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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건강한 가정에서 훌륭한 자녀들이!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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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에덴의 가정입니다. 아담이 혼자 살 때에 그의 움막은 거처에 불과했지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독신 청년 아담이 사는 장막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아내를 맞이하여 결혼을 하면서부터 에덴의 가정이 탄생했습니다. 

1.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행복한 가정을 이룹니다. 

호랑이는 가정이 없지만 사자는 가정이 있습니다. 곰은 가정이 없지만 멧돼지는 가정을 이루고 집단생활을 합니다. 가정이 없는 동물들은 멸종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동물들은 번성하고 개체수가 늘어납니다. 심지어 초원의 루우떼들은 국가 차원의 루우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배필은 하나님이 만들어 정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아담은 피조물 중에 유일한 홀로였습니다. 아담이 홀로 지내는 조용한 재미도 있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도 좋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홀로 사는 것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는데 소극적입니다. 그러나 홀로 지내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도, 부모들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나이 많아 질수록 결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미혼의 젊은이들이 배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하나님께 먼저 기도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배필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준비되어 만나게 된다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금방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준비하여 데려 올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배필대신에 각종 들짐승, 공중의 나는 새, 각종 생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끼리끼리 어울렸습니다. 각각 짝이 있었습니다. 아담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창조적인 행위를 통하여 아담에게 배필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은 아담의 배필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몸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습니다. 아주 가까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깊이 잠들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담을 수술하여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 자리를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능력으로 형상이 없는 갈비뼈를 끄집어내셔서 형상이 있는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물론 아담이 가장 좋아 할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마음에 쏙 들도록 만드셨습니다. 일단 배필로 정하자면 마음에 쏙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배필의 이상형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배필의 이상형을 TV의 탤런트나 CF 모델정도로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배필을 이삭의 이상형으로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은 배필을 위해 광야 장막 주위에서 하나님께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분명히 다른 법, 앞에 나타난 현실로 이상과 꿈은 쪽박처럼 깨지고 말수도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맞선을 보고 왔습니다.  딸이 말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그래 어떻더냐?”...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딸이 툭뱉는 말이 “남자라고 생긴게 꼭 황소대가리같아”...

안 나겠다는 아들을 등떠밀어 맞선을 보게 했습니다. 아들이 선을 보고 한 잔 하고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그래 색시가 어떻더냐?”... 고, 한 참을 있다가 아들이 한다는 소리 “여자가 웃는데 이가 꼭 돼지 족발 같아”...

그러나 사람의 갈비뼈 같건, 황소대가리 같건, 돼지 족발 같건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다 쓸만하게 되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인물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반대로 점점 더 인물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담의 갈비뼈가 하나님의 손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 예쁜 아가씨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담이 그 여자를 보는 눈간 필이 꽂혔습니다.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기뻐하면서 자기의 배필로 맞이했습니다.

옛날에는 어린 것들이 애인을 달고 다니면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집안 망신좀 시키지 말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어린 것들이 애인 달고 다니면 부모님에게 큰 효도 선물이 됩니다.

최근에는 결혼정보회사, 결혼상담소들이 많이 있어서 미혼자들에게는 편리해 졌습니다. 결혼 전문가들의 충고를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풍경 사진을 찍는 시간은 “해 뜬 후의 2시간, 해지기 전의 2시간”이 가장 적당하다고 합니다. 태양빛과 피사체가 가장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만나는 것도 일종의 예술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시간을 잘 선택할 때에 만남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되도록 낮에 여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낮에는 남자의 씩씩하게 잘 생긴 모습을 마음껏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자의 잘 생긴 모습이나 흐트러진 모습을 빼놓지 않고 다 떧어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를 저녁에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여자는 저녁에 생기가 넘쳐서 더 예쁘게 보이며, 남자는 저녁에 풀이 죽어서 비실비실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생기가 넘치는 남자라면 건강하여 사업에도 성공할 수 있고, 가정생활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남자를 밤에 보아도 괜찮다 생각되거나, 여자를 낮에 보아도 괜찮다 생각되면 도망치기 전에 빨리 잡아 두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놓치면 또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내가 차버렸거나, 내가 놓친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은커녕 동급의 사람들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내가 차버린 남자가 팔등신 미녀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며, 내가 차버린 여자가 고급주택에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사모님 대우를 받으면서 잘 살 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결혼상담소의 공통된 조언은 “네 눈높이에서 찍어라.”는 것입니다. 발발이가 진돗개를 찍는다고 진돗개가 발바리와 놀아 줄 리가 없다는 겁니다.

종교가 상극이면 결혼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행복할리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절대 하나이 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와 예수님이 하나이 될 수 없습니다. 보살과 집사가 절대 하나 되지 못합니다. 

학벌은 옛날 시험치고 들어갈 때는 최종학교를 고등학교로 보았습니다. 그 때는 평균 최종학교가 고등학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방이면 지방, 도시면 도시의 명문인지 아닌지를 따졌습니다.

