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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하는 믿음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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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자들에게 기도는 참으로 고행입니다. 율법 아래서 하나님의 친자식이 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은 기도를 오래 많이 해야 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린 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나마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기도를 할 권리라도 있었지요. 이스라엘의 정성을 대신해 다른 민족은 귀신을 향해 제물을 드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도를 닦는 것이요, 정성을 드려 신을 감동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의 개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관습을 벗어버리게 하셨습니다. “오래 많이 해야 들어지는 게 아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의 마음이 네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 그리고는 내 이름으로 구하면 된다.” 이렇게 기도는 복음이 됩니다.

죄 많은 나를 피하고 안 만나려는 하나님을 괴롭혀 간청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신자도 많지만요. 나를 돕기 위해서 언제나 옆에서 준비하시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멀리 두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중간에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 예수요 성령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 경배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1. 예수는 응답하신다

나병환자 10명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나병은 오늘날의 에이즈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전염이 잘 됩니다. 병에 걸리면 절대로 낫지 않습니다. 말초신경이 파괴되어 사지가 변형되고 손발가락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서 격리됩니다. 그리고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이 흉악합니다. 무서운 공포와 고독, 그것이 나병환자가 경험하는 세상입니다.

그러한 고통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예수께 부르짖었습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한 명이 외쳐도 처참할 것입니다. 열 명이 일제히 소리 지릅니다. 구원하러 오신 예수입니다. 어찌 응답을 안 하겠습니까. 이것이 교회요 이것이 합심기도입니다. 효과가 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서로 기도를 돕습니다.

그 기도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여라.” 율법대로 하신 것입니다. 화끈하게 그 자리에서 고쳐주지 않았어요. 그냥 그렇게 말합니다.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증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어떻게 가란 말입니까? 그 상태로는 제사장들이 나았다고 증명해주지 않습니다. 욕먹고 쫓겨나면 실망만 더 크지요.

이것이 기도한 사람들의 느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문제는 그대로 있습니다. 자꾸만 기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예수는 자기 이름으로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대로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응답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상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기도의 내용을 믿는다면 마음도 거기 맞추어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한 행동이 믿음을 더 강화시킵니다. 서로 상승작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영의 세상에 영향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마음의 자세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응답의 가장 큰 조건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합니다. 어느 시점인지는 몰라도 나은 것을 깨닫습니다.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바닥을 밟는 느낌이 있습니다. 얼굴을 만져보니 만져지는 느낌과 만지는 느낌이 다 살아났어요. 예수는 반드시 기도를 들어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14:13) 나병환자 같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려 세상에 오셨어요.

열 명 모두에게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분명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이건 주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아니, 일상적인 일도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도 기도하지 않겠어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대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믿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구하세요. 나병환자들처럼 외치세요. 혼자서도 하고 교회에 나와서 함께 외치기도 하세요. 계속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거기 맞추어 행동하세요. 믿는 사람은 절대로 지치지도 낙심도 안 합니다. 반드시 얻어요.

2. 더 나은 믿음으로 도전하라

여기 나병환자들을 다시 살펴봅시다. 그들이 병 나은 것을 보고서 어떻게 했나요? 제사장에게 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더 급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족이었겠지요. 그동안 여러 해 동안 못 만났습니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은 나중에 보여도 됩니다. 모두 우선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김홍도 목사님이 시골에서 목회할 때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가 하나 찾아와 적선을 부탁합니다. 돈을 주었더니 적다고 투정입니다. 그래서 말했어요. “돈은 없으니 들어오시오. 내가 하나님께 기도 해주겠습니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했더니 한없이 울며 품에서 무엇을 꺼냅니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얼마나 만나보고 싶었겠어요.

