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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별력 있는 삶(3): "관대한 다윗" (삼상 25:32-35, 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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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력 있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미덕들>
기러기는 수십 마리,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도
맨 앞에 있는 기러기를 따라 이동합니다.
그러므로 맨 앞에 있는 리더가 방향을 잘못 잡을 때 전부 다 잘못 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새들 중에서도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물며 한 국가의 영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지도자를 뽑으면 나라 전체가 융성해질 수 있고
나쁜 지도자를 선택하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동 지역으로 나가는 대사가 어떤 대통령에게 부임 인사를 했답니다.
"각하, 제가 부임하는 곳은 그늘도 40도나 된답니다."
"그래, 그럼 그늘 같은 곳엔 안 들어가면 될 것 아니야."
유머가 뛰어난 대통령이라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 없이 사는
무능한 대통령이라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분별력 있는 삶'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윗과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분별력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미덕입니다.
가정 생활이나 학교 생활, 직장 생활, 교회 생활 등등 모든 분야에 필요한 덕성이지요.
하물며 한 국가의 영도자에게 분별력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요즘 독도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가 심상치 않습니다.
독도 탐사를 하겠다는 일본측과 허락할 수 없다는 우리측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양측 다 국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인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이 난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를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분별력은 크게 두 가지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정확한 상황판단이 중요합니다.
현실감각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비가일에게 돋보인 것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발은 무모한 감정과 욕심에만 사로잡혀 있을 뿐
뭐가 뭔지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정확한 현실 인식 능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개의 경우 인의 장막에 가려서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민주화 시대가 되어서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는 대통령이
몇 사람의 실세들에게 둘러 싸여서 왜곡된 정보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이른바 '민정시찰'이라는 것을 통해서
보통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옛날에 왕과 우의정이 세상물정을 알아보려고 평민행세를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두 사람은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우의정이 주막 기둥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고서는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주상 전하, 우리의 신분이 탄로 났습니다!"
여러분, 그 기둥에 무슨 글씨가 적혀있었는지 아십니까?
"손님은 왕이다."

(좀 썰렁한 유머입니까?)

일국의 지도자가 보통 사람들과 격의 없이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정확한 현실 판단을 위해서 참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제도와 서열중심의 문화, 계급의식으로 가득찬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일방적인 리더십만 행사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나 사회도 많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의(民意)를 존중하는 점점 열린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 둘째로, 지도자가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던지는 말 한 마디, 선택과 결단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것을 미리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 때 그 때마 시원시원하게 단안을 내리기는 잘 내리는데
그것이 나중에 큰 문제를 몰고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비전이 모자라기 때문이지요.

비전이란 이와 같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줄 아는 안목인데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이루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비전은 리더 한 사람의 것만 되어서는 안되고
'shared vision,' 즉 '공유된 비전'이 되어야만 합니다.
리더는 자기가 꿈꾸는 비전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유익에 긴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따르는 이들에게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전달해서 다함께 추구해나가는 비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일국의 대통령도 온 국민이 공감하는
위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다윗을 주인공으로 해서 삼상 25장 말씀을 읽다보니 자연 리더십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실, 다윗은 분별력이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분별력의 두 가지 요소,
즉 정확한 상황판단 능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도 두루 갖춘 지도자였습니다.

먹거리가 떨어져 한 때 도움을 주었던 나발에게 양털 깎는 잔칫날 양식을 요청했습니다.
나발은 당연히 다윗을 도와주어야 마땅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발이란 이름 그대로 미련하고 욕심 사나웠기 때문이지요.
10명의 부하들로부터 나발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폄하하는 등 인격적인 모욕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서 다윗은 즉시 군사 400명을 완전 무장시켜 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다윗은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했습니다.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명예가 짓밟혔다는 사실 하나에만
앙심을 품고서 오직 복수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선을 악으로 갚는 나발 일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복수심 하나에만 사로잡혀 나발 집안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런 때에 하나님은 지혜로운 아비가일을 준비시켜주셨습니다.
냉철한 이성은 사라지고 흥분과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다윗에게
아비가일은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꺼준 소낙비와 같았습니다.
침착하고 조리 있게 말해서 다윗을 무모한 감정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냉엄한 현실 세계로 되돌아오게 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동행하셨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주실 터인데 왜 스스로 원수 갚으시려고 합니까?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스스로 원수 갚으려고 해서 마음도 상하고 죄 없는 사람들의 피도 흘리게 해서 안 됩니다!"

