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눅 18:15-17)

  • 잡초 잡초
  • 859
  • 0

첨부 1


<워즈워드의 무지개>                   
하늘의 무지개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 설렌다.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래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바라기는 내 목숨의 하루 하루여
천성의 자비로써 맺어지거라.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now I am a man,
So be it a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by natural piety>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무지개」(Rainbow)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서도 감동할 줄 모른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노래합니다. 
사람이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이지요.

그런데 이 시를 보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저는 두 가지 해석이 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지금은 비록 어린이지만 언젠가 어른이 될 날이 오기에
오늘의 어린이는 내일의 아버지라는 뜻으로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어린이들을 함부로 대해서 안 됩니다.
오늘을 보면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내일은 아버지가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린이들 속에서 내일의 아버지를 미리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아이가 자라나 장차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기에 인격적인 대우를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여러분 모두는 어린이 속에 있는 아버지를
미리 보시고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축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은 어른이 어린이의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를 읽어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되돌아가라는 내용이 뚜렷한 주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가 어른의 모범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늙어가면서도 어린이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사람은 나이 많아질수록 어린아이 때 가졌던 천진난만함을 잃게 됩니다.
마음이 모질고 강퍅해져서 잘 웃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지고 욕심과 경쟁심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하여 워즈워드가 노래했던 것처럼 무지개를 보고서도 가슴이 뛰지 않습니다.
시인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그 순수성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것이지요! 

<신음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할까?>
오늘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아 어린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린이 주일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지난주
국민일보에 난 어린이 기사들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몇 가지 눈길을 끄는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유니세프, 즉 유엔아동기금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세계 어린이들이 매 1분마다 10명씩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4년 현재 5세 미만의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이 영양실조로 인한
저체중 상태에 있는데 이로 인해 해마다 56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개발도상국 어린이 1억 4,600만명이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선진국 어린이 1억 7천만명은 과체중 또는 비만으로 고생하는데
그 중에 5세 미만 어린이만 해도 2,20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못 먹어서 죽어가고 또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눈길을 끈 기사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의
거의 대부분이 부모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통계보고였습니다.
보건복지부의 2005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 4633건 중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83.4%나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나가 죽어!" "나가서 들어오지마!"라는 폭언을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구타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대부분 다른 사람이 아닌 친부모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즈음 부모님들 중에 어린이날만 되면 괴로운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경제 사정이 넉넉지 못한데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은 턱없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휴대전화, 자전거, 킥보드, 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 등은 대부분 수십만원 대에
이르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부모는 그저 한숨만 쉰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문에 난 이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물론 좋은 선물도 중요하고 유명한 곳에 놀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서
신앙교육을 잘 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가끔 심방을 가서 팔순 노모가 가장 바라는 소원이 자식들이 그저
예수 잘 믿었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들을 때 큰 감동을 받습니다. 
사실,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일만 되면 온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예배당에 오는 모습, 얼마나 행복해 보입니까?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여러분들이 진실로 자녀들을 사랑하신다면
자녀들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도리를 온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학교교육도 중요하고 가정교육도 중요하지만 교회교육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시오! 
목회를 하다보면 가끔 공부 때문에 교회에 못 가도록 막는 부모님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공부를 더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더 안정감도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는 자녀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선물이요 기업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자녀일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아무리 훌륭하게 자식들을 키워도 우리는 부족합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자식 농사는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식들이 우리 기대대로 척척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 있는 우리 두 아이가 보고 싶을 때도 많고 걱정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육신의 아버지인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
가까이 있을래야 함께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십시오.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해주십시오.
가는 곳마다 축복된 사람들 만나게 도와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세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상하게도 기도하면 안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본문 말씀을 잠시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람들이 어린 아기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와
쓰다듬어 주기를 바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엄마들은 아이가 첫돌을 맞을 때 유명한 랍비에게
아기를 데려가 축복 기도를 받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심을 쫓아 유대 어머니들이 아주 어린 아기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쳐다본 주님의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무정하고 사나운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그 엄마들과 아기들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스승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금 마음이 몹시 복잡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데 장차 엄청난 일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스승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제자들은 엄마와 아기들이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피곤한 모습으로 회사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맞을 때
아내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오늘은 아빠 성가시게 하지 말아라.
아빠가 몹시 피곤하단다."하고 타이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16절과 17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기 보세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중, 마음이 몹시도
복잡하고 괴로운 가운데에도 어린 아기들에게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그만큼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린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주님께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가 울고 보채고 장난이 심하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결코 막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훨씬 더 중요한 두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흔히 이 말씀을 가지고 어린아이가 가지는 특징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들의 정직함, 순수함, 겸손함, 순종성, 등등의 특징을 강조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른들과 달리 더 정직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고 순종 잘하기 때문에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같은 성품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깊이 읽다가 이런 해석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우리의 성품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직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고 순종 잘하고
의존 잘해도 그것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의 성품이나 공로나 성취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더욱이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이는 겨우
한 두 살 먹은 갓난아기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아기들에게는 아직 정직함, 순수함, 겸손함, 순종성,
등등의 어떤 인격적인 특질을 적용할 단계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유아세례를 받기 위해 어린 아기들이 많이 왔는데
이 아이들은 철저히 부모에게 의존해 있습니다.
자기의 결단이나 자기의 노력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요!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결단이나 노력이나 공로나 성취 때문에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 때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천국은 자신의 공로나 성취를 자랑하고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린 아기들처럼 부모에게 철저히 의존해 있고 자기의 공로나
자랑 없는 이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어른의 아버지인 어린이>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 두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 어린이들을 몹시 사랑하셨기에
우리 교회도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잘 존중하고 위해주는 교회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입니다.

둘째로, 천국은 어른들처럼 스스로 높아지고 자기 공로를 내세워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린 아기처럼 아무 자랑 없이 스스로 낮아지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어린이는 천국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어른의 아버지인 셈이지요.

자, 이 시간에 우리 어린이들 다 일어나 보세요.
이제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다 저를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뜨거운 박수 한 번 쳐주시겠습니다
(김흥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