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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 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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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편은 다윗의 믿음을 우리들에게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었고 통과했던 체험의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 그의 참 믿음이 돋보입니다. 다윗의 일평생은 참으로 사건들이 많았던 그런 삶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참으로 순전한 아이였습니다. 이새의 그 많은 아들 중 제일 막내로 그저 천진난만하게 자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뽑아 주셨습니다.
골리앗 앞에서의 담대함은 놀라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사울에 쫓기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부하들에게 베푸는 그의 사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아가페 사랑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이 사랑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믿음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Ⅰ. 다윗의 연약

이러함에도 그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표하는 죄가 있다면 그것은 간음죄입니다. 그래서 이 죄는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죄입니다. 우리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들 육신의 연약함입니다. 다윗도 이 연약함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밧세바 때문에 그의 부하인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육신적인 탐욕은 나단이 그를 질책할 때까지 그가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간음과 행음으로 불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롯과 그의 딸 말고는 그 곳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함에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그는 그가 지은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를 보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삶은 참으로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밧세바의 몸에서 난 아들을 죽게 하셨습니다(삼하 12:18). 형제간에 살육이 있게 하셨습니다. 압살롬이 반역하고 후궁과 간통하게 하셨습니다(삼하 15:1, 16, 22). 또한 아도니야의 반역이 있었습니다(왕상 1:5). 그의 말년은 이렇듯 쫒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Ⅱ. 다윗의 믿음

이러함에도 그는 그의 앞에 있는 시련을 굳건한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이 믿음은 그의 진정한 회개로부터 나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삶과 그의 믿음을 기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그의 다음 왕으로 삼아 주셨고, 그가 못다 한 성전 건축을 완성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하여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시편 37편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그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터득한 살아있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여기에 그의 고백의 가치가 있고 귀중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그의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는지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1) 불평하고 투기하지 말라
먼저 첫 번째 부분은 본문 1절의 말씀입니다. {행악자를 위하여 불평하지 말라}는 것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투기하지 말라}는 것이 이곳 부분의 명령입니다. 이 두 표현은 같은 의미의 표현입니다.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두 번 언급함으로써 이 의미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행악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저들이 받는 고난과 핍박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이 삶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스펄젼 목사는 이곳 시편은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곤경을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상 사람들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믿는 자의 삶보다도 더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벗어 버렸던 옛 자아를 부러워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부자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을 투기하고 시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 지상의 삶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라는 점이고,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지상의 삶은 아침 안개와 같다는 뜻이고, 이것은 참으로 짧고 짧은 일장춘몽과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지상의 삶이 이렇게 짧다면, 우리들은 이 지상에서 잠깐 누리는 부귀영화에 속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보다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우리들 믿는 자들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우리들이 원하는 최고 절정적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2) 선을 행하고 성실하라
두 번째 부분은 본문 3절에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고 명령합니다. 이곳의 두 명령 또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들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심을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속성인 의와 거룩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의와 거룩은 선을 행하는 것으로 그 본래적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실로 대표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선한 삶으로 그리고 성실한 삶으로 우리들의 삶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라}는 명령은 우리들에게 적극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 선의 행함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불만의 녹을 제거해 주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이 선을 행하면 우리들 마음속에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는 말씀에서 우리들은 {땅에 거한다}는 의미와 {성실}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땅에 거한다는 말의 이 땅은 세상 사람들의 땅과 믿는 자의 땅으로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같은 땅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는 광야의 거친 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우리들의 본향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의 삶에서 본향을 대신하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는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일용할 양식}은 우리들 육신적인 삶을 지탱해 주는 그 근원입니다. 육신적인 생명과 건강은 우리들의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삶 전체를 의뢰하고 의지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삶에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스펄젼은 이 말씀을 주석하면서, 이 식물은 우리들 육신적인 식물과 영적인 식물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음식으로 삼으라는 의미로 이 의미를 확대해석하고 있기도 합니다.

3) 여호와를 기뻐하라
세 번째 부분은 본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이 이곳 문단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이것이 오늘 시편이 우리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진리의 핵심적인 말씀입니다. 이 마음속에 우리들의 모든 축복과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게 되지만 그러함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의 말씀인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곳에서의 소원은 바로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인 것들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저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며, 자기의 잘남과 우상들로부터 받는 축복을 믿으며, 그 삶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성호를 부를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이고, 우리들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영혼의 마지막 축복을 소망하면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상에서의 축복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들의 탐욕입니다.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믿는 자들을 그의 백성으로,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면, 우리들의 지상의 삶에서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련은 당연히 우리들을 연단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 앞에 간 믿음의 선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연단의 길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통과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얻었습니다.

4) 여호와께 맡기라
이제 네 번째 부분에서는 본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맡긴다'는 의미는 산 아래로 무거운 짐을 내던져 굴려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들이 수영할 때 우리 몸을 물에 다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무거운 짐을 다 벗어 던져 버렸기 때문에 우리 몸은 가벼워 진 것입니다. 이 의미가 '맡긴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간구를 이루어 주시며, 우리들의 공의를 빛같이, 정오의 빛같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의와 공의를 이루어 주신다는 이 말씀처럼 귀하고 감사한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빛과 같이, 우리들이 정오의 빛같이, 가장 밝고 찬란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여호와께 의지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참으로 우리들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100% 맡기고 의지하고 의뢰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곳 네 번째 부분에서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은 처음 두 번째 부분의 말씀인 {여호와를 의지하며, 선을 행하라}는 말씀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곳 네 번째 부분과 앞에서 말씀드린 두 번째 부분은 그 의미가 서로 병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 두 부분은 우리들의 삶 전체를 여호와께 의지하고 의뢰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빛같이, 정오의 빛같이 가장 축복받는 인생으로 인도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우리들의 참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들이 스스로 믿는 그런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확실한 소망인 것입니다.

5)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끝으로 오늘 본문의 다섯 번째 부분은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는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들 인생들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명령이 있다면, 이것은 바로 잠잠하지 못하는 것이고,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와를 아내로 맞이한 아담의 변명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혈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변명에 아주 능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언급할 때 마다, 이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자기 희생의 십자가,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십자가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삶이라면, 믿지 않는 자의 삶은 자기 교만의 삶이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삶이고,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지 못한다는 말은 나는 잘했는데 누구누구 때문에 이 일이 나쁘게 결과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 말은 나에게는 눈곱만한 잘못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은 좀 더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하나님의 뜻을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우리들에게는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죄악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면, 이 지상에서 살아 있을 인생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참고 기다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참으로 바른 믿음을 가진 믿는 자라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려 주신 것같이 우리들의 삶도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할 일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축복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간섭하시고 축복하여 주신다면 우리들은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적극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믿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더 경건한 삶으로 더 사랑이 풍성한 삶으로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고를 버릴 때 우리들은 믿는 자의 역할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간단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진정한 축복이 있습니다. 여기에 감사와 기쁨과 소망이 넘칩니다. 이런 축복을 담뿍 담뿍 받으시는 우리 성도님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서영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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