"지금 제가 정성을 다해 준비해 온 예물을 받으시고
응어리진 마음도 푸시고 부하들 양식도 나누어주세요.
어리석은 나발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죄 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죽여봤자 덕될게 무엇입니까?"

이 말을 듣고 다윗은 정신이 번쩍 들어 냉철한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 여인이 이렇게 남편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도 하고 있지,
또 현재 내가 가장 필요로 한 양식도 선물로 가져왔지,
내가 무죄한 사람들 죽여서 그들의 양식을 빼앗는 것보다
이 선물을 받고 화해하는 편이 백 번 더 낫지.
옳은 말이야!"

이렇게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서는 상황판단을 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한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하나 둘 정확하게 셈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제 다윗은 이와 같이 상황판단도 바로 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도 미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비가일이 말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에서 제일 가는 성군이 되실 터인데 지금 공연히
무고한 사람들 죽여서 나중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이 말을 듣고서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 화들짝 정신이 들었습니다.
군왕의 제일가는 사명이 백성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재산을 보호하는 일인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서 재산을 빼앗는 일은 결코 군왕이 할 도리가 아닙니다!

아비가일의 말을 들어보니 다윗은 자기가 현재 분풀이에만 눈이 멀어
이런 일을 했다가는 장차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부담거리가 될 것이라는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차분히 현재로 되돌아왔고 미래에 일어날 불상사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큰 德의 사람 다윗이 보인 세 가지 관대함>
여러분, 이와 같이 다윗은 분별력의 두 가지 요소인
'정확한 상황판단 능력'과 '미래에 대한 탁월한 비전과 안목'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 두 가지에다가 '관대한 마음'까지 품었습니다.
사실, 훌륭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 중에 하나는 관대한 마음, 즉 '덕'입니다.
아비가일이 아무리 지혜롭고 재치 있는 조언을 했다고 할지라도
듣는 사람이 너그러운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다윗이 관대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비가일의 말을 듣는 일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로지 복수하는 일에만 사로잡혀서 부녀자 따위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군사 400명을 이끌고 나발 집안의 남자들은
모조리 씨를 말리겠다고 돌격해 들어가면서도 아비가일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흥분된 상태에서도 덕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아비가일이 워낙 겸손하게 정성을 다해 극진한 예를 갖추어 다윗을 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 특유의 관대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의 관대함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① 아비가일을 다윗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2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아비가일을 다윗에게 보내주셨기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그릇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나발 집안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겠다고 출동했을 때
아비가일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슬기롭고 분별력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아비가일 같은 사람들을
많이많이 허락해주세요." 하고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② 다윗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 갚지 않도록 지켜준 아비가일에게 감사합니다. 
33절 말씀을 보세요.
다윗은 오늘 자기가 사람을 죽이거나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 갚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준 사람이 아비가일이라면서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군왕이 되어서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게 될 실수를
미연에 방지해 자기를 지켜준 사람이 바로 아비가일이라는 것이지요.
슬기로운 권면으로 자기를 건져준 사람이 아비가일이라면서 하나님의 축복까지 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얼마나 겸손하고 덕이 있는 큰그릇의 사람인가를 보여줍니다.
자기의 인격을 크게 훼손했고 자기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한 원수의 아내일지라도
그 말이 이치에 맞고 옳은 말일 때에는 감정을 풀고 기꺼이 들으려는 마음,
이 얼마나 아름답고 넓은 마음입니까?
원수의 아내라면 대개 도매금으로 넘겨 똑같이 취급해버리는 것이
상례인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원수의 아내라고 할지라도 사리에 맞고 정당한 말일 때에는
기꺼이 듣고 따르려는 겸손하고 열려진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이와 같이 넓은 마음, 열려진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참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 내 생각이 현명치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실하고 충성된 말일 때에는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③ 아비가일이 준비해 온 예물을 받고서는 부탁을 다 들어줄 것을 약속합니다.
35절 말씀을 보세요.
