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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의 사명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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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첫 주인 오늘은 교회에서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한 이 시간“부모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입양아가 이렇게 말하기를“자동차를 팔아도 에프터 서비스를 하잖아요. 그런데 나의 아빠는 자식을 갖게만 했고, 나의 엄마는 태어나게만 했지 그 다음은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송아지는 가만 두어도 크면 소가 됩니다. 망아지는 가만 두어도 크면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장군이 이스라엘의 한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장군은 자신의 환영식에 나가 인사말을 했습니다.“훌륭한 도시를 방문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도시에서도 많은 현인들이 태어났으리라 믿습니다.”그러자 한 랍비가 말하기를“글쎄요, 내가 알기로는 이 도시에는 아기들만 태어나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훌륭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교육입니다. 이 교육이란 학문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됨됨이를 말하는 인성교육을 말합니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최고의 스승은 누구이겠습니까? 이에 대한 해답을 이야기로 대신하겠습니다. 한 소년이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소년은 깊은 숲과 황량한 사막을 헤맸으나 위대한 스승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너무 지쳐서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 수염과 맑은 눈동자를 지닌 한 노인이 나타나 소년에게 물었습니다.“소년아 왜 그렇게 방황하고 있느냐?”소년이 대답했습니다.“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네가 찾는 위대한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마. 지금 곧 너희 집으로 돌아가 보아라. 그리하면 한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분이 바로 네가 찾는‘위대한 스승’이란다.”소년은 위대한 스승을 빨리 만나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그 소년을 맞았습니다. 그“위대한 스승”은 다름 아닌 소년의 어머니였습니다.

다섯 살 난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매를 맞았습니다. 이 어린이는 호기심으로 교회의 헌금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이 어린이는 그날의 실수를 교훈삼아 평생 단 한번도 남의 것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땀 흘리지 않고 거액을 벌어들일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 사람의 정직성은 갈수록 빛을 발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당시 인기 없는 지도자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의 지도자, 평화의 지도자로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주일이면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 연장가방을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집 없는 사람들에게“사랑의 집”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랑의 집짓기 운동 총재인 지미 카터입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 등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유전공학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의 변형일 뿐, 무(無)에서의 창조는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3에“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바른 자녀의 양육은 하나님의 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 127: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며 거름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밤에는 이슬을 내리시고, 공기를 주시므로 자라게 됩니다. 만일 농부가 자기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에 대한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키지만 그것만으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할 뿐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았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어느 때보다 착하게 자라서 이 사회가 날이 갈수록 밝아져야만 할 텐데 청소년의 비행문제는 날이 갈수록 그 심각성을 더해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농사의 경우처럼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성령의 감동과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 이치를 깨달을 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생활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예배에 정성을 다합니다. 이 이치를 깨달을 때 자녀를 위해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 이치를 깨달을 때 자녀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며, 실천하고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자녀는 가문을 빛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 자녀는 교회와 사회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二.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농사에 있어서 햇빛과 비와 공기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며,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처럼 자녀들에 있어서도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1. 자녀에게 깨끗한 것으로 먹이고 입혀야 합니다.

위생적으로 깨끗한 음식을 먹이며 철을 따라 적당한 의복을 준비하여 입히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임입니다. 이 같은 책임은 어느 부모나 잘 감당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 말씀을 드리려는 깨끗한 것이란 죄악의 때가 묻지 아니한 음식과 의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물질,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얻은 소득,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모은 재물로 아들딸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며 좋은 의복을 입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 구입한 음식재료는 아무리 깨끗하게 씻고, 삶고, 구워도 결코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 아들딸들에게 좋은 옷을 구입하여 입힌다 할지라도 이는 영혼을 찌르는 가시 옷이 될 것이며, 죄악의 세균이 우글거리는 더러운 옷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러움에는 사람의 육안으로 분별이 가능한 것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은 육안으로 볼 때 깨끗하지만 현미경으로 본다면 셀 수 없는 세균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더러움은 씻고, 삶고, 구우면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씻고 굽고 삶아도 더러움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부정한 방법으로 얻어진 소득으로 마련한 음식과 의복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경우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장에는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2:29~33에“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하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 먼저 그것을 가져다가 아들들을 먹였습니다. 그 음식을 요리하기 전 분명히 깨끗하게 씻었을 것이며, 굽고 삶아 위생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한 비양심적인 더러움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일로 인해 훗날 두 아들과 엘리 제사장의 가정은 하나님의 저주로 몰락하고 맙니다.

비위생적인 음식이나 불결한 의복에 묻어있는 세균은 자녀의 건강을 해칩니다. 그러나 추한 양심으로 준비된 음식이나 의복은 하나님의 저주를 먹이고 입히는 무서운 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98년 1월호 뉴스위크지 표지 제목에 실렸던“케네디 가문의 저주 또 다른 무모한 삶과 비극의 죽음”이란 기사의 글이 있습니다. 케네디가의 비운의 죽음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① 케네디 대통령 형제의 맏형인 조세프 케네디 2세가 2차 세계대전 중 29세에 비행기 추락으로 전사.
② 케네디 대통령 여동생 케슬린도 1948년 28세 때 비행기 사고로 사망.
③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46세 때 암살.
④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42세인 1968년 6월 민주당 대선호보 지명 선거운동 중 캘리포니아에서 암살.
⑤ 1984년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
⑥ 1998년 1월 2일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마이클 케네디가 콜로라도 주 에스핀의 스키장에서 39세 나이로 사망.
⑦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2세가 38세인 1999년 7월 16일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

