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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는 자녀의 나침반이다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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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데 “네가 보고 싶은 책을 골라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딸이 골라놓은 책을 보니까 아이가 내놓은 책은 “올바른 자녀 양육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너 왜 이 책을 골랐니?”하고 엄마가 물으니 이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가 나를 제대로 양육시키나 보려고요.” 했답니다.
자녀! 내속으로 낳았지만 내 맘 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자녀의 나침반입니다.
나침반! 아시지요? 자석바늘 침으로 방위를 알게 하는 도구 말입니다. 일설에 나침반은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당나라에 주었거든요? 그랬더니 당나라사람들이 신라에서 온 침반이라고 해서 라침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앞에 ‘나’자가 신라의 ‘라’자라고 합니다. 신라의 침반, 그래서 나침반입니다. 대단한 민족입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표시하는데, 표시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침반의 바늘은 2개의 다른 색이 칠해져 있습니다. 파란색은 남쪽, 붉은색은 북쪽입니다. 나침반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게 됩니다. 동서남북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가지고 비행기가 운행이 됩니다. 깊은 산속에서도 나침반이 있으면 방향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망망대해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나침반이 무엇이냐? 바로 부모입니다. 이와 같이 자녀들은 부모를 보면서 자기 인생의 방향을 정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의 아들이 신대원에 갔습니다. 면접을 하는데 면접관이 “자네는 아버지도 목사, 할아버지도 목사이신데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아주 명답을 했습니다. “얘, 제가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목사 밖에 없어서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아니 나를 보고 무엇을 배웁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여러분, 몰래카메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여러분의 자녀들입니다. 아이들은 다 보고 있습니다. 본대로 배우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 문제아가 있으면 문제부모가 있다 」라고 A. S 니일 이란 영국 교육개혁자가 말을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모델입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똑똑한 여 집사가 있었습니다. 일류대학에 외국유학, 그리고 좋은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 분은 매사가 완벽합니다. 자녀 교육도 똑 부러지게 해서 학교 공부도 전교 1등을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사춘기가 될 때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학업을 못하게 됐습니다. 엄마의 완벽함과 일류병에 자녀가 병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만나는 사람들도 이분만 만나면 긴장을 합니다. 그러니 이 자녀들은 얼마나 더 긴장을 하겠습니까? 참 안됐습니다. 여러분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문제입니다. 이 엄마는 자기의 욕심을 자식에게 심었습니다. 아이의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의 입장에서만 생각을 했습니다.

한 아이를 바이올린을 시키기 위해서 그 아버지는 속옷을 덧대어 입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번은 이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우리아이 1억짜리 바이올린을 사줬습니다.”‘ 나는 안 입고 안 먹고 해줬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하는 자랑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도 감동이 안 되더라구요. 그런다고 자식들이 다 좋아합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자식이 뭐라고 한줄 아세요? “아버지가 내게 해 준게 뭐가 있어요?” 그랬답니다. 1억짜리 해주고선 나중에 나는 속옷하나 못 사 입으면서 너에게 다 해줬다. 하면 이거 부담스러운 겁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야지 그것을 가지고 제세를 하면 안 됩니다.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되는 겁니다.

문제부모는 무식하고 가난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있고 도덕과 윤리가 없는 집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배웠고 돈도 있고 그리고 신앙도 있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문제아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학교와 직장 어디를 가든 1등 만하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이 여 집사는 빨리 병 앞에서 두 손, 두 팔을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와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제발 내 딸을 살려달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 집사의 영이 회복되어서 새로운 환경의 길이 열리고 이 딸은 새로운 곳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자녀교육은 내 지식이나 경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됩니다. “주여 내 자녀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 자녀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번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넣어서 해봅시다. “주여 내 자녀 OO에게 복을 주옵소서!”
가네히라 케노스케의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아버지가 “내가 웃으면 거울이 웃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내가 좋은 모델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면 자녀들에게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받는 자녀가 될 것인가의 가르침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2가지를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나침반을 보게 되면 파란색과 빨간색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손을 잡아야지요. 방향 판에는 언제나 빨간 것과 파란 것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첫 번째 파란색 바늘은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노회에 개척교회를 하신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어렵게 목회를 하십니다. 교회는 상가 건물입니다. 사택이라고 해봐야 옥탑 방입니다. 안방이라고 하는 곳에 거실 겸, 주방 겸 쓰는 그런 곳입니다. 그 방에 딸려서 있는 방에 할머니와 두 아들이 삽니다. 말이 집이지 너무나 환경이 열악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사모님, 두 아들은 교회를 위해서 동분서주하십니다. 그런 형편이니까 자녀들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두 아들은 고등학교나 겨우 졸업했을까요? 옆에서는 걱정을 했습니다. ‘저 애들 앞으로 뭐가 되려나....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지? 대학도 못가고 특별한 재주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 하시는 일에 놀랐습니다.
큰아들 군대 갔다 와서 일자리를 구하는데 마땅히 자리가 없었습니다. 구청에서 나오는 신문을 봤더니 임시직 채용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남들은 다 채용이 됐는데 이 큰 아들은 안 된 겁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안됐습니다. 공부를 잘 못했으니까 자포자기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답니다. 청와대 행정직을 급히 구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마침 구청에 이력서 들어온 것 중에서 다 채용이 되고 남은 것은 이 한 사람뿐이라, 큰 아들 서류만 남아서 청와대에 올라간 겁니다. 그래서 임시직으로 채용이 됐다가 청와대 정식직원이 되어 관사도 나오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산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번 노회 기간 중에는 청와대 직원 부모초청 대통령만찬에 100명이 초청했는데 이 목사님 내외가 대표 인사를 하게 됐다고 해서 다를 잘 하시라고 축하해 드렸습니다.

