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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 법칙 (요 12: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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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과학에 있어서, 어떤 현상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론을 구체적으로 펴 나가기 위하여 우선 이용하는, 아직 증명되지 아니한 이론을 ‘가설(假說)’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반드시 성립되는 사물 상호간의 필연적, 본질적 관계를 ‘법칙(法則)’이라고 부릅니다. ‘가설’은 성립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법칙은 반드시 성립 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에 대해서도 많은 가설들이 있습니다. 20대, 30대,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를 제시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니까 성공하고 저렇게 하니까 성취하더라는 성공 수기들이 출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법칙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되었지만 나는 안 될 수 있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많은 이론들도 반드시 그렇게 하면 된다는 법칙은 아닙니다. 하나의 가설들일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어떤 조건 아래서도 반드시 성립되는 한 가지 법칙이 나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20절부터 보겠습니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헬라 철학의 한계와 우상과 신화들의 허구성을 깨닫고 참 하나님을 섬기고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무리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고안한 사형방법 중에 가장 참혹하다는 십자가 죽음의 때를 ‘영광을 얻을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왜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스러운 것인지 밀알의 진리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은 작고 볼품이 없습니다. 그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100-120개의 밀알이 됩니다. 그것이 다시 죽으면 만개의 밀알이 생깁니다. 또 죽으면 100만개 곧 한 가마가되고, 한 번 더 죽으면 만 가마니가 됩니다. 그 정도 양이면 지난 봄 수양회 때 모였던 진주, 창원 식구들과 계명 식구들이 하루 3끼 모두 밀밥만 먹어도 평생을 먹고 남을 엄청난 양입니다. 이처럼 한 알의 밀에는 무수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알고 있는 코흘리개 제자들을 남겨두고 죽으면 그 동안의 사역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신이 죽을 때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구원 얻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바라보시면서, 앞에 있는 십자가가 고난이라기보다 영광스러운 것임을 생각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밀알의 진리가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생명의 법칙임을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 말씀은 복음서에 다섯 번 기록(마 10:39, 16:25; 막 8:35; 눅 17:33; 요 12:25)되었습니다. 그 만큼 생명을 얻는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땅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한계를 가졌고 타락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 속에는 영생을 얻을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욕되고 연약한 몸이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만 이같이 보존할 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열매 맺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됩니다. 보통 밀 종자의 수명은 2년 정도 됩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열매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소멸됩니다. 외형은 3천년을 보존한다 할지라도 생명력을 상실한 한 알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요즘같이 자살률이 급증하는 때에 계속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 알의 밀알로 죽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미워한다’는 것은 ‘덜 사랑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뜻과 계획을 부인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마시고 싶지 않았던 고난의 잔과 죽음의 십자가도 심한 통곡과 피땀 흘리는 기도의 투쟁 끝에 마침내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원대로 살기 위해 자기 소원을 죽이고 자기 생명을 죽기까지 미워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자기를 덜 사랑하는 것이 생명을 미워하는 삶입니다. 자기 생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욕심과 타락한 본성을 좇아 쾌락을 즐기며 삽니다. 게으름과 안일에 빠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영광의 때를 놓칩니다. 그들은 결국 한 알 그대로 있다가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영생하도록 보존하십니다.

