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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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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기를 창세기는 성경의 첫 번째 책이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여는 열쇠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시작하는 책입니다. 무슨 책이든지 서론이 있고 설명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시작은 설명이 없습니다. 단지 선언이 있을 뿐입니다.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신비로운 것은 이 놀라운 진리의 선포를 믿고 아멘하면 창세기가 전부 열립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믿지 못할 것이 없고 의심할 것도 없습니다.

1절에 보면 “태초에”라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더 줄인다면 “천지를”이라는 말을 빼고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니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우주만물의 중심과 인생의 중심도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것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창세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축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중심의 축을 인간중심으로 바꾼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사탄에게 받은 유혹은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은 여러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사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인정하시고 그대로 행동하는 순간부터 여러분들은 행복하기 시작 할 것입니다.

1.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이 세계의 모습이 어떠하였습니까?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조 이전의 세계를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하셨습니다.

“혼돈하다”는 말은 무형, 그야말로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허하다”고 하는 말은 황무지와 같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혼돈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는 말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 빈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흑암은 “어두움, 캄캄함을 말합니다. 이런 말씀이 나오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혼돈하며 공허하고 흑임이 깊음 위에 있는 무가치한 것으로 뒤섞인 그곳에 여호와의 신이 운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질서와 조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저는 우리 사람들을 여기에 적용 시켜 봅니다. 사람은 두 종류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와 또 하나는 하나님을 만난 이후의 상태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을 때! 우리의 상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있는 상태입니다. 무질서와 부조화,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곳에 하나님의 신이 찾아오시니 놀라운 질적이고 양적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믿고 그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축복이고 형편입니다.

2. 하나님의 신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이 창조 될 때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그 신(神)은 히브리어로 르악흐, 헬라어로는 퓨뉴마! 즉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바람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신은 제3위의 하나님이신 성령, 성신(聖神)을 가리킵니다. 이미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성신이 동참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모든 활동 속에도 이미 성령께서 활동하셨습니다.(출35:31,삿3:10,왕하2:12-15,대상12:18,겔11:24)

성경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짧게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신은 다이너마이트 같은 위력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의 근원은 하나님의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은 변화의 주체는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생명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세상을 품으시자 세상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어미닭이 계란을 21일 동안 품고 있는 것과 같이 성신께서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여호와의 신이 품으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첫째는 혼돈이 사라지고 질서가 임합니다.

태초에 시작은 혼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질서하게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성령님께서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품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혼돈은 사라지고 질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님을 통해서 소식을 들어보면 북쪽의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탈북하다 걸리거나, 예수 믿다가 걸리면 즉결심판, 공개처형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북한이 질서 있는 나라가 됩니까? 안됩니다. 도둑놈들이 판을 치고 심지어 출산한 엄마가 갓난아이를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난다고 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신앙을 말살하며, 하나님을 거부한 나라들의 모습은 비참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법, 공개처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들 가운데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덮어 주시는 것입니다.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혼돈하시지 않습니까? 혹시 가정생활은 혼돈하지 않습니까? 사회생활은 어떻습니까? 아마 이 말씀을 대하시는 분들 가운데도 혼돈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신이 여러분들의 그 마음을 품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혼돈의 세상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심과 같이 세상 일로 혼란스러운 내 속에 지금 하나님의 신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품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순종하십시오. 죄를 지적하면 회개하시고, 잘못된 습관을 말씀하시면 고치십시오. 내 힘으로 살았던 것을 지적하시면 주님을 붙잡고 그분의 힘으로 살겠으니 도와달라고 손을 드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일하시기를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의 신이 여러분들의 내면세계를 운행하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원하시는 대로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오셔서 저를 품으시고 이 혼돈이 물러가고 성령님이 주시는 질서가 임하게 하옵소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공허는 물러가고 충만이 임합니다.

공허라는 말은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있기는 있는데 전혀 쓸모없는 것들로 뒤엉켜 있습니다. 그런 공허를 하나님의 신이 품으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허가 물러갑니다. 충만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던 것들 이 의미 있는 것으로! 공허한 곳에 쓸모 있고 필요한 것들로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공기가 채워지고, 땅이 생기고, 바다도 생기고, 거기에 나무와 풀들로 채워집니다. 새와 짐승들이 생기고 그 세상을 다스리는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사람이 느끼는 공허감이 있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먹으나 배부르지 못합니다. 입으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함께 있으나 외롭습니다. 명예를 얻었으나 공허한 사람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나 만족함이 없습니다. 인간의 공허한 자리는 바깥에 있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으로 채워졌다면 인간은 공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진 것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불필요한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채워졌는데도 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해 농사를 지어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창고가 모자랍니다. 더 크게 확장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께서 그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오직 한 가지를 채우면 족하게 됩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았더니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시23:1) 환경이 만족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웨슬리 목사가 미국에 선교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서양에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릅니다. 그런데 모라비안 교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안이 넘쳤습니다. 웨슬리가 물었습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온 천지의 주인이신데 무섭기는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에 감동받은 웨슬리는 찬송시를 썼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일어날 때에 사랑하는 나의 주 나를 품어 주소서....” 찬송가 441장입니다. 우리 함께 부르며 은혜를 받도록 하시겠습니다. ♪♫♬ 지금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과 육체를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께서 덮어 주시고 품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는 모든 것이 어둠이었습니다. 캄캄함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덮고 품으니 어둠과 혼돈과 공허가 물러가고 빛이 임한 줄 믿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이 죄인의 마음을 품어 주시니 그 속에 있던 어둠이 물러가는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 속에 어둠이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상상하는 것이 어둡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속에도 복음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신이 그를 덮기 때문에 복음의 빛에 의하여 어둠은 물러갑니다. 때로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이 내 심령 속을 비추어 주시고 품어 주시고 덮어 주시면 어둠은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 되는 줄 믿습니다.

모쪼록 이 시간에 하나님의 신이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운행하시고 품어 주셔서 혼돈은 물러가고 질서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공허가 물러가고 각종 귀하고 복스러운 것들로 충만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망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어둠은 물러가고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빛으로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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