열명중 하나만이 가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도 일차적으로 제사장에게 안 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족보다 더 먼저 만나야할 대상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고쳐준 예수였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 이 어인 축복입니까! 제 평생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해도 모자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로 달려왔습니다. 점잖고 품위 있게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게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눈물이 넘쳐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에이즈 걸린 사람이 나으면 그렇게 안 하겠어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모두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두 병이 나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구원하는 믿음을 확인합니다. 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앞의 사람들은 병 고침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냥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래 병 없던 사람보다 나은 게 없어요. 그러나 이 한 사람만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참으로 주고 싶어 하는 것을 받았습니다. 무엇일까요? 영원한 구원입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육신만 나은 게 아닙니다. 영혼의 나병, 에이즈를 고침 받습니다. 하나님의 친 자식이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상에서 생명이 공급됩니다. 삶은 의욕이 넘치고 여유로워집니다. 이것이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어떤 목사님이 불쌍한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남편이 폐병에 걸려 누워있습니다.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교회 나오지 않았어요. 얼마 후 부인이 나왔어요. 남편을 살려내라는 겁니다. 몸이 건강해지자 매일 술을 마시며 부인을 때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추운 날 술 먹고 개울에 빠져 얼어 죽었어요. 도로 살려내라는 겁니다.

그게 사는 것입니까? 병 걸려 누워있는 것도 그렇고 나아서 술 먹고 못된 짓 하는 것도 그래요.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아홉 명의 나병 나은 사람들도 그래요. 구원하는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게 삶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다가 끝나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도 아까운 게 아니겠어요? 구원하는 믿음을 사모해야 하지 않겠어요?

3.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라

곽선희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1980년에 아웅산에서 테러로 우리나라 각료가 17명이 참살됩니다. 어떤 높은 분이 차가 늦게 도착해 그 끔찍한 자리를 면했습니다. 사람들의 살점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면서 공포에 질립니다. 부랴부랴 대통령과 특별기로 돌아왔습니다. 김포에 내리니까 새벽 4시랍니다. 서로 인사도 없이 헤어졌답니다. 어디로 가나?

우선 택시를 탔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소망교회로 가주세요.” 이 분은 새벽기도를 나가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냥 집으로 갈 수가 없더랍니다. 교회에 와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누구든 그렇습니다. 어려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는 집에 안 가고 교회로 먼저 갑니다. 감사하지 않고는 집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영적인 느낌입니다. 그냥 한 번 기도하고 끝나면 안 되지요. 마음을 하나님에게까지 높여야 합니다. 칭찬들은 나병환자처럼 해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 은혜로 살았어요. 그러나 그걸 몰랐어요.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겠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세상에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나서겠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멀리서 문제나 해결 받으려 합니다. 예배에 감격이 없습니다. 예배에 열심을 내지도 않아요.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녀들만을 위해서 만드신 축제의 자리입니다. 성령에 잠기는 시간입니다. 천군천사가 다 모인 이 자리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예배는 신자에게 의무요 특권입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옵니다.” 9명의 환자들이 한 말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요? “멀고 시간 많이 걸려 못 옵니다.” “우선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주일예배 밖에 못하지만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게 좀 낫습니다. 그러나 함께 부르짖는 중요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 목욕을 해야 삽니다.

여기 병 나은 사람처럼 구원 얻는 믿음을 위해 나오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여러 예배를 참석하세요. 새벽에도 도전을 해보세요. 매일이 어려우면 한 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것도 어려우면 월삭이라도 나오겠다 결심하세요. 내가 나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생각해 보세요. 행동으로 스스로의 믿음을 확인하세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왔느냐?”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문제만 해결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복을 주시기 위해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라서 진동하세요. 그리고는 구원하는 믿음으로 세상으로 나가세요. 하나님과 함께 가정도 직장도 삶 전체도 구원해 보세요. 경배하면 삽니다.

QT를 위한 질문:

1. 복음적으로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서/1-3)
2. 합심기도와 예배의 중요성을 말해보세요.(1/2)
3. 기도해도 응답이 경험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1/3-5)
4. 구원하는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나요?(2/5,6)
5. 예배는 신자에게 의무인가요 특권인가요?(3/3,4)
6. 구원하는 믿음을 가지고 예배의 유익을 말해 보세요.(3/6,7)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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