요즈음은 최종학교를 대학으로 봅니다. 어느 지역,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졸업했느냐를 중요시합니다. 그것만으로 태어날 후손들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은 취직하는데 자격증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결혼하는데 유리한 조건이 못될 수도 있습니다. 

생활 정도도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너무 격차가 심하면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이레(하나님이 지으시는 배필)는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쟁취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찾아내야 합니다.

2. 행복한 가정에 좋은 부모가 있습니다. 

맹수들은 새끼들에게 정글의 법칙을 가르칩니다. 먹잇감을 습격하는 법, 먹잇감의 멱통을 물고 늘어지는 법, 그리고 살찜을 뜯어 먹는 법을 가르칩니다. 맹수의 새끼들은 부모에게 배운 대로 정글에서 생존합니다.

초식동물들은 새끼들에게 초원의 법칙을 가르칩니다.  풀을 뜯어 먹는 법, 초원을 찾아 이동하는 법, 강을 건너는 법, 적이 몰려 올 때 도망가는 법을 배운 대로 초원을 누비며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쁜 부모가 되는 것을 원하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찌드는 세상에서 가난하게, 무식하게, 우환질고에 시달리며 살다보면 한풀이를 자녀들에게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부모가 어찌 자식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겠습니까? 알코올 중독자가 자식에게 너는 술주정뱅이가 되지 말라고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사창가의 포주가 자기 딸에게 너는 거리의 여인이 되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그의 딸의 마음은 거리의 여인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한 어머니가 네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아이를 언제부터 가르쳐야 될지를 성직자에게 물었습니다. 성직자는 “아직 교육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4년이나 늦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닮고 태어납니다. 몇 주 전 토요일에 아들이 점심을 먹자고 하여 남한산성의 어느 식당을 들렀습니다.

옆방에는 젊은 내외와 10여개월 돼 보이는 어린 아들, 그리고 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우리 방을 보면서 어르고 계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아기 참 예쁘구나”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즉시 우리 세 살배기 손자가 “제는 엄마 닮았나봐 예쁜거 보니까. 나는 엄마 안 닮았대... 아빠 닮았대”...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집 아기는 얄시리한 엄마를 닮지 않았고, 듬직한 아빠를 닮았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닮아 갈 겁니다.

아랍속담에 “무화과나무를 본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루움경은 “아이가 18개월에서 30개월 사이에 배우는 것은 평생을 배우는 것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뮤얼 스마일즈는 그의 인격론에서 “유년 시절은 거울과 같다. 유년 시절에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여생동안 투명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최초의 경험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최초로 맛본 기쁨, 최초로 맛본 슬픔, 최초로 맛본 실패, 최초로 거둔 성공, 최초로 거둔 성과, 최초로 경험한 불운이 인생전체를 채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3. 좋은 부모가 훌륭한 자녀를 길러냅니다.

훌륭한 부모가 훌륭한 자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훌륭한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양육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훌륭한 부모는 훌륭한 일에 신경을 씁니다. 자녀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부모는 훌륭한 자녀를 길러낼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란 말은 평범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독실한 신앙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자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말했습니다.

바클레이(Barclay)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병폐를 세 가지로 지적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겁니다. 부모들은 흔히 “과거에는, 옛날에는, 우리 어릴 적에는”라는 말을 합니다.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기 때문에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짐승을 매놓는 것은 짐승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통제하는 것은 자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통제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아 매어 두라는 겁니다. 그러면 부모가 통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는 겁니다.

자녀를 격려하지 않기 때문에 노엽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성장하는 자녀들에게는 잘하는 것은 격려하고, 잘못하는 것은 바로 잡아 주는 책망과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충고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유익한 충고입니다.

어거스틴이 위대한 학자가 되는 데는 그의 아버지 “타카스테(Thagaste)”의 역할이 컸습니다. 어거스틴이 성자가 되는 데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Monica)”의 역할이  컸습니다.

아버지 “타카스테”는 가난한 자유민으로 아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자식에게 분에 넘치는 교육을 시키는 아버지를 이웃들은 칭찬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지고선(최고선)”으로 인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들에게 정숙한 삶을 살도록 애원했습니다. 방탕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아들은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왔고, 남편도 변화시켰습니다.

끝맺는 말

불행한 가정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수많은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무능한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자녀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품행이 좋지 않고, 인격이 비뚤어진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자식은 훗날 어떤 훌륭한 가르침으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끼친 해악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게으르고 부도덕하며, 항상 불평하고, 남의 험담을 일삼으며, 불만스러운 생활을 한다면 자녀들은 속히 그러한 부모를 떠나고 싶어 할 것이며, 도망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중에 아이가 바르게 행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달려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이 발표에 의하면 자녀들의 불행과 탈선의 80%는 부모책임이요, 20%는 사회 책임내지 본인들 책임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영육을 품에 안고 통한의 눈물을 쏟아야 합니다.

우후 죽순 같은 싱싱한 자녀를 선물로 받으시고, 받은 선물들을 잘 양육하여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세상의 일꾼으로, 교회의 일꾼으로 바치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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