성전을 한바퀴 휘감아 돌더니 요단 계곡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 물이 사해 바다에 도착하자 죽었던 바다 물이 살아나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놉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아납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이 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 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열매도 풍성합니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사자가 에스겔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여기에서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을 교회의 핵심가치로 삼고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의 삶의 중심이 가정이나 직장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 될 때에 우리의 가정과 직장이 하나님의 생명과 힘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무시하고 진정한 예배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면서 오직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소출과 땅의 소산이 늘어나고 모든 것이 풍족해지자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 성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자신의 집과 산업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음란과 쾌락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겸하여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상실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형제자매를 잃어버렸습니다.  고향과 조국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지금 처참한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이제부터라도 성전 중심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살면 지금은 비록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머지 않은 때에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고 있지만 반드시 찬란한 아침 태양은 우리를 향하여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비춰지면 우리 민족은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결단해야 할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십시오.  우리들의 삶의 중심은 바로 하나님이고, 성전이어야 합니다.

여기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시작된 영광스러운 생명의 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심령에는 포로된 자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살립니다.  나아가서 이 민족을 살리고 열방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는 것 외에는 인생의 다른 해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리십시오.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싸워주십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기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시작된 영광스러운 생명의 강은 성령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자신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남을 살리는 생명의 전달자로 쓰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를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낼 수 있는 생수가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서는 능력 있는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아니고서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이, 성령의 생수가 제단에서부터 흘러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합니다.

때로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가 못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허물이 우리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보여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가 힘에 겹습니다.  어지럼증이 있습니다.  멀미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태평양 한 가운데로 여행하다가 거기서 멀미가 난다고 뛰어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는 구원방주입니다.  흠이 있어 보여도, 때로는 어지럼증이 있어도 여기서 뛰어내리고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을 호흡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살맛이 없던 사람들이 와서 살맛을 얻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생기의 바람을 맞는 장소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의 신앙 깊이가 어느 정도이냐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신앙의 여러 상태를 보게 됩니다.

먼저는, 발목만 적시듯이 주일성수에 그치는 신앙이 있습니다.  발목만 물을 적신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아무 것도 모르고 교회에 왔다 갔다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도 여전히 구원받은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도 여전히 구원에 동참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에게는 체험도 없고 감격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말씀하고 잇는 진펄과 개펄의 신앙입니다.  이들은 교회 냄새만 맡았을 뿐 은혜의 강물에 뛰어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까지 영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은혜의 강가에서 구경만 했지 발을 들여놓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한 잔인한 한 선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에 그 영혼이 적셔지지 못한 사람, 구원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물은 차 올라야 합니다.  이제 물이 점점 차 오르게 되면 무릎까지 오르게 됩니다.  무릎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위해 바지를 걷어 부칩니다.  팔을 걷고 일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 혼자서 헐떡거리고 뛰어다녔습니다.  자기의 재주를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더 얽히고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무릎이 기도에 적셔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적셔지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신앙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여기에서 머물면 안됩니다.  이런 신앙으로는 안정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에 물통을 져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통은 물을 가득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물통에 물을 가득히 담으면 무거워서 힘이 듭니다.  그래서 꾀를 부린다고 물을 반통쯤 담아서 일어섭니다.  그렇게 반통 쯤 담아서 걸어가면 물이 출렁거리면서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두 걸음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도착해 보면 물통에 물은 완전히 빈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이 차 올라야 합니다.  반통의 신앙 가지고는 안정감이 없습니다.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고 열매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빈 수레는 요란하고, 가랑잎은 바스락거리게 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은 또 다시 불어나야 합니다.  다음 단계는 물이 허리에 차는 단계입니다.  허리는 중심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중심이 잡히는 시기가 옵니다.  그냥 성경이 옛날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갑자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핑 돌며 감격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의 허리까지 물이 차 오르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물은 여기에 머물지 아니하고 또 불어납니다.  바로 가슴에까지 물이 차 오릅니다.  가슴이 은혜의 물에 잠기지 아니하고 신앙생활의 연조만 깊어지다 보면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습니다.  자칫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습관에는 원래 감격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빨을 닦으면서 "아, 이빨이 닦여진다.  은혜가 된다." 그리고 아침에 세수하면서 "아, 세수하는구나.  눈물이 핑 돌면서 감격스럽다."  그러면서 세수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냥 빨리 해치우는 겁니다.

