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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삶의 가치를 알겠느냐? (계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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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했으니 이는 예수님의 언행심사 전부가 말씀이라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삶은 일반사람들과 같지를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오심부터가 희생이시고, 그리고 그 분의 사심(삶) 전부가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희생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그 말씀대로 해 나가심이 들어 있는데, 말씀대로 해 나가심으로 해서 나타나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인데 이 사랑은 전부 희생으로 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33년의 모든 활동이 피 뿌림으로 돼 있다는 것이요, 즉 희생의 삶이라는 말인데 이 희생 속에는 33년간 날마다 죽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이 말속에는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죽는 것밖에 없는 존재인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내 대신 예수님께서 죽는 삶(피 뿌리는 삶)을 사심으로 해서 죽는 나를 날마다 살려주신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심은 인간의 말로 온전히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사심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수 있는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게 들어 있습니다.  이게 사랑이요, 참 희생입니다.  영원히 값어치 있는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은 결국은 예수님에게로 도로 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천사들과 구원 얻은 성도들이 예수님께 면류관을 드리며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희생도 그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희생에는 영원히 살리는 게 들어 있어야 합니다.  값어치 없는 희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희생을 했으면 희생의 대가가 거기서 솟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수 년 수 십 년 예수를 믿고 날마다 교회에 다녔다면 배우고 듣고 느끼는 게 자기 속에서 솟아나야 합니다.  깨어나는 게, 살아나는 게, 주님의 것이 있어야 믿는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결국은 천국에서 그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나는 그런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희생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들어내는 게 들어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33년의 삶의 성질이 그랬습니다. 

주님은 출생에서부터 부활 승천할 때까지 33년 동안 당신의 전 인격, 전 혼신을 다해 우리를 구원하는 구속사역의 삶이었습니다.  손 발 하나하나의 움직임마다, 눈동자 굴림 하나하나마다, 먹고 마시는 것 하나하나마다 인간 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행여나 내(예수님)가 죄를 지으면 내 백성들의 구원은 없다, 내가 행여나 실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하면서 사신 삶이었습니다.

창세 이후의 모든 하나님 백성을 구원해 내려면 모든 삶이 살리는 이치, 살리는 것으로 된 삶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법에 100% 만족을 드리는 삶((죄가 전혀 없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외에 세상 어느 인간도 이렇게 산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삶을 사셨다는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도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부활 승천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석가 공자도 다 자기 죄 아래서 죽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게 긍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에 하나의 종교가 아닌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도덕성과 정신과 삶이 월등합니다.  다른 종교는 그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아도 날마다 죽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날마다의 삶을 전부 사는 것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 가치를 아느냐? 

교회가 아무리 많아도 성경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그 정신 사상으로 살면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삶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구속사역 속에는 죄를 철두철미 응징해 버리는, 즉 십자가에 죽이는 성질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랬습니다.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는 삶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나도 그런 삶이어야 합니다.  신앙 정신면에서 전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는 정신으로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는 금생내세에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세상은 경쟁의 장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악적 경쟁을 하는 장소이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선적인 경쟁을 해야 합니다.  자타를 살리되 영원히 살리는 경쟁을 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33년간 사시는 동안 언행심사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한 경우는 전혀 없고 전부는 살려내는 일, 생명적인 일, 사람을 낮은 차원서 높이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인격과 혼신을 다해서 하신 중보사역에는 죄는 철두철미하게 죽여 들어가는 심판성과, 전부를 살려내는 생명성의 양면성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사신 예수님을 보고 듣고 배우고 깨달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중보사역의 삶은 죄를 정복하고 마귀를 이기는 게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최고의 말씀의 법에 만족하도록 사셔야 합니다.  또한 죄 없이 사는 것만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 앞에 말씀의 의행을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렇게 살아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다 알지 못하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런 희생과 사랑의 삶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늘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기꺼이 내려오셨습니다.  오셔서 죄를 이겨야 하고, 아울러 죄를 짓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사시려니 인간의 말로 하면 나를 위해 33년간을 피나는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신 삶 속에는 마지막 날 나를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 당신처럼 최고의 영광자로 만들어 주시려는 게 들어 있습니다.  믿는 내가 그 가치를 아느냐?

그렇게 사신 삶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들어 있고, 그렇게 사신 이유가 들어 있고, 결산이 들어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전부가 말씀인 것입니다.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들어가서 예수님께 ‘누구를 위해 그렇게 사셨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그렇게 사셨고, 나를 위해 죄를 이기셨습니다.  이게 희생이요, 사랑입니다. 

가치 있는 이 삶을 우리가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냥 옛날얘기 식이 아니라 나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와서 예수님의 사랑의 그 삶, 그 정신이 나에게 꽂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천국에서 편히 쉬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으로 다가와서 계속적으로 구속사역을 하십니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감화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의 인도대로 바로 순종만 해 나간다면 나는 예수님의 그 삶, 그 정신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믿는 효력이요, 예수정신인 것입니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기초로 재 작성했습니다.http://909.mch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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