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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바람직한 가정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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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청년부에서 지난 주일에 이미 꽃을 나누어 드렸는데 고맙단 말도 못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버이 주일에 대한 말씀으로 바람직한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한문이 있는데 어버이 ‘친(親)’과 ‘효(孝)’입니다. 이 글자에는 묘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시골에는 5일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다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 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이라고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친(親)자와 효(孝)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엡6:1-3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고 잘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잘 되기를 바라고 바람직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비결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사는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효도해야 하는지 요셉을 모델로 생각해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부모효도는 천륜입니다.

부모 공경과 효도는 부모가 아무리 부족하고 무능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할지라도 부모라고 하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효도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보면 인간적으로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습니다.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은 사람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아내를 4명이나 두었습니다. 그것도 이종 사촌 동생 둘과 그의 몸종들을 말입니다. 이정도 되면 어디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남이 알까봐 조금 부끄럽지 않습니까? 어려서는 몰랐지만 커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하여 얼마나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이 많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담을 쌓고 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 아버지에게 극진한 효를 행하였습니다. 그 형들로부터 그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어서 그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고 애가 타서 말합니다. 창45:9-11절을 보면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고 하면서 버금수레를 준비하여 아버지를 모셔 오게 합니다. 아버지가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자 곧장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 아버지를 뵙고 그 품안에 안겨 웁니다.(창46:29) 그리고 임금님께 그 아버지를 소개해 드립니다.(창47:7) 그리고 평생을 봉양해 드립니다.(창47:12) 그렇습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조건을 보고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절대로 공경할만한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나를 이 땅에 있게 해 주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용서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일지라도 부모라는 이유하나로 우리는 효도해야 합니다. 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나에게 입에 닮을 수도 없는 상처를 준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용서하고 효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십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만약 부모를 저주하고 불순종하고 조롱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무서운 벌을 내릴 것을 말씀합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명령이요,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한 기회인 줄 믿습니다.

2.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사실 요셉의 가정환경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머니는 네 분입니다. 작은 어머니이면서 이모입니다. 어머니라고 부르기 힘든 종입니다. 그리고 배다른 형제가 10명이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복잡한 가정입니까? 어머니들이 서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투기하고 시기의 불꽃이 여기저기서 튑니다.(창30:1) 상상해보세요. 삼촌의 딸들입니다. 이종 동생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 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들을 또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서로 사랑받기 위해 아이 낳기 경쟁을 버립니다. 창30:1절에 보면 라헬이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아들 안나주면 자살하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이냐! 어떻게 내가 아이를 낳게 할 수 있겠느냐!”고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형제들의 질투는 끝이 없습니다. 결국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먹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열등감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들이 이렇습니다. 요셉의 가정처럼 복잡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가정에는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술주정, 부모의 무식, 남보다 못한 직업, 경제적인 어려움, 형제들의 시기, 불신, 가족 간의 대화의 단절, 부모님이 공부강요, 간섭 등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3. 그 받은 은혜 때문에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 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버이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태중에 있을 때, 순전히 어머니의 피를 받아 자라며 생리적 영향과 심리적 영향을 받으며 모태속의 나의 인생이었을 때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옛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사람의 해골을 보면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희고 무거우면 남자의 것이요, 검고 가벼우면 여자의 해골이라고 했습니다. 그 까닭은 여자는 아이를 한번 낳을 적마다 서말 서되(3말3되/三斗三升)의 피를 흘리고(66ℓ) 여덟 섬 너 말(8섬4말/八石四斗)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1680ℓ) 백골이 검어지고 또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여자의 해골이 가볍고 검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인의 해산의 고통은 어떻게 자식이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낳아서 강보에 쌓아 기를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밤잠을 자지 못한 양육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인격과 교양의 덕목으로 온전한 가정에서 인격형성의 교양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평생 잘되라고 복비는 부모의 축복의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평생토록 갚아도 다 못 갚는 것이 부모의 은혜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는 철이 나지 않아 효도를 못하고 이제 자식을 낳고 보니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 조금 깨달아 나를 기른 부모의 심정도 ‘그랬겠구나!’ 하면서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효를 행하려고 하면 벌써 이 세상을 떠나가셨으니 효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현자들도 부모에 대하여 남긴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순임금은 말하기를 “만약 자기 부친이 살인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는 즉시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아버지를 등에 업고 세상 끝까지 몸을 피해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즐거이 모시며 살아 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맹자(孟子)는 진심편(盡心篇)에서 “임금의 자리나 나라의 법규보다도 효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공자(孔子)도 “옆집의 양을 훔친 아버지의 죄는 자식으로서 이를 고발하기 보다는 숨기는 것이 더 도덕적이다.”라고 자로편(子路篇)에서 말했습니다. 또 위정편(爲政篇)에서는 “요즘은 부모에게 물질로서 봉양하는 것을 효도라고 하나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호의호식을 시켜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 그 정성을 대신하려고 하는 풍조에 병들어 있는 우리에게 크게 뉘우침을 주는 교훈입니다.

김소월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비록 나의 어머니가 문둥병자라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우리 모두가 다 이 말씀대로 바람직한 인간의 도리를 다하셔서 이 땅에서 잘 되시고 장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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