다윗이 아비가일이 준비해 온 예물을 받아들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다윗이 아비가일과 화해하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시입니다.
비록 그 남편인 나발은 어리석고 고집 세고 욕심 사납지만
그 부인은 다르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비가일의 소청을 다 들어주고 나발 집안의 식구들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윗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약속을 했습니다.
아비가일이 워낙 슬기가 넘쳐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이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맞장구를 칠 줄 아는 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 손으로는 박수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과연 그랬습니다.
아비가일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아비가일을 알아줬던 다윗은 더 큰 인물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그 날 자기 집안에 불어닥칠 대살육을 막은 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군왕이 되어서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오점도 막아냈습니다. 
그야말로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서 무혈혁명을 만들어낸 여걸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나발 집안에도 좋고 다윗 왕가에도 좋은
무혈혁명이 한 사람 아비가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관대한 사람, 덕장 중에 덕장, 큰 도량의 사람 다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러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입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한 것을 아내에게 자랑합니다.
"여보, 나 오늘 부로 과장 됐어."
"아니, 여보, 그게 무슨 자랑이에요?
옆집 순이 아빠는 작년에 과장 됐는데.
그리고 그게 어디 당신 혼자 힘으로 된 줄 아세요?
여자는 뭐 집에서 놀고 먹는지 아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남편은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확실히 아비가일같이 지혜롭고 현숙하게 말하는 아내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잘 받아넘기는 남편이 될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분, 덕불고(德不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평소에 덕을 잘 쌓아놓으면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해도 외롭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하는 말이 있지요.
"용장(勇將)보다는 지장(智將)이 낫고 지장보다는 덕장(德將)이 낫다." 
용맹무쌍한 장수보다는 지략이 뛰어난 장수가 한 단계 위이고,
가장 좋은 장수는 덕이 있는 장수라는 말이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덕이 있는 지도자 밑에는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모여듭니다.
다윗은 덕장이었기 때문에 겨우 600명의 용사들로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삼고초려의 정신으로>
여러분은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성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이 뛰어난 지략을 가진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서는
제갈량이 사는 초가집에 세 차례나 찾아가서 부탁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지요.
군주가 신하의 집에, 그것도 허름하기 짝이 없는 초가집에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몸을 낮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제갈량, 즉 제갈공명(諸葛孔明)은 두 번까지는 몸을 숨기고 만나주지 않았는데
세 번째에는 마침내 유비의 큰 덕과 겸손에 감동해 유비의 군사 고문이 되었습니다.
제갈량을 얻은 유비는 저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曹操)의 백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갈공명의 뛰어난 지략과 경륜도 높이 사지만
자신의 신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차례씩이나 몸을 낮춘 유비의 큰 덕을 더 칭찬합니다.

아비가일도 분명히 대단한 여성이었지만 이 아비가일을 알아준 다윗은 더 큰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이 큰 덕의 사람이었기에 아비가일의 말을 모두 들어주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본문 39-42절 말씀을 보면 남편인 나발이 죽자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의 여덟 왕비 중에 두 번째 부인이 되었던 것이지요.
장차 천하를 다스리게 될 다윗으로서는 아비가일의 지혜와 기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 역시 자기를 알아주었던 다윗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41절 후반부의 말씀을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이 몸은 기꺼이 그분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는 종들의 발을 씻겠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 말입니까?
이제 왕비가 된다고 해서 우쭐한 것이 아니라 더욱 더 겸손해져서
다윗의 종이 될 뿐 아니라 다윗을 섬기는 종들의 발까지 씻어주겠다는 것이지요!
왕비가 된다는 사실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죽을 목숨을 구해준
다윗의 은혜에 감읍(感泣)해서 일생 종의 마음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분별력 있는 모습입니까?

다윗이 이런 사람을 아내로 맞아들여 얼마나 더 훌륭한 군왕이
될는지는 불을 보듯이 뻔하지 않습니까?

이제 「분별력 있는 삶」이란 연속 설교를 마치면서 여러분 모두 아비가일처럼 지혜롭고
다윗처럼 관대해서 다 분별력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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