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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얻어야 (고전 9: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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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9-27.

  저는 지난 부활절 연합 성회를 위해서 호수 시드니를 방문했습니다. 시드니는 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세계 7대 미항 중의 하나지요. 하루는 그곳 목사님들이 저를 어느 언덕 위의 넓은 공원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거기 서니까 시드니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공원의 주위에는 집들이 쭉 들어서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집은 최하가 100만 불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이 넘지요. 그런데 한 구역만 집이 없는 넓은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물었습니다. “아니, 왜 여기만 집이 없습니까?” 저를 안내하시던 목사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드니에 아주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공원을 사서 시드니 시에 기증을 하면서 “여기에는 절대로 집을 짓지 말고 모든 시민들이 올라와서 이 아름다운 바다를 보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 부자가 필요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사업하시는 분들께 제가 간곡하게 축복해 드리는데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자도 누구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특별히 돈을 버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기독교 장로님이 운영하는 ‘이랜드’라는 회사가 한국의 까르푸를 1조5천억 원에 샀다고 합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여러 해 전에 그분이 친구들과 피자집을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모두 피자를 먹는데 이분만 먹지 않고 뭐라고 중얼중얼 하더랍니다. 친구들이 “아니, 뭘 하냐? 피자 먹어라”하니까 “아니야, 잠깐 기다려봐” 하더니 밀가루가 얼마, 토마토소스가 얼마, 부재료가 얼마 하면서 착착 계산을 하더니 “내가 이 피자 보다 더 좋은 피자를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많이 공급할 수가 있겠다.”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피자 체인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은사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은 회사를 만들어 앞으로 20, 30년을 키워서 번창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기업인들이 많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이 사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건강도 참 좋은 것입니다. 물질도 좋은 것이며 명예도 좋습니다. 인기가 많으면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모입니다. 훌륭한 축구 선수는 한번 골인을 하고 엎드려 기도만 해도 전도가 됩니다. 권력은 또 얼마나 좋습니까.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다 움직입니다. 지식도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5%의 사람들에게 좋은 뇌를 주셔서 공부를 잘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책이 좋고 지식을 추구하고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도 기술이지요. 대단한 기술입니다. 저는 음악인들을 볼 때마다 놀랍니다. 누군가가 첼로를 만들고 누구는 음악을 만들고 또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많은 것들이 지금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잠언 11장 31절에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생명나무가 하나씩 있는데 거기 생명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열매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인뿐 아니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사람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서는 다르지만 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지혜를 추구해 간다면 반드시 사람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재물 건강 명예 지식 인기 권력 기술 등은 언젠가는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나 사람은 영원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저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갈 수가 있습니다. 우주만물 가운데 하나님만 빼고는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보면 이렇습니다. 일은 잘하는데 사람을 자꾸 놓칩니다. 재주도 좋고 지식도 많은데 사람이 붙지 않습니다. 돈은 많은데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권력은 있으나 모두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돈과 인기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혜가 부족해서 사람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저를 바꿔 주십시오. 제 생각이나 언어나 모습이 변화되고 정말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사람의 복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훌륭한 한 분이 계십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 분은 자신을 두고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종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종이 되어 본 적도 없으며 사회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훌륭한 자유인이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고 얌전해야 할 필요도 없고 섬겨야 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의 사람입니다. 총독은 바울에게 “당신이 지식이 너무 많아서 미쳤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학부를 졸업해서 지식인으로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바리새인으로서 최고의 종교당에 들어간 멤버였습니다. 앞장서서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유대 사람으로서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이중국적을 가졌습니다. 이중국적은 거저 갖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시민의 자녀로 태어나거나 돈으로 시민권을 사거나 로마를 위해 인정할 만한 큰 공헌을 해야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의 모든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꿀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여러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내 집에서 내 일 해서 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거나 겸손해 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이 “내가 스스로 자원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다른 사람을 자기 주인처럼, 윗사람처럼 생각하며 스스로 종이 되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섬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찾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구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누가 강제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비워서 예수님처럼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집사 직분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아시는지요. 요즘은 직분과 지위를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만 본래는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모르고 받으셨지요? 큰 실수 하셨어요. 어느 훌륭한 부인이 집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성경공부를 하고 주일을 잘 지키고 세례를 받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사랑방과 교구의 심사를 거쳐 교회에서 집사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저는 이번에 집사를 못 받겠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왜 그러십니까?” “자격이 없는 제가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올라간다고요?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이 교회를 10년 동안 다니면서 보니까 다 올라가던데요. 저는 올라갈 자격이 없습니다.” “집사가 올라가는 것인 줄 알고 있으면 금년에 하지 마십시오, 내려가는 것인 줄 알면 하십시오. 집사는 한 단계 내려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려고 한 단계 자원해서 내려간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목사님,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임명을 받으십시오.” 보통 사람은 제게 이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때부터 그 분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정말 한 단계 내려가서 무슨 일이든지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섬기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격했습니다.