예배 한시간을 드려도, 하나님 앞에 기도 한번을 해도, 찬송 한번을 불러도 습관적으로 부르는 사람은 감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슴이 물에 잠기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감격이 없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감사가 없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가슴이 은혜에 적셔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을 느끼며 감동하며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감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뻐서 감사하며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신앙과 은혜의 단계는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큰 은혜의 강물이 흐른다고 할지라도 억지로 끌려서 다닐 수는 없습니다.  강물에 사람들이 지금 놀고 있습니다.  헤엄치며 노는 사람이 있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교회에 은혜의 강물이, 은혜의 생수가 흘러 넘쳐도 여기서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서 헤엄하며 즐겁게 노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여러 사람들이 바다에서 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고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여인이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야단났다고 고함만 칠뿐 어느 누구도 그녀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어떤 할아버지가 잽싸게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수영을 해서 그 여인을 힘들게 구했습니다.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용감한 행동에 모두가 일어나서 힘차게 박수를 쳤습니다.  갑판 위로 올라온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자기가 서 있던 장소로 가서는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놈이 밀었어"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에 의해 떠 밀려서 이 자리에 왔건, 아니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건 기왕에 이 자리에 왔다면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치는 하늘의 사람이 되십시오.  물놀이도 무릎까지 오는 곳에서 놀면 자기 힘이 들어가서 쉽게 지칩니다.  그러나 어깨 너머에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물에 자신을 맡기고 즐기게 됩니다.  넘치는 강물에 가서 내 다리를 띄고 나면 죽을 것 같지만 땅에서부터 다리를 띄고 나면 내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깊은 은혜의 강물에서 복음을 누리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냥 헤엄치며 살 수 있는 은혜의 세계가 우리 가운데 준비되어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해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시간의 우선 순위, 내가 철저하게 계획해서 살아가면 그것이 반듯한 삶이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깊은 영적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쫓기듯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이제 이후로 주님 앞에 내 인생을 맡기고 한 번 살아보십시오.  물질도 하나님의 것, 하나님 앞에 깨끗이 드리고 한번 살아보십시오.  정직하게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살아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맡겨놓고 살아보십시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여 조금 더 잘 살면 뭘 하겠습니까?  맡길 것을 맡기고 살아보면 내 발이 세상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지만 거기에 신비의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더 넘치는 은혜와 복이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의 강물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강물에 몸을 담고 살지 못하고 오히려 목말라서 죽어가고 있는 심령들이 없습니까?  주님의 은혜의 강물에 여러분의 문제를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아나는 놀라운 구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은혜의 강물에 맡겨놓고 살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발이 떨어지면 망할 것 같지만 아닙니다.  내가 놓으면 주님이 대신 잡아 주십니다.  사막에 강이 흐르고, 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것처럼 풍성한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가정도 살고 목장도 살고 사업도 살고 이웃도 살고 자식도 살아나는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잠겨 사는 신앙의 신비를 배우십시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은혜에 잠겨 사는 신앙의 신비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샘솟듯 하는 은혜의 강물에 잠겨 살아가라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깨어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탐내십시오.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리스도의 권능을 붙드십시오.  아십니까?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자신의 영적 신앙의 단계를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여 문을 열지 못하여 진펄과 개펄 소금 땅이 되어서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발목이 교회에 적셔졌습니까?  은혜에 적셔졌습니까?  자고 나면 교회에 오고 싶어지십니까?  여러분은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차 올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무릎이 주님 앞에 적셔졌습니까?  기도의 강물에 적셔졌습니까?

그러나 더 깊이 담그십시오.  전능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십시오.  가정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문제가 커서 여러분을 막고 있습니까?  너무 작아서 시시해서 여러분이 붙들고 있습니까?  주님 앞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 생활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성령 안에서의 기쁨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이여, 나에게 감격을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찾아오셔서 내게 기쁨을 주옵소서.
나도 은혜의 강물에 내 가슴이 적셔지기를 원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기뻐서 찬송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은혜가 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꽉 차 오르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겠습니다.
세상에서 발을 띄겠습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겠습니다.  세상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겠습니다.
주님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주님이여,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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