이 비극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은 선조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경영하여 모은 재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술로 인해 그들은 큰 재산을 모았겠지만 그 술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겼었겠습니까? 그 죄의 값을 후손들이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깨끗한 것으로 먹이고 입혀야 하는 이유를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타난 다니엘의 경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다니엘서 1:8)고 했습니다. 다니엘라는 사람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을 당할 때 바벨론으로 포로로 붙잡혀간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왕궁의 음식을 먹으며 그 나라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가 먹는 음식은 왕의 음식과 같았습니다. 궁중에서 요리한 음식에는 불결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며, 가장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말하기를“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다니엘서 1:8)고 했습니다. 왕이 먹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더럽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더럽다고 한 것은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요 정신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왕궁에는 짐승을 잡았을 경우 먼저 그들이 섬기는 우상 앞에 바친 후 그 고기로 요리를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것을 불결하게 여겨 먹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신앙양심을 지켰습니다. 그 후 다니엘은 하나님으러부터 큰 복을 받았습니다. 분별없이 아무음식이나 먹었던 다른 동료들보다 더욱 건강했고, 지혜가 출중했습니다. 훗날 그는 바벨론의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녀들의 음식과 옷의 깨끗함과 더러움이 건강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과 같이 그 물질을 마련한 부모의 양심이 자녀의 축복과 저주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양심으로 얻어진 소득으로 우리의 자녀를 먹이고 입혀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부모의 지혜입니다.

2. 자녀들에게 바른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적입니다. 부모는 굶는 한이 있을 지라도 자녀들만큼은 교육을 시키려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이는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잠언 1:7)하셨습니다. 교육을 시키되 하나님을 섬기는 교육을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지식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잘못된 건물은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신앙의 기초가 잘못된 교육은 끝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4~27)하셨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유대인들의 자녀교육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그들은 철저하게 조기교육을 실시합니다.
아기를 낳으면 그날부터 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주듯 십계명을 읽어줍니다. 아이가 태어난 첫날부터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이 유대인의 자녀교육입니다. 흰 종이에 다른 것이 그려지기 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키운 기간은 젖먹일 동안뿐입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떨어지는 날 궁궐로 들어가 애굽 사람들의 틈에 살면서 애굽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모세의 나이 40세가 되기까지 애굽 궁궐에서 애굽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죄악 된 사상이 모세의 인격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어머니가 심어놓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인격을 먼저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모세의 어머니는 애굽인의 박해로 마음 놓고 성경말씀을 들려줄 수 없는 상황인지라 아기 모세가 먹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성경구절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기가 비록 글씨는 모를지라도 아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심으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갸륵한 정성을 보시고 모세를 지켜 주셨습니다.

둘째, 그들은 책임감 있는 교육을 시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를 키울 때 조금 자라면 책임감을 심어준다고 합니다. “너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아니하던지 충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곧 충성임을 교훈한다고 합니다. 책임감을 지닌 사람은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앞길에 영광과 번영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말이 아니라 삶의 모범입니다. 책임감 있는 보모님의 생활을 보고 자란 자녀는 자연적으로 부모를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5)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먼저 몸에 배인 그리스도의 인격을 생활로 나타내므로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책임감이 강한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작은 약속이라도 약속은 꼭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편 15:4,11)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그들은 협동정신을 키워줍니다.
“형제끼리 힘을 모아라, 친구끼리 힘을 모아라.”하면서 협동정신을 심어줍니다. 지금도 키브츠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합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어느 누구가 싫어하겠습니까?

넷째, 부자되는 교육을 시킵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서 함부로 쓰지 않고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칩니다.

다섯째, 천대받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교육합니다.
너희는 천대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를 가든지 대접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을 합니다. 구라파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민을 왔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유대인을 보니까 어떻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지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미움을 받던 유대인들이 한데 뭉쳐 결심하기를“우리에게는 나라가 없고 돈을 잘 번다고 미움을 받으나 결코 천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자. 굶어도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자.”라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공부시키되 우선 법률 공부를 시켜 판사, 검사, 변호사로 키우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하면 다른 종족들이 유대인 아들딸들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허리를 굽힐 것이며, 유대인을 무시하지는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에 이르러 미국의 법조계에 유대인이 절반가까이나 된다고 합니다. 미국 전체 재산의 절반 가까이가 유대인의 손에 있으며, 언론 기관의 다수가 유대인의 수중에 있고,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수 가운데 30%정도가 유대인이며, 노벨수상자의 24%가 유대인이라는 놀라운 통계가 있습니다.

자녀는 우리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보배입니다. 그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도 보배로서의 역할을 다 하려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자녀들 위에 머물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는 깨끗한 것으로 먹이고 입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첫째,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을 교육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둘째, 책임감을 심어줍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사랑과 신임을 받게 됩니다. 셋째, 협동심을 교육합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이해합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협동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넷째, 열심히 일하면서 검소하게 살아가는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면 가난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천대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은 조상 앞에 부끄럽지 아니한 당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이것이 곧 주안에서의 자녀 양육법이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유대인의 자녀 교육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고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하는 일에 있어서 부모의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잘 양육된 자녀로 인한 기쁨과 보람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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