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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몸의 부활(2) :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으면" (고전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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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死체험의 실체>
의학적인 용어로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거의 죽음에 임박해서 여러 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현상이지요.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라는 사람이 1976년에 쓴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라는 책이 있는데
임사체험을 한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집필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경험담에는 몇 가지 뚜렷한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환자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의사의 사망선고 내용을 듣습니다.
환자가 죽은 뒤 그 영혼이 몸에서부터 빠져나와 의사들이
자신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을 공중에서 지켜보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대개 이와 같은 체험을 한 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의 존재를 만납니다.
사람들은 이 때 느끼는 사랑과 평화의 감정이 너무 좋아서
세상의 육체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멜빈 몰스(Melvin Morse)라는 사람이 쓴 『빛으로 더 가까이』(Closer to the Light)라는
책은 아주 심각한 신장 장애로 임사체험을 한 16세 소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은 병원 대기실 의자 위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간호사가 맥박을 짚어봤지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소년은 다시 소생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임사체험을 했던 것이지요.

소년이 겪은 죽음에 대한 경험담은 이랬습니다.
"저는 갑자기 불빛이 내 주변 사방을 비추기 시작한 터널의 어떤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시속 수백 마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저는 누군가 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그 분은 7피트(약 210 센치) 정도의 신장에
허리에 소박한 허리띠를 맨 채 길다란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머리카락은 황금색이었으며, 비록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았지만
온 몸에서 평화와 사랑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이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마 저를 천국까지 안내할 천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소년의 이야기처럼,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와
천국의 실체까지도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경험을 합니다.
흔히 자신의 시체 앞에서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는 광경을 영혼이 지켜보는 것이지요.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는 귀담아 들어야 할 교훈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해서 그 옥석(玉石)을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른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무조건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임사체험을 한 분들의 이야기 중 일부는 사후의 세계에 대한
희미한 윤곽을 알려준다는 사실에서는 귀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임사체험이 성경에 있는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합니다.   
사탄도 사람들을 미혹해서 임사체험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가 정말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죽음 가까이 까지 근접한 임사체험이 아니라 진짜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transition)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도달하게 될 마지막 종착역(destination)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 근처까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과 내세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몸의 부활을 믿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임사체험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세상 사람들의 경험담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세세 무궁토록 변함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적 사생관, 특히 내세관에 대해서 확실한 자세를 정립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철학적인 사생관이나 동양종교적이고 샤머니즘적인 내세관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서 아주 혼합적이고 그릇된 관념 속에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도된, 혼합적이고 그릇된 사생관, 내세관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하여
사도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설파하고 있는 부활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활에 관한 첫 번째 설교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희랍 철학에 영향을 받아서
영혼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육체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 육체의 죽음이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물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육체란 죽은 후 시체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불멸하는 영혼이 썩어 없어질 육체로부터 사람을 건져내는 출구로서 이해했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불멸설만 믿고 육체, 그것도 죽은 사람의 시체가
다시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주 신비한 영적인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유행했던 희랍 철학사조에도 밝은 매우 이지적인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볼 때 이들, 죽은 사람의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교인들은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왜곡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구속론을 다같이 붙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육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부활할 때 몸은 부활하지 않고 영혼만 부활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창조시 인간에게 주신 몸을 버리는 경우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이 영혼과 정신과 육체의 삼분법적 구조로 이루어졌다면
부활할 때 다함께 다시 살아야지 영혼만 살고 정신과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만다면 그 구원은 반쪽 구원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인류의 구속은
전인적인 구속이지 부분적인 구속이 아닙니다.
영혼과 육체의 구속이지, 육체를 도외시한 영혼만의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면 영혼과 육신이 다 구원을 받아야지
육신은 썩어 없어진 상태에서 영혼만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살전 5: 2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여기 보세요.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주의 종말이 찾아올 때 우리의 영혼만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온 영과 혼과 육체까지도 다 흠 없이 보전되어 전인적 구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의 부활론은 '우리의 육체성을 다시
긍정하는 것'(the repredication of our corporeality)에 다름 아니라는 말은 옳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기독교는 결코 육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희랍철학자들처럼 영혼불멸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변형된 부활설을 믿습니다! 

