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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목적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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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일본 봉급생활자의 표준생활설계표
19세 - 고교졸업
25세에 22세 자매와 결혼
27세에 첫 아들, 30세에 둘째 딸
40세에 마이홈, 한 달에 두 번 외식, 3번 골프, 1년에 한 번 해외 여행.
60세, 은퇴
75세, 하직

일본인들의 평균적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을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잘 먹고, 잘 살다 잘 죽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동물적인 삶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렇게 저급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오래 사는 것이 도리어 저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 말씀을 잘 듣기 바란다.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 바란다.

갈릴리 어촌의 어부 출신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들의 꿈은 갈릴리에서 선주가 되는 것, 마태의 경우는 세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처음에 그들 역시 세상적으로 잘 되보려는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랐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의 꿈이 커졌다. 갈릴리의 선주, 아니면 세리장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왕이 되셨을 때 최하 국무위원, 장관 정도의 자리는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절망적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닭 좇던 개처럼 지난 3년 반 동안의 수고가 허망하게 끝이 났다. 제자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갔다. 그리고 그 동안 놓았던 그물을 손보고 다시 배를 탔다.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그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 때 의심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 의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만져보고 껴안아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근심, 의심, 두려움이 일순간에 다 날라가 버렸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케 되었다. 제자들의 인생에 새로운 서광이 비췬 것이다.

화란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리델보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 본문 16절은 갈릴리에 위치해 있는 어느 산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만남에 대해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관심없이 지나치고 만다. 그러나 그 산에서의 만남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될 놀라운 사명을 제자들이 받게 되었다. 그 사명의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제자들은 달라졌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갈릴리의 선주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나라에서 장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헛된 영광을 구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욕망은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았던 것이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이 말씀을 받는 순간, 제자들은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알게 되었고,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부여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

1. 가서(19상)

어디로, 누구에게로? - 온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들만의 특별한 배타성이 있었다. 시온이즘, 선민사상이라는 것이다.
마10: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유대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계셨는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주석가 핸드릭슨은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 모든 족속들을 향하여 “가라”고 명령하신 것에 대하여, 특수성에서 보편화로의 변화라고 말했다. 복음이 유대지역과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민족적으로나 지역적인 영향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복음전파의 순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비록 갈릴리 어촌 출신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들어 온 세계를 바라보게 하셨다. 그들은 이제 갈릴리 주변에서 맴돌며 동네 사람들만 상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방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세계인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이 첫 번째 받은 사명이다.

2. 제자를 삼으라

영어 성경, NIV, "make disciples"로 번역했다. 월터 헨릭슨이란 분이 쓴 책, 1980년 대에 미국에서 24만부 이상 팔린 책인데 책 제목이 재미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사역이 제자 삼는 것이었다.
서울의 사랑의 교회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교회다. 매년마다 훈련생들을 뽑는데 너무 많이 몰려서 골라 뽑아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교회는 제자훈련으로 크게 부흥했다. 교회가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좋은 인재와 훈련된 제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학력, 직업이 별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3년 반 동안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받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3년 반 동안 주로 무슨 훈련을 받았는가? 교재예습, 성경 암송, 큐티, 독서, 주일설교 요약하기... 이런 것 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훈련받았는가? 간단하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웠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제자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주님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하고 있다면 그는 제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훈련 기초과정, 사역 과정을 다 마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는 제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제자는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것이 제자의 자세이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의 저자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목사, “교회 안에 젖병을 빨고 있는 신자들이 많다.” 어린 신자들은 밖으로 내 보낼 수가 없다. 그리고 나가도 전할 수도 없게 된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제자가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가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된다.

예수님께서 3년6개월 동안 훈련시키셨다.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이제 제자들은 나가서 그들이 그들의 선생인 예수님으로부터 배운대로 제자 삼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 이것이 그들이 받는 두 번째 사명이다.

3. 세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례의 의미
1)세례는 신자의 표시,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고백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다.
예)결혼식이라는 의식

2)영적인 결합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게 되며 그분의 교제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 예)성찬식
이것이 세 번째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4.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3대 사역, 복음전파, 치유사역, 가르치는 사역이다. 예수님은 틈만나면 가르치셨다. 산에서, 들에서, 바닷가에서, 성전에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무엇에 대하여 가르치셨는가? 천국에 대해서, 전도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하여, 재림과 심판에 대하여 비유와 예언의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유는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것이다.
행2:40-42,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사도들은 열심을 품고 가르쳤고, 성도들은 배우기를 힘썼다. 그 결과 교회는 부흥되었고 교인들은 백성들에게 칭찬을 듣게 되었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 초기 교회 당시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선물이 있었는데...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 제자들이 받은 사명의 내용 - 가라!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 이 사명을 받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 그들의 목표가 분명해졌다. 내가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결정되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들 인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17,20절). 이제 제자들은 두려워 할 것이 없었다.

새들백교회 릭워렌목사, “이웃이 암이나 에이즈에 걸려 있는데, 치료법을 알고도 그 정보를 숨기고 알려 주지 않는 것은 범죄다. 더 나쁜 것은 인생의 목적, 평화, 영생의 길을 알고도 비밀로 하는것이다.”

그리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래된 신자일 수록 그리스도가 없는 삶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잊고 산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든 실패한 사람이든 그리스도가 꼭 필요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친절, 가장 큰 봉사는 영생의 길을 알려 주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께만 있음을 증거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 구원이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인생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은 알고 그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지혜요 행복이다.

인간은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존재이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살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잊고 자기 만을 위해 산다면 그 사람은 아직 복음의 가치도 능력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기력한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에 자신의 삶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활력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목적에 자신을 맞추기 바란다. 주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스런 제자들이 될 것이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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