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정의달]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시면...(시 128:1-6)

  • 잡초 잡초
  • 693
  • 0

첨부 1


가정의 달인 5월 마다 우리는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복 받는 가정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면 좋은 집들은 계속해서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집 한 채가 10억이 되고, 20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100억에 이르는 집들이 이곳 저곳에서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집은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라는 제도는 본인들이 사랑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교회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가정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대로 하면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경부 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과속도 문제였지만, 교통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를 자기 마음대로 엔진도 고치고, 외장도 고치고 이곳저곳을 개조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습니다. 원래 자동차는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가장 적당한 설계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자꾸 자동차를 엔진부터 시작해서 새롭게 튜닝이라는 것을 통해 개조하다보니 차에 무리가 가게 되고, 결국 사고의 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설계자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설계자의 의도대로 살지 않고, 자꾸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들의 생각대로 설계를 변경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7:1 말씀을 보면 “여호아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28:1절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으면 안되고, 오직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대로 그 가정이 길을 가면 그 가정은 복을 받게 됩니다.  가정의 설계자이신 하나님이 생각하신대로 길을 가야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첫째는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의 가정에 임한 저주가 있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은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수고한 대로 일하고 땀을 흘린 만큼 수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은 열심히 하고,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소득이 없고, 열매가 없고, 결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처럼 인생의 밭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꾸 자라고 또 자라서 밭을 갈기만 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타락한 하와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죄인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열매를 맺으려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가정이 복되고, 형통하려면 무조건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땀은 땀대로 흘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열매는 돌감람 나무처럼 헛된 열매를 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참 훌륭한 지식과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동안 당시의 최고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서 왕자로 성장하면서 왕이 되기 위한 정치학도 공부했고, 경영학도 공부했고, 문학과 음악과 천문학, 세무학 그리고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말하면 박사 학위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 있을 정도의 종합적인 지식을 가진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지식이 뛰어난 모세를 즉시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동안이나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 가둬 두셨습니다.

  40년 동안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뜨거운 태양과 싸우며, 추위와 싸우며 더러운 양의 배설물들을 치우면서 인생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모세는 자신의 첫번째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했겠습니까? 게르솜이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라는 신세 한탄의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렇게 인생을 한탄하고 신세를 한탄하게 하는 나그네로 만드신 것일까요? 그것은 학문을 가진 것으로는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인생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그 광야에서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완전히 인생의 밑바닥으로 끄집어 내려놓고 아주 혹독한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는 그 훈련을 통해 왕자의 자리가 아무 것도 아요 권력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으며, 인생을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배운 것입니다.

  그는 그 광야에서 나그네로서 신세를 한탄했지만 그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하나님 앞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영광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는 겸손을 배운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했는지 민수기 12:3절에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학문과 뛰어난 온유함의 소유자가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인격을 가진 모세가 왜 그렇게 소망하고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그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소망하다가 죽고 만 것입니까? 하나님은 신 광야에서 모세에게 물이 없다고 고함치며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반석에게 말로 명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아론과 하나님께 대적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말씀을 잊어버리고 분노하여 지팡이를 들고 그만 반석을 무려 두 번이나 힘차게 두드렸던 것입니다. 그 혈기로 반석을 두드리는 순간 그의 겸손은 사라졌고, 하나님의 영광도 사라졌고, 오직 그곳에는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고 마귀적인 분노와 살기가 번득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곳에 임해야 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반석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워하시고 그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만 구원의 은혜를 자신의 혈기로 그만 깨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길로 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모세처럼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생명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득 차고 넘쳐야 할 가정이 혈기와 분노와 미움과 다툼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모세와 백성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미움이 사라지고, 분쟁과 다툼이 사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40년 동안 고생하고 땀 흘리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기 위해 수고했습니까? 모세 자신도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소망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자 그의 모든 수고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헛된 것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늘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복과 함께 범사에 형통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분에게 “결혼하지 몇 년이 되셨나요?”물었더니 “적과 동침한지 25년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적과 동침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미 권사님들 중에는 적군이 전사한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이견 대립도 많고, 서로 갈등도 많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고도 놀라운 것은 이 두 부부는 이런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오래 도록 지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집사님 부부는 어떻게 싸움도 잘하고 서로 간에 갈등도 많은 것 같은데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저희는“에베소서 4장 26-27절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부부가 서로의 갈등 속에서도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이유가 바로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게 하고, 말씀이 그 인생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님 중심의 가정, 말씀 중심의 가정이 되어 복 받기를 진실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속히 해가 지기 전에 마귀가 역사하기 전에 화해하고 분을 품지 말고 서로 사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이 복 받는 중요한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편에게 해당 되는 것이고, 하나는 아내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대로 하면 반드시 여러분의 가정은 복되고, 형통하고 화목하며 자녀들이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리대로 어떻게 해 보시렵니까? 이 두 가지 원리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로 남편은 아내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라는 원칙입니다.

