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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룻의 효도 (룻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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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우리는 효도에 대해서 함께 은혜나누기를 원합니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효도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이땅에 주신 신적기관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가정이고 다음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효도의 순종을 통해서 질서있는 복된 가정이 되고 교회도 순종을 통해서 영적기관으로서 권위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공경을 명령하며 강조하는 것처럼 육의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십계명 중에서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 공경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성도의 의무 사항 중 바로 첫 번째 계명인 것입니다.이것은 무엇보다도 효를 강조하는 중요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부모에게 효를 하고 공경하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시작임을 우리에게 강조합니다.효도가 잘 실천되는 가정이 있을 때 교회가 건강하고 사회와 국가도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하나님이신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룻이라는 여인은 효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여인은 효도할 수 없는 극적인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효를 실천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사시대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이라는 나라에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압은 지금의 요르단에 해당되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을 피하여 모압으로 피난을 간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은 왕이시라”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자란 배경을 볼 수 있습니다.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입니다. “감미로운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 부부에게는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모압에서 10년정도 살면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모압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룻은 바로 바로 며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안있어 나오미의 두아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병으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나오미와 룻을 포함한 두 며느리 여자만 3명 남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제 모암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를 결단한 상황에서 전개되는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지금 룻은 남편은 죽었고 자식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룻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모압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룻은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효를 다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는 남남이 되기 쉬운 관계입니다. 그 가문을 버리고 다른데 시집가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효를 다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정에서 많은 경우에 가정문제 중의 하나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둘의 갈등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 전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낳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룻기서는 4장의 짧은 내용입니다. 룻을 통하여 우리는 효의 도전을 받습니다.

1. 룻은 고난 속에서도 효를 실천하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다시 이스라엘의 베들렘헴으로 돌아가게 된 정황은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 외국 생활이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고향에 가면 친척도 있고 동족이기에 위로가 될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런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를 결단하엿을 때 나오미는 두며느리에게 말을 합니다.
1:8에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이 말을 하고 울면서 작별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며느리들이 자식하나없이 늙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려줄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서는 떠났지만 룻은 떠나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시어머니 나오미는 다시 룻에게 떠나라고 했습니다. 룻기1:15 “나오미가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그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사실 나오미는 진심으로 룻이 돌아가서 평안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앞길을 위하여 진정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룻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룻기1:16-17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겟나이다 어머니는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어머니의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고 합니다.
룻이 그냥 인사치레로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번 마지못해서 하는 형식적인 말이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시어머니 그분과 함께 내가 죽을때까지 모시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룻은 마음으로부터 그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공경한 것입니다.

룻은 인간적으로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결속할 수 잇는 끈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고난을 감수하고 하나로 결속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록 조금 돈이 없어도 나이가 서로 차이가 나도 가정이 신앙으로 결속되면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나중에 룻기를 보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룻의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고부간의 관계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어려움이 있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요람을 흔들지만 시어머니는 아들의 가정을 흔들어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의 파괴적인 역할을 상징하는 말입니다.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고부간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따로 따로 사는 것이 서로 편하게 느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에 이런 갈등,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은 부부싸움도 그렇고 교회 속에서 성도 서로간의 싸움이 일어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건강하지 못한 자아상 때문에 생깁니다. 내가 건강하면 건강한 가정 생활 건강한 교회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열등감이 많은 시부모는 며느리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며느리가 말을 하면 ‘시어머니를 무시한다’고 합니다. 조금만 대우가 섭섭하면 ‘나를 무시한다’고 상처를 받고 관계가 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완벽주의형 시어머니 일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가정의 부부생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화합하기 어렵습니다. “내 방식이 최고다”라고 고집합니다. 이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간섭하고 잔소리하고 참견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서로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적인 결혼관이 없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사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결혼하면 자녀를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부모들이 많은데 중요한 것은 이제 결혼과 함께 자녀를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아직도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내가 얼마나 너를 위해서 희생햇는데’라고 생각하면 상처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 부부의 내외의 삶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나친 도움이나 간섭을 해서는 안됩니다.

네 번째는 며느리들은 시부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며느리들은 시댁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봅니다. 특히 요즘 현대의 며느리들은 과거보다 더욱 그런 것을 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시아버지의 시자를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시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이어린 사람들이 명심할 것은 어른들에게 자꾸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교회 일ㅇ르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분들에게 자꾸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꾸 대화해야 합니다. 특히 시어머니의 어린시절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과 습관과 문화엿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다섯번째는 시부모님과 의견이 다를 때 예의있게 자기 주장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 주장이 옳아도 어른에 대한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장하듯이 정죄하듯이 하면 안됩니다. 종종 보면 예의없는 며느리들은 오히려 어른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 어른들의 문제만으로만 보고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홀로 되어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80년 대에 60세이상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는 분들이 13%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35%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혼자 노년을 쓸쓸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서 자식과 떨어져서 혼자 사는 것을 오히려 원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자식들 짐이 되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자식들 눈치보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55-75세 노인들의 생각을 조사한 신문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겠다하신 분들이 전체 조사의 94%에 해당이됩니다.
통계로 나타난 것으로 보면 노인이 되서 혼자사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그런데 사실은 건강하고 돈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병들고 돈없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부부 둘중에 누군가 하나가 죽게 되었을 때 혼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물론 아직 건강하고 무언가 일이 있다면 또 문제는 달라집니다.돈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고 돌봄이 필요할 때 함께 살아야 합니다.