작은 아들도 아버지 교회위해 복학으로 피아노를 배워서 예배 반주를 했는데 가진 기술이 없고 해서 비디오 학원에 비디오 배우러 갔다가 특별채용이 돼서 KBS ‘VJ특공대’ 가서 찍더니 지금은 ‘무한지대Q’에서 촬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촬영장에서 아들에게 반한 대학졸업자인 여성과 결혼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들 이 개척교회 목사님을 보고 자식 축복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사모님과 같이 앉은 자리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들은 다 대학가고, 남들은 다 뭔가를 하겠다고 그럴 때, 장학금을 탄다고 했을 때, 왜 우리 애들은 공부도 못하고 장학금도 못타고 대학도 못갈까? 하며, 그럴 때는 복덩이라는 생각을 못하셨지요? 오히려 웬수 덩어리라고 생각을 하셨죠?” 했더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걱정을 했는데, 왜 이 엄마가 걱정을 안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얼마나 기쁘세요? 얼마나 좋으세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크고 비밀한 은혜가 이런 겁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사모님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이 노회에 와서 20년 정도를 만났는데 정말입니다. 한번도 목사님, 두 아들, 교회, 모시고 사는 어머니에 대해서 한마디 불평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항상 가족들에게 너그럽습니다. 항상 감사한 얘기만 하십니다. 지금도 며느리가 아이 봐달라고 하면 “그래 알았다. 이렇게라도 도와 줘야지..”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녀들을 기쁘게 해줘야 합니다. 왜? 너그러워야 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자식은 여호와여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 선물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는 겁니다. 너그러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상급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석이니까 귀하게 여겨야지요. 노엽게 하지 말아야지요. 하나님이 하실 텐데 왜 내가 하는 걸로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심었고 아보로가 물을 주었으며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우리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을 자라게 해주신다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요. 하나님의 선물은 주신분의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텐데.... 선물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게 돼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해서 주신 자식인데....

선물에는 보내는 이의 마음과 정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선물합니다.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시지요? 받는 사람이 좋아하면 나도 좋고 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선물을 줬는데도 무관심하거나 투박하거나 불평을 하게 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다음에 주나 봐라’하는 생각만 듭니다. 자식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자녀가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내 욕심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남들처럼 자라지 않는다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속상해 하면 자녀는 상처를 받게 돼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선물이 얼마냐? 크던 작던 일단 받으면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건데... 꼭 필요했던 건데.....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은 더 주고 싶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을 보면서 크고 작던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그리고 자녀들에게 감사하세요. ‘내 딸, 내 아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어쩜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자녀들을 볼 때마다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이 네 앞길을 책임지실 꺼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실 꺼야. 천군 천사로 보호하실 꺼야. 성령님이 함께 하실 꺼야. 잘될 거라 믿는다.’
그대로 봐주면서 축복하고 감사하세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잖아요. 우리를 죄인으로 봤으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잖아요. 나를 지옥백성으로만 봤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생명으로 보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희생하시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산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겁니다.