26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을 제자도에 적용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1998년 4월 미국 콜로라도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5명이 죽고 23명이 부상을 당한 총기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두 명의 폭도들이 Cassie Bernall이라는 학생에게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Cassie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너희들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폭도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어”하며 쏘아 죽였습니다. Cassie는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허무하게 생을 마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 31일자 타임지에서는 이 사건 이후로 미국 고등학교에 수 천 개의 성경공부모임과 기도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불신 풍조 속에서 기를 못 펴고 지내던 학생들이 Cassie의 순교로 용기를 얻어 담대히 신앙을 밝히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한 알의 밀을 통해서 수많은 영혼들을 열매 맺게 하십니다. 오늘날도 핍박을 믿음으로 감당하여 가정과 직장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은 분들이 많습니다. 제자도에 있어서도 밀알 법칙대로 살지 않고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밀알의 진리는 가설이 아니라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밀알 법칙은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운 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인용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밀알로 죽어야 할 때가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왜 하필 내가 죽어야 하나? 다른 사람이 죽으면 안 되는가’ ‘왜 하필 이 때 죽어야 하는가? 조금 있다가 죽으면 안 되는가’ 하며 주저합니다. 27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도 ‘내가’ ‘이 때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로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내가’ ‘이 때에’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확고하게 영접하셨습니다. 본문에는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누가복음 22장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동일한 기도제목으로 세 차례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땀 나는 기도의 투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31,32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 날 것과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당신님께서 말씀하신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셨습니다. 만민을 위해 죽으셨고, 그 결과 만민의 경배를 받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는 책도 있습니다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알 법칙을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구차한 설명이 필요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을 꺼리는 한 가지 이유가 죽는 것을 존재의 소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밀알의 죽음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해 다시 사는 길이며 자기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생명 법칙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는 척, 죽은 척하고서는 결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비결로 유혹하는 모든 가설들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밀알의 진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 알아도 실천하려면 부담이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면 꼭 하나님께서 저의 면전에다 대고 ‘네가 죽어야 하느니라.’, ‘이 때 죽어야 하느니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참 부담스럽습니다. 나만 죽으면 주위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훨씬 원활하게 교회가 움직일 것을 압니다. 나만 죽이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죽어야 함을 알수록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사로잡습니다. 죽고자 할수록 죽지 않으려는 내가 고개를 쳐듭니다. ‘꼭 제가 죽어야 되나요?’, ‘꼭 이때 죽어야 하나요?’, ‘또 죽어야 되요?’, ‘다른 사람이 죽으면 안 될까요?’, ‘나중에 죽으면 안 되나요?’  ‘이번 한번만 살려 주세요’ ‘다른 사람 죽는 것 보면 같이 죽을께요’온갖 변명과 핑계로 몸이 뒤틀립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메시지 제목만 들어도 속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습니다. ‘죽기 싫어 죽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본성으로서는 도저히 밀알 법칙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본성적으로는 이 말씀을 은혜롭게 들은 후에, ‘주님 저 말고 저 사람이 이 말씀에 은혜 받게 해 주세요’라는 심정이 됩니다. 슬그머니 이 순간만 눈감고 지나가면 이 말씀 금방 잊어먹는다는 심정이 됩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이 ‘그래 이번에는 결심 했어 이번에는 죽어야지’ 합니다. 그러나 잠깐 참고 있다가 ‘내가 왜 죽어’ ‘억울해서 못 죽어’하며 벌떡 일어납니다. 우리는 잠깐 죽은 척 할 수 있습니다. 한두 번은 죽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죽는 삶은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같은 피땀 나는 기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원과 자신의 소원에 마찰을 일으킬 때 육신의 욕망을 복종시킬 힘을 주시도록 간구하셨습니다. 반드시 많은 열매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을 사로잡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십자가가 영광으로 보이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한번 기도해서 안 되면 두 번 기도하시고, 두 번 기도해서 안 되면 세 번 기도하셨습니다. 온 밤을 지새워 기도하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심령에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고, 밀알의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다보면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보려면 성질을 죽여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땅에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 공연히 트집 잡는 사람, 봉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 가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욕심내자는 것도 아니고 남들 하는 것만큼만 하고 싶은데 그마저 할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남들은 광내고 있는데 자기만 죽는 것 같아서, 남들은 피어나고 있는데 자기만 어둠속에 묻히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과연 이렇게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힐까? 의심도 생깁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이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가설이 아니라 법칙입니다. 밀 종자의 수명은 보통 2년입니다.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하면 영광스러운 가능성은 모두 소멸되고 맙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기도로 힘입고 열매법칙을 실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밀이 열매 맺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고 싶은데 반대로 땅을 향해 떨어지고, 만인 앞에 드러나고 싶은데 어둠 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기간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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