  에베소서 5:25절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해야 하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것처럼 아내를 위해 남편들은 자신의 생명을 내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들이여! 진실로 아내를 위해 생명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랑이 가정 안에 있습니까? 혹시 눈이 다른 여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욥은 말하기를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 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 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욥 31:1-4)고 했습니다.

다른 여자에게 주목하는 눈에게는 저주가 있습니다. 이런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있고,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들이여! 오직 아내를  시편 128:3절의 말씀처럼 아내를“결실한 포도나무” 같이 사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편은 오직 아내 사랑!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러면, 아내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경은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5:22)고 했고, 또한 에베소서 5:24절에는“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주 어리석은 여자가 주 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인입니다. 심지어 성경은 주 안에서 순종을 넘어서 남편에게 복종할 것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 여성들에게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행복한 가정, 복 받는 가정, 사랑받는 아내와 자녀들이 형통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롤러 도일이라는 여성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여권신장을 위해 거의 평생을 애쓴 미국의 여류작가입니다. 그녀는 글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고, 남녀 평등이란 말 대신에 언제나 여남평등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강력하게 여성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원리를 가정에 적용시킨 것입니다. 그녀는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한 만큼 일도 똑같이 해야 하고, 가사 분담도 똑같이 하고, 재산 분할도 분명히 하자 자녀 양육도 동일하게 하자는 등 많은 요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늘 남편과 갈등이 있었고, 자신도 사랑받지 못하는 여성으로 가정에서 소외감으로 마음에 병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가정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깨기지 직전 그녀는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이 친구는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신 분이니 그분의 말씀대로 해 봐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때부터 성경의 말씀대로 남편의 말대로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지만, 가정의 머리가 남편이요 남편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원리에 따라 복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완전히 변하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한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녀가 쓴 책 제목은 ‘항복하는 아내가 행복하다’였습니다. 그는 가정에서 “아내가 복종할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항복하는 아내가 행복하다”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뼈대입니다. 우리 중에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더 기도하고, 남편을 주님 안에서 섬기는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에서 여성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여성은 라헬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이혼하는 한 가정을 보았는데 “왜 이혼하느냐?”고 했었더니 남편이 하는 말이 “내가 선생하고 어떻게 사느냐”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아내가 날마다 선생처럼 남편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 틀렸다, 저것 틀렸다고 남편 하는 일에 간섭을 계속하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그녀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전부 그 책임이 여자에게 있다’라는 책에 보면 남자들은 자동차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여자를 아주 싫어한다고 합니다. 즉,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천천히 가세요, 돌아가세요, 이런 말이나, “그것 보세요. 내 말이 옳잖아요!”하는 식의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자매들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남자들은 아주 단순해서 여성들이 몇 가지만 조심하면 여러분들의 뜻대로 남자들을 잘 조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정이 바로 세워지고, 아내의 보람을 느끼게 되며 행복한 가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주 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의 말에 순종하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