  집사가 한 단계 내려간 사람이라면 권사는 두 단계 내려간 사람입니다. 가끔 착각해서 두 단계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지요. 성령이 아십니다. 성도가 압니다. 안수집사는 어떻습니까? 역시 두 단계 내려간 사람들입니다. 장로는 세 단계 내려간 사람들입니다. 목사는요? 아예 바닥에 엎드린 사람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목사를 막 밟습니다. 저도 몇 번 밟혔습니다. 그래도 자원해서 종이 된 사람들이니까 밟아도 때려도 맞아도 입 다물고 “마음껏 밟으십시오.” 하는 것이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가 만약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려면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서 섬겨라. 그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고, 제일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낮아지라. 낮추는 자를 높일 것이요, 버리는 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자유로운 자이지만 스스로 종이 된 이 모습을 여러분과 제가 배우게 되길 바랍니다.

  연세가 제법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저를 만난 할머니는 그 동안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저에게 합니다. “저 양반은요, 자기 커피를 평생 끓여본 적이 없어요. 맨 날 커피 가져와, 신문 가져와, 양말 치워, 그러기만 해요.” 그것이 한이 맺혀서 저에게 이르는 겁니다. 평생을 같이 산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안됐더라고요. 자녀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세 자녀가 모두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그 분은 사람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지혜롭지 못하게 산 것입니다. 가장이 되고 남편이 되고 아버지는 되었으나 유익하게 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인생을 마무리 하는 노령에 가족을 잃어버린 외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자,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람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사람을 얻으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자기를 낮추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 자기를 맞추며 그들의 평화와 행복과 안위를 위해 잘 섬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도 다른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20절).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겠다는 사도바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지요. 우리가 이웃의 영혼과 이웃의 행복과 유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며 섬길 때 그 사람은 감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 눈물이 핑 도는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자기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만 돌보는 엄마도 가끔 있습니다. 자기가 힘들다고 자식을 버려서 아이가 평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는 희생적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거구의 남자라도 ‘어머니’ 하면 고개를 떨굽니다. 자기 자식을 위하여 자기 몸과 마음과 영혼과 시간과 피를 흘려서 바친 어머니들 때문에 이 땅에 아름다움이 있고 사랑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사람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고집만 피우고 자기 가치만 추구하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너무도 조그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하나로 똘똘 뭉쳐진 사람은 조그만 보따리 밖에 안 된다”(A man who is wrapped up with himself makes a small package.)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는 보따리를 풀어야 합니다. 나를 풀어서 내 가족과 교회와 이웃에게, 사회와 국가와 민족과 세계에 유익이 되는 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철저히 훈련해야 됩니다. 사람을 얻으려면 사람과의 관계를 잘 계발해야 되고 어떻게 해야 내가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질 것인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것인지 연구해서 철저히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위대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에릭 리델이라는 육상선수가 있습니다. 80년 전에 영국의 유망한 100m 선수였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올림픽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면 그 흘리는 땀과 고통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리델 선수가 출전하려던 100m 예선이 마침 주일날 아침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큰일입니다. 시합에만 나가면 일등은 확실한데 대회를 나갈 것인지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나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100m 예선에는 못나갔지만 주중에 하는 400m가 경주가 남아있었습니다.

  100m 달리기와 400m 달리기는 다릅니다. 짧은 시간에 전력을 다해야 되는 100m 선수가 열심히 훈련을 하여 400m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밑을 보며 뛰는데 리델 선수는 하늘을 보며 뜁니다. 마치 하나님을 쳐다보며 뛰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100m 경기를 희생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400m를 뜁니다.” 그리고 400m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룬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라는 영화를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훈련의 결과입니다. 영적인 훈련과 육적인 훈련을 통해서 400m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우주보다 더 존귀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훈련을 해야 합니까?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표정 태도 습관 인격을 영적으로 변화시켜서 나를 통해 사람들이 주님께로 인도받고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상을 받기 위해서도 철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상은 세상의 상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세상이 칭찬하는 상은 잠깐입니다. 저는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과 약력이 실린 신문 기사를 가끔 읽습니다. 신문에 날 정도면 유명한 사람일 텐데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방향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는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영혼을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26절).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면류관을 향해서 우리 자신을 훈련하고 사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가족을 얻고, 내 친구들을 얻고, 이웃들을 얻기 위해 그렇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이 어느 유능한 골프 선수를 일주일 동안 초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 선수가 왕에게 골프를 지도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왕은 선물을 하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왕과 함께 일주일 동안 골프 친 것도 영광인데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선물이 필요 없습니다.” “아니요, 당신 평생에 나와 함께 골프 친 것이 기억되도록 선물을 하고 싶소.” “그러면 좋은 골프채를 하나만 주십시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선수는 금으로 만든 골프채일까 아니면 이름을 새기고 보석을 많이 박은 골프채일까 기대하며 기다리는데 골프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봉투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이라고 적힌 편지가 한통 왔습니다. 골프채를 기다리던 선수는 실망한 채 편지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나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미국 아름다운 곳에 골프장을 하나 선사해 드립니다. 평생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골프채가 아니라 골프장이 온 것입니다. 그는 기름이 많이 나오는 나라의 왕이거든요. 여러분과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분을 섬기십시오. 진심으로 섬기십시오. 그 분을 위해서 사람을 얻으십시오. 그분을 위해서 훈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썩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골프장을 주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지만 재물과 함께 사람을 얻습니다. 지식과 함께 사람을 얻습니다. 기술과 함께 사람을 얻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건강과 함께 사람이 관심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있어서 여러분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인도받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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