한사람의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육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교육하고 배울 것이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를 하면 내가 하는 것만큼 자녀들이 복을 받게 돼 있습니다. 내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5월 5일보다 앞서서 어린이주일을 드리려고 저희교회만 특별히 한 주 당겼습니다. 이번 5월 5일에 아이들에게 오늘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을 해 보세요. 자식들을 끌어안아 주세요. 지금은 가족들 끼리만이라도 안아보세요. 고 장로님 최 권사님 배웅을 나갔었는데 거기서 장로님을 안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권사님도요. 괜히 눈물을 나더라구요. 안으면서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좋은 소식 보내주세요.” 눈물바다가 돼서 헤어지게 됐습니다. 여러분 그런 일들이 아침저녁으로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간난아이들은 뽀뽀해 주고 얼굴 비벼주고 안아 주어야 합니다. 이 초등학교 다니 아이들한테는 안아주고 목마도 태워주면 좋아합니다. 청소년 아이들은 등이며 팔이며 끌어안아서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보물)입니다. 5월 5일에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하시지 말고 너그러움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자식들을 노엽게 하지말고 자식들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안아주시고 예뻐하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잘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렇게 다스리면 좋습니다.

두 번째 빨간색 바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겁니다. 꼭 기억하고 해야 할 일입니다.

한 가족이 오랜만에 좋은 식당에 갔습니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맛있는데 음식이 남았습니다. 그냥 두고 나오기 아까워서 음식을 싸가지고 가려는데 좀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웨이터에게 이렇게 둘렀습니다.
“여보게 웨이터, 남은 음식을 싸주게나, 집에 개가 있어서” 그랬더니 옆에 있던 똑똑한 아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빠, 집에 갈 때 개 사가려구요?”
여러분 정직한 것이 좋습니다. 솔직한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그 솔직함이 무엇이겠습니까?

삼상 2장에 두 가정이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 가정과 한나의 가정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인데 그 아들도 제사장입니다. 제사 드리는 것은 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죽었습니다.
한나라는 여인은 자식 못 낳는 여인인데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어느 정도 기도를 하는지 술 취한 여자가 아닌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 속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나한테 아들 없는 데,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곳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직책이 있다고 하나님한테 더 큰 은혜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직책이 없다고 복을 못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입니다. 우리는 너무 직책에 연연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역사가 있으십니다.
묻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직도 교훈으로 받아들이십니까? 교훈이라니요? 그러면 여기 안 오셔도 됩니다. 다른 곳에 가도 교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책방에 가도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여기십니까? 그것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으십니까? 너는 왜 이러냐구? 여러분 아직까지도 그러십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남은 게 뭐있습니까? 교회가 그렇고, 한국이 그렇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남을 정죄하고 남에게 충고를 했는데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속상해 합니까? 그건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기쁩니까?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남을 격려하고 칭찬을 하니까 마음이 좋습니까? 그러면 그건 하라는 겁니다. 내가 해서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겁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는 겁니다. 약속으로 믿고 그 약속 앞에 자기를 집어넣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 말씀을 따라갔기보다 약속을 따라 갔습니다.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약속을 들었잖아요. 그 약속 믿고 나아갈 때 금의환향을 할 수 있던 것입니다. 요셉이 남의 집에 팔려가고 감옥에 가도 좌절하지 않은 이유가 무언지 아세요? 하나님이 주신 꿈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보게 되면 믿음의 선조들은 약속을 따라 갔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약속의 말씀입니다. 교훈이 아닙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자기를 변화시키세요. 그 말씀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세요. 기도해서 응답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약속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교훈으로 주어지거나 율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와 행복해지려면 먼저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 문제 해결해야 합니다. 미리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먼저 열 받지 않아야 합니다. 감정적이 됩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습니다. 먼저 물어보지 않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 먼저 단정 짓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은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약속 믿는 부모의 3가지 역할은
① 제사장 역할 -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119기도 표를 항상 갖고 다니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② 선지자 역할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경을 폈을 때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셨네. 우리도 이렇게 살면 복 받을 꺼야. 말씀대로 살고 복 받자! 하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③ 왕의 역할 - 왕은 다스리는 분입니다. 권력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왕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상의를 했습니다. 이것이 왕으로써의 부모역할입니다. 하나님 앞에 물어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자녀를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직분을 가지고 자녀들을 훈계하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일을 가지고 누르려고 하지마세요. 그 아이의 능력을 가지도 누르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 자녀가 복을 받고 못 받는 것은 부모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기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그 약속 앞에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왕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녀의 나침반입니다. 방향을 제시할 뿐이지 힘으로 권력으로 눌러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그러움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할 때 하나님께 우리에게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우리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나침반은 하나의 바늘이지만 한쪽에는 파랑, 한쪽에는 빨강입니다. 파랑은 하나님의 너그러운 마음, 빨간색은 하나님의 약속, 우리가 잘 믿고 잘 방향 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을 믿음 안에서 잘 키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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