물론 점점 우리 사회는 부모를 모시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임으로 이제 노인들을 따로 구별하여 모시는 것이 점점 제도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것은 자녀가 노년의 부모를 모시면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요 바람직한 것입니다.
룻은 홀로된 시어머니 경제적 능력이 없는 시어머니를 고난 중에서 끝까지 함께하면서 섬기는 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 가정 속에서 룻과 나오미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룻은 필요를 채우는 효를 다했습니다.

룻기 2:17-18에 봅시다.
룻은 유대땅에 돌아와서 남의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이삭을 줍습니다. 그리고 그 주운 것을 가지고 돌아와서 보이고 그것으로 요리하여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면서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을 봅니다.룻은 마치 딸처럼 어머니를 내어머니처럼 봉양하고 서로 섬기면서 산 것입니다.

노인에게 삼락이 있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세가지 낙이 무엇인가 하면 “몸은 편하게 눈을 즐겁게 입은 연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통해서 효도도 해야 합니다.
노인일수록 더 잘 먹어야 하고 더 잘 입어야 합니다.
효도란 바로 부모의 필요를 잘 좇아서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우선 먹는 것을 잘 챙겨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육체적으로 쇠약합니다. 겉사람이 후패해지기 때문에 영양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 드려야 합니다. 특히 이가 약하고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음식을 잘 드실 수 없습니다.그래서 수시로 먹을 수 있도록 간식도 드리고 잘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을 해드려야 합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의 어떤 할머니는 어렵게 행상을 하여서 아들을 공부시켜 대학을 졸업시켰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여 좋은 가문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자기 집을 처분하여 서울로 올라가서 자식내외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다가 얼마 못있고 내려왓씁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함께 사니까 배가 고파서 못살겟다”는 것입니다.
아들 부부가 맞벌이인데 며느리가 피곤하니까 아침에 우유 한잔에 빵을 먹고 출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이 맞지도 않고 소화도 안되고 그것먹고 배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해먹자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치가 보여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와서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교회생활이나 평안히 해야 하겠다고 하고 내려왓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배운 며느리에게 밥 얻어 먹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노인들의 필요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필요를 잘 알고 그것을 채워드리는 것이 효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부모님에게 용돈을 충분히 드리지 못하는 것이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돈이 없다고 하면서 자식들에게는 빚은 얻어 투자하면서 부모님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내리사랑”이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갑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을 물질로 잘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룻이 육신의 필요를 채울때 시어머니 나오미는 마음이 굉장히 평안하고 즐거운 것을 보게 됩니다. 육신의 필요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필요는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효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주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효도란 사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잠언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엣날에 도시 효자가 시골에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골로 찾아갔습니다. 시골 효자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옷을 누추하게 입은 청년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노모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대야에 물을 떠 왔습니다. 노모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기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아들과 주고 받는 것이있었습니다.
잠시 후 도시 효자는 시골 효자에게 이렇게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 발을 씻게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시골 효자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효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마음 속에 “내가 효행을 잘못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시 효자는 이때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부모를 공경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잠자리,좋은 음식,많은 용돈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즐거움 기쁨이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섬기듯 부모를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잘 공경하면 엡6: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합니다.
사실 시어머니를 잘 공경한 룻도 땅의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을 투자하였지만 오히려 몇배 더 받았고 이삭줍던 밭의 주인 보아스를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복을 얻었습니다.
룻과 같이 땅에서 잘 되는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룻은 순종하는 효를 실천했습니다.

3:5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그리고 3:6에 보면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고 합니다. 결국 시어머니가 가르쳐준 말씀대로 순종하여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들은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지혜가 많습니다. 그 말씀대로 할 경우에 손해보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비록 룻은 시어머니이지만 그 말씀에 ‘예’라고 순종하였을 때에 결과는 본인에게 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바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불신자일 경우에 그럴 수 있습니다. 교회다니지 말라고 할때 그런 경우에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둑질을 하라고 하면 그런 명령은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말세 끝이 가까울수록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않는다”(딤후3:2)라고 하였습니다.
점점 갈수록 자녀들이 부모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불순종의 풍조가 거세지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데는 부모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밖에 안되니까 너무 귀하게 키우면서 너무 아이들이 예의없이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로 키운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말세의 끝이 가까울수록 점점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하고 교만한 세대가 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고 권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여러분 이런 세상풍조를 닮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은 사람 대접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습니다.“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신21:18-21)고 합니다.
왜 이렇게 엄격하게 하나님께서 순종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해야 질서가 서고 순종해야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건강한 가정으로 축복하여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맺는말 )

룻은 효도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시어머니에게 효도하였습니다.
남편도 없고 아들고 없고 재산도 없었지만 시어머니를 위해서 조국과 친척을 포기하고 함께 모시면서 효도하였습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가 가난하고 늙어도 끝까지 함께 있으면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보살펴드리는 것입니다.
룻은 필요를 채우는 효를 실천했습니다. 효는 부모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적당한 음식과 용돈과 의복을 제공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기쁨이 있도록 돌보아드려야 합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효도란 부모의 말씀을 듣고 그 권위 아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을 통하여 룻은 가정의 축복,가문의 축복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효도를 잘 실천하여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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