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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에게 자녀란 무엇인가? (시 1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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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겠지만, 한국의 부모들만큼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방법입니다. 아무리 희생과 헌신이 크다 해도 그것이 자녀에게 미칠 영향, 그들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생각할 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녀 사랑의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자녀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부모에게 자녀란 무엇인가?’,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오늘 말씀에 그것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녀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업’이라는 말은 원래 물려받은 재산, 곧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유산’이란 엄밀히 말해서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물려 준 사람의 것이요, 자신은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산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개념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은 팔지 않았습니다. 혹 너무 형편이 어려워서 팔았을지라도 그 소유권이 산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보관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땅을 판자가 돈을 다시 가져오면 땅을 산 사람은 그 땅을 무조건 내주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땅은 철저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자녀를 생각할 때도 이런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녀를 내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통해 나의 만족을 찾고 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또 때로는 아이들을 내 성격과 내 감정대로 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시 나에게 맡겨 주신,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나의 자녀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대할 때 그들이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생각, 다시 말해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기를 때, 자신들이 그의 부모였지만 자신들의 아들 예수는 그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면서 그 아이를 길렀던 것 같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갖고 키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본문 3절의 하반절에 보면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고 했습니다.

자녀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자녀에 대한 애착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내 것이 아니므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자식이 우리의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받은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많습니다. 생명, 건강, 물질, 사람… 그 가운데 제일 큰 상급이 무엇이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녀가 많은 것을 큰 축복으로, 큰 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자녀를 상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아이 낳기를 원치 않으므로 출산율이 한가구당 1.6명으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자녀를 짐으로만 생각할 뿐, 상이나 축복으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3장 5절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난 자리에서 자기 자녀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우리에게도 이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가장 큰 상급입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그렇고, 이 땅에서도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지금 한참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수고하시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키우는 이 자녀들이 여러분의 가장 큰 상급이요 보배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장사는 활을 쐈습니다. 그 장사가 힘을 많이 쓸수록 화살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화살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녀가 많은 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자녀가 많으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자녀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 줄로 압니다.

그런데 화살이라는 것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화살은 활을 쏜 사람의 방향대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잘못 쏘면 그로 말미암아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잘 키우지 못하면 그 아이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되어 이 사회에 어떤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청소년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런데 그 청소년의 문제는 어떻게 일어납니까? 무책임한 부모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살이란 쏜 사람에 의해서 그 방향이 결정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지금 내 품 안에 있을 때는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아이의 장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들을 잘 키워야 합니다. 나중에 남 탓 하지 말고, 하나님 탓 하지 말고, 아직 내 품에, 내 영향권 안에 있을 때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방향을 향해서 잘 날아가 바른 목적을 달성하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이런 말이 있습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어린이 비난하는 것을 배우며, 적대와 미움을 받고 자란 어린이 싸움하는 것을 배웁니다. 놀림 받으며 자란 어린이 부끄러움 타는 것을 배우고, 질투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어린이 죄의식의 감정을 배웁니다. 관용 속에서 키운 어린이 인내하는 것을 배우며, 격려 받으며 자란 어린이 자신감을 배우고, 칭찬 받으며 자란 어린이 감사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자란 어린이 정의로움을 배우고, 안정감을 갖고 자란 어린이 믿음을 배웁니다. 인정을 받으며 자란 어린이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배우며, 포용과 친밀함으로 키운 어린이 이 세계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을 배웁니다.”

자식은 내가 낳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자식은 최상의 상급이요 축복입니다.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들을 이런 의식으로 바라보며, 또 잘 길러서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 목적을 다 이루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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