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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말씀만 붙들면(창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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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에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에덴의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나누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것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그냥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모양을 빚어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했는데 ‘지었다’는 단어는 조각가 또는 토기장이가 쓰는 단어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정성들여 빚어내는 것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랑과 정성과 재주와 지혜를 총동원하셨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시고, 정성을 내시고, 사랑을 쏟으시고,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이 흙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흙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의 성품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티끌입니다. 땅에 속한 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흙이 우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본질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흙과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티끌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사실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언제든지 티끌처럼 날아가 버리는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오늘 내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나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여기에서 ‘생령’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생령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심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숨을 쉬고 생각도 하고 활동도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육체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인물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직업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돈이 많은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티끌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같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이는 복되고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흙’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은 우리의 본질이 흙이고, 우리는 흙을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우리는 한평생 사는 동안 이 몸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고 몸이 아프면 자리에 드러누워야 합니다. 우리는 살집을 구해야 하고, 직장을 구해야 합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나가라고 하면, 또 다른 직장을 찾아서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몸이 있다는 것이요, 우리에게 몸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우리가 몸의 제약을 받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입고 사는 문제나 육체적인 고통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 이상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고 몸의 제한을 받아야 하며 몸이 아프면 드러누워야 하지만 몸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영혼을 주셨는데, 사람의 가치는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영혼에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의 가치는 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신체적인 조건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상태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흙입니다. 그러나 흙이 전부가 아닙니다.

  흙으로 지어진 우리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된 삶의 가능성을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생명’ 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써 경험하는 풍성한 기쁨입니다.

  하나님과 깊이 사귈 때 누리는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과 힘,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몸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욕구를 채워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삶, 영광의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이 몸을 위해서만 살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모두 거두어 가시는 사망의 삶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망’ 이라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를 가까이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 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삶입니다.

  만약 우리가 몸을 가졌다고 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시지 않고 우리를 만나시지 않고 영원히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망의 몸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생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몸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분명히 생명의 삶을 얻었고, 그 삶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머리로는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제멋대로 놀고 있고 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도 사망의 삶을 계속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습니다.
▸지금 내 몸이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느냐 하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이 몸을 사용하고 있다면,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남을 위하여 이 몸으로 봉사하고 이 몸을 내어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몸이 내 정욕을 위해 사용되고 내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을 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 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할 때 유감스럽게도 나는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은혜 받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몸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들어올 틈이 없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전부여야 합니다.
  이 몸을 철저히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살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롬 8:7-8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지금이라도 이 몸으로 자기 정욕을 구하는 대신에,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 마음이 이미 하나님을 싫어하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습니다.

  Ⅱ. 그런데 여러분! 둘째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므로 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없애시고 그 핏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2의 인생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인생은 사망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삶인 제 2의 인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제 2의 인생, 새로운 삶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찾아오십니다.
  “주여, 도우소서!” 하면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돕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습관과 가치관을 다 뜯어 고치십니다.
  하나님께는 ‘적당하게’가 통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고치기 전에는 절대로 건져주지 않습니다.

  신앙은 언약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의 다른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그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나의 먹는 문제, 사는 문제, 입는 문제, 결혼하는 문제, 자식 문제, 다 책임져 주겠다는 약속이 이 언약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채 늘 적당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십시오.
  내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의 지식이 아닙니다.
  나의 체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 자체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체험을 했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배우고 공부했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은 내 삶을 어떻게 살고 있으며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몸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건강하며 얼마나 좋은 조건에서 사는 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거기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몸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원래 몸을 만드신 그 목적대로 우리 몸이 사용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삶을 최대한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회로 삼읍시다.
  때로는 슬픔의 순간이 옵니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도 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밤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거기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몸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십시오.
  어떤 형편, 어떤 처지에 있든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사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면, 그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어떤 형편에 있든지 거기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여러분의 몸을 사용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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