여러분, 고전 15: 3-5에서 사도 바울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죽으셨다는 것, 묻히셨다는 것,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나타나셨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육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영혼과 정신, 그 윤리적 가르침, 예수님에 대한 추억만이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진 예수님의 영혼이 전인격적으로 부활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이른바 아주 신령한 세계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 중에 육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철학사조에 영향을 받아서 영혼은 불멸하나 육체는 소멸되고 말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참선을 하듯이 인간의 내면 세계,
즉 영혼의 구원에만 집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의 부활이
육체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몸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로 이런 이들에게 주는 반박의 말씀이 본문 말씀입니다.
12절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의 희랍 원어는 'anastasis nekron'인데
그 원 뜻은 '시체가 일어난다'(rising of the corpses)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진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인 사실인데
왜 죽은 사람의 시체가 직접 일어나 부활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느냐는 말씀이지요.

그러면서 바울은 13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만일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부활하실 수 있었다는 말씀이지요.

자, 이제 14-19절 말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 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① 우리의 선포가 헛것이 되고 맙니다(14절).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다시 부활하신 일이 없다면
바울 일행이 선포한 모든 복음이 헛것이 되고 맙니다.
헛것이란 말은 쓰레기요 휴지조각같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이 없었다면 바울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
증거한 모든 복음의 내용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하여 15절의 말씀처럼 바울 일행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시지 않았는데도
살리셨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다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2천년 동안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순교를 각오하며
전해온 모든 복음의 내용이 헛수고가 되고 말 것입니다!

② 여러분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14, 17절).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믿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는데 받아들인 사람들이 속아넘어가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해준 바울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거짓말쟁이가 전해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 역시 소용없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사실인데 부활하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③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다 멸망했을 것입니다(18절).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거짓말쟁이가 되어서
그동안 선포한 모든 내용이 휴지조각처럼 헛것이 될 뿐 아니라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은 고린도교인들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
즉 먼저 믿은 선배들 가운데 부활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세상을 떠나
무덤에 갇힌 이들은 완전히 소망이 끊어지게 됩니다.
18절 말씀처럼 이들은 완전히 망한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서 아무 희망이 없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살전 4: 13-18에서 부활의 순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제일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일어나고
살아있는 우리는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시나리오가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은 죽은 것 자체로서 끝이 나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
그 어떤 희망도 기대도 없다는 것이지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바울의 논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수 없습니다.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 일행이 목숨을 걸고
선포한 모든 복음의 내용이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니, 2천년 동안 순교의 피를 흘리며 전해 온 일체의 복음이 헛것이 되고 맙니다.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니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역시 속아넘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인 고린도교인들의 믿음이 헛것이 됩니다.

아니,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선교사님들의 전도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오늘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더 나아가 2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에 희망을 걸고
먼저 죽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운명도 비참해집니다.
한 줌 흙이 되어 아무 소망 없이 그들의 운명은 끝나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19절에서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표준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부활도 없고 내세도 없이 그저 현세에만 기대를 걸고 산다면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죽은 자의 몸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 자신의 부활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혼불멸만 믿을 뿐,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적인 육체의 부활로 믿지 않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정신이나 윤리 도덕의 부활,
아니면 예수님의 내면 세계, 즉 영혼의 재각성 정도로만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확실한 것이기에
믿을 수 있지만 부활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믿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반쪽 그리스도인들에 불과합니다.

롬 10: 9은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을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앙꼬 없는 찐빵이요, 불빛 없는 등대요,
학생 없는 학교요, 환자 없는 병원이요, 하드 없는 컴퓨터요,
소시지 없는 핫도그요, 김 없는 김밥이요, 고추장 없는 비빔밥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노른자 없는 계란 후라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 모두는 영혼의 불멸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육체의 부활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부활뿐만 아니라 온 인류 부활의 초석이 되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우리 자신도
영광스럽고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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