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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신앙적인 자녀교육 (삼상 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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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스럽게도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성적은 자꾸 떨어져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아들 옆에서 감시도 해 보았고 비싼 돈을 들여 족집게 과외도 시켜 보았지만  아들의 성적은 자꾸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속이 탄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에게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너 이 자식아! 이번에도 또 성적 떨어지면 아예 가족의 연을 끊자. 그땐 내 아들이 아닌 줄 알아. 알았어?”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긴장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드디어 성적표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학교에 다녀 온 아들과 마주치자 아버지는 조급하게 물었습니다.“야, 너 성적 어떻게 됐어?”그러자 아들이 생뚱맞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아저씨, 누구세요?”
부모는 늘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망하는 걸 원하며,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이 땅에 자식을 위해 산다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2차 대전의 영웅이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던[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의<자녀를 위한 기도문>은 유명합니다.“주여! 나의 자녀를 이렇게 키워 주소서. 약할 때는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 때는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할 때 온유하며 겸손할 수 있는 자녀로 키워 주소서.....중략.....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아는 자녀로 키워주소서! 자기 자신을 너무 크게 평가하지 않는 겸손한 자녀로 키워주소서. 또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것이며 참된 지혜는 개방된 것이요, 참된 힘은 온유함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게 아소서! 그러면 아버지 된 나는 감히 이렇게 고백하겠나이다.<내 생애는 결코 헛되지 않았노라>고..”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훈장과 존경과 명예를 누렸던 맥아더 장군은 후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받았던 수많은 훈장, 또 내가 누렸던 많은 특권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특권은 바로 내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버지 되었다는 이 특권은 다른 어떤 특권과도 바꾸지 않겠다.”
반면에 어떤 초등학교 6학년 한 남자아이가 쓴 글을 소개합니다.“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구시렁구시렁 화를 낸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현관에서부터‘여기 신발 벗은 거 봐라 똑 바로 정돈해 놔!’,‘여기 화분에는 물을 준거야 안 준거야!’하며 한바탕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집안으로 들어오신다. 매일 이런 식이다. 툭하면 집안이 지전분하다거나 우편함이 꽉 차 있는데 뭐하느냐는 등 온갖 문제 거리를 찾아내는데 감동할 정도다. 식사할 때는‘밥 먹는 꼴이 뭐냐!’,‘재잘거리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고 야단치신다. 우리 아버지만 계시면 우리 집에는 웃음이 없다.”

사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면 융통성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보기 일쑤입니다. 나아가 대인관계의 장애가 생깁니다.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은 자녀들의 창의성과 사고의 융통성을 막아 버리기 쉽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자녀교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 그런데 이보다 더 잘 못된 자녀교육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의 삶에 전혀 무관심한 부모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녀들의 올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겪은 아이들은 진정 아버지에게서 배워야할 것들을 배우지 못함으로 상식 밖의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자녀교육에 실패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뜻밖에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 엘리가 전형적인 이런 유형의 사람입니다. 자식문제에 전혀 관심 없이 방치했다가 아버지로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엘리에게는[홉니]와[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차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할 막중한 위치에 있었으나 자신들의 행악으로 말미암아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선택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선택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명예를 버렸습니다. 이 두 아들이 어떤 아들이었는지를 삼상2:12절에서 아주 명백하게<불량자>라고 적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결정적인 원인을 역시 삼상2:12에서 말하기를 그들이“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아들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엘리가 아버지 된 입장에서 자식들의 신앙교육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문이 아무리 좋으면 무엇 합니까? 신앙이 없으면 망할 가문입니다. 명예가 아무리 빛나면 무엇 합니까? 신앙이 없는 명예란 허세에 불과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홉니]와[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우리들 중에‘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교회는 나오니까 참 다행이다. 그래도 일년에 몇 번씩이라도 주일 지키니까 나는 부모로서 떳떳하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 받으려 한다면 정신 차려야합니다.

여러분, 교회만 나오는 자녀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만 가지고 부모로서의 자녀에 대한 신앙의 책임을 다했노라고 하면 오산입니다. 보세요. 오늘 엘리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는 하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나, 하나님을 업신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무슨 신앙 있는 행동입니까? 그 행위가 어찌나 악했던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을 정도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표현하기를 이것은<저주를 자청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훈계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이끌지도 못했던 아버지 엘리입니다. 하나님을<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경험하면서 얻어지는 지식을 말합니다.

날마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속에서 알아지고 깨달아지는 이 것이 바로 신앙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십니까?“주일성수는 목숨처럼 생각해야 되고, 십일조는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정직하게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복 받는 지름길이다”라고 가르치십니까? 신앙의 독립을 주십시오.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깨닫고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신앙의 독립을 주란 말입니다. 이게 교육입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독립은 어느 정도 성장해야 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만 이 신앙의 독립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을 때 못해놓았으니 이제 됩니까? 안 됩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부모들을 봤습니다.“야, 내가 교회 잘 나가서 니네 몫까지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니까 너희들은 적당히 주일 지키고 적당히 헌금하고 편하게 살아라.”여러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이건 자녀들을 축복하는 게 아니라 저주입니다. 적당히 믿다가 적당히 하나님 나라나 가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나라가 적당히 가지는 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확실해야 가는 곳입니다. 어쩌자는 겁니까? 부모는 천국 가겠다면서 자식들은 망하게 하는 심각한 부모입니다.

오늘 엘리는 이런 신앙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이제 후회해 봅니다만 너무 늦었습니다. 엘리의 나이가 98세나 되었고 눈이 어두워서 보지도 못하고, 책망하기에 너무 연로하여 영향력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한 마디해도 이제는 자식들에게“늙은 노인네가 잔소리가 많다.”고 핀잔이나 들을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못된 자식들의 공통적인 심사는 부모가 나이 들어 힘이 없어지면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하나님이 이런 엘리의 자녀교육에 대한 실패의 이유를 엄중히 평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삼상2:29입니다. 뭐라고 하십니까?“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신앙적으로 분명히 빗나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식이 귀하다 생각되어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말입니다.‘크면 잘 알아서 하겠지’하다가 이제는 늦었습니다. 부모 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십시오. 십일조는 제대로 하는지, 주일성수는 잘 하는지...‘알아서 잘 하겠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또‘부모인 내가 잘하니까 됐지’하는 것은 자녀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잠언13:24에는 자녀교육의 기본이 들어있습니다.“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자녀교육에는 반드시<징계의 채찍>과<사랑의 매>가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사회에는 이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온통 환자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왕자 병, 공주병 환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책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주에도 유형이 있답니다. 사과만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사과를 안 먹는다는<백설 공주 형>,밤12시만 되면 불안해 진다는<신데렐라 형>,가끔은 로마에서 휴일을 보내고 싶다는<오드리햅번 형>,북만 보면 찢고 싶다는<낙랑공주 형>,바보만 보면 결혼하고 싶다는<평강공주 형>등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공주병이 생겨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병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잠재 된 의식들입니다. 이게 한국사회에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의 공주병에 걸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들은 양보 할지라도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교육에 그렇게 무심했던 엘리 가정에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집니다. 언약이 파기되고, 가문이 멸절 되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명예와 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문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이 먼저입니다. 신앙의 교육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보다 명예를 앞세워 그것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자식들이 정말 잘 되는 길은 신앙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서는 길입니다. 몰랐다면 오늘부터 지킬 것이요, 알면서도 실패의 길로 걸어왔다면 오늘 엘리의 가정의 몰락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저주를 자청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도록 가르치고, 부모 된 도리로서 자녀들을 저주의 자리로 내모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되지 않는 신앙적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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