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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님 부활의 증거 (요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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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의 증거(요한복음 20:1-10)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예배하는 성도들 위에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죽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역사적으로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지금도 부활하신 주님은 이 자리에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또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까?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자리에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이것이 정말 믿어진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대단한 분들입니다.

1. 부활을 믿지 않던 사람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와 보고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만 온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라고 되어 있고 또 다른 복음서에는 그냥 무덤에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준비해서 찾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여자들이 올라가면서 걱정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무덤의 돌을 옮겨 줄까..”하고 걱정을 하면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마태복음에만 네 차례, 아주 강하게 말씀을 하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열흘 전에, 또 3일 전에 강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믿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 믿었다고요.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안 믿었는데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와서 말을 했습니다. “이 예수라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사흘 후에 자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한 말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무덤을 3일 동안만 지켜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장사되었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허락으로 이 문을 아무나 만지지 말고 건들지 말라고 도장을 찍어서 인봉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파수꾼을 세워서 무덤을 굳게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와 보니까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돌이 스스로 옮겨진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 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지키는 자들이 천사의 강림과 지진과 돌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졸도해 버렸습니다.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막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가서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했더니 베드로와 요한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마치 용수철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무덤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우리 6절과 7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서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자, 여기 세마포는 ‘고운 베’인데 이집트나 시리아로부터 수입한 값비싼 천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으로 수의를 만들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돈이 많은 부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준비해 놓았던 묘지와 수의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약간 떨어진 곳에 개켜 있었다고 했습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때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러니까 요한이 먼저 왔지만 들어가지 않고 목만 빼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베드로가 나중에 와서 무덤 안으로 쑥 들어가니까 베드로를 따라서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믿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어요. 우리 9 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아멘.>
아직도 예수님께서 부활하리라‘라는 말씀을 알지 못했어요.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믿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힘주어서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는데도 그것을 알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여기 믿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이 아니고 2절의 말씀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 하겠다 하니, 아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더니 과연 무덤에 들어 가 보니까 그의 말대로 시체가 없어졌구나하는 그의 말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도 믿기 어려운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빈 무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부활의 증거-빈 무덤과 수의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빈 무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다시 모이고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부활하셨다, 살아나셨다, 여기서부터 기독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요 십자가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빈 무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그들이 얼마나 든든히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말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입니다.

또 만약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면 예수님을 훔쳐갈 때에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을 왜 거기 두고 갔겠어요? 세마포는 굉장히 비싼 천입니다. 씻어서 팔아도 상당히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훔쳐가면서 세마포와 수건을 벗겨놓고 갈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훔쳐간다면 그저 둘둘 싸서 급하게 옮겨가야지 왜 다 벗기고 훔쳐갔겠습니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또 7절에 <개켜 있더라>하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개켜>하는 말은 ‘잘  접어서 두었다’는 말인데 원어에는 그런 뜻이 아니고 ‘둥글게 말린 그대로 두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건으로 예수님의 머리와 턱을 동여매었던 상태 그대로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에 수의와 수건을 그대로 두고 몸만 싹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3.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변화

19장과 20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아십니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절규합니다. 많은 사람이 절망합니다. 두려움과 한숨이 예루살렘을 채웁니다. 누가복음서에는 <그 되어가는 것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가슴을 두드릴 만큼 답답한 일이 온 예루살렘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2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울음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뀝니다.. 두려워서 문을 닫고 숨어있던 제자들이 뛰쳐나가서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변화가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Easter’라고 합니다.  ‘동쪽’이라는 말입니다.
동쪽에서는 해가 들어옵니다. 부활절-Easter,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태양과 같이 동쪽에서 확 떠오르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추위가 물러갑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앙이 달라집니다.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과거에 살겠다고 거짓말하던 제자들이 다 순교합니다. 

자기의 삶을 헌신합니다. 자기의 물질,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다 내어 놓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가 부활을 믿게 될 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질 때에 슬픔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두려움이 평강으로 변합니다. 눈물이 환희로 변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런 놀라운 삶의 변화를 부활신앙으로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다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무덤도 예수님의 무덤처럼 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다 같은 부활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35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이 똑같은 것 아닙니다. 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쓰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물질 드리고 전도하고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이유가 뭡니까?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렇지 마는 또 한 면에서는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희롱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채찍 받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결박과 옥에 갇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켜 죽기도 하고 칼에 죽기도 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4. 부활의 증인
 
그리고 이 부활을 사방에 나가서 전해야 되겠습니다.
부활은 역사상 가장 놀랍고 큰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안 전하겠어요? 정말 빅뉴스, 큰 뉴스를 나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것 전하지 못해서 입이 근질근질 할 것 아닙니까? 정말로 부활을 확신한다고 하면 우리는 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구원도 영생도 천국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깨트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빈 무덤과 수의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부활을 확실히 믿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쪽에서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듯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슴 속에 모셔서 빛 가운데 살아가고 기쁨과 평안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 아니라 나도 부활될 것을 믿고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힘쓰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인 부활의 사건을 전하여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명령으로 삼고 날마다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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