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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기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행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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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였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람마다 처음 만나 이름을 나누고 나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일을 하면서 예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맡은 ‘직업’을 ‘전도의 도구’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한 일이라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까?
주님께서 평가하실 때 착해야 하고 충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까?

다른 각도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나를 기뻐하실까?
주님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냥 넘어가실까?

나는 금문교회 목사로 부르심 받았다는 사실에 큰 감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때때로 "과연 내가 이 직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충성된 종인가?”를 묻습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새벽기도 때 전도에 대한 큰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가 전도를 실천해야 하는데, 과연 나는 몇 명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기도를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함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쪽 코너를 돌아 경찰 두 명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리라 마음먹고 잔뜩 준비했습니다.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나는 금문교회 목사입니다. 나는 평소 경찰 여러분을 존경해왔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에 시나리오를 썼다가 지웠다가 몇 차례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어나서 가보니 그들은 벌써 자리를 뜨고 없었습니다. 내 곁을 지나가는 길 말고 달리 출입문이 없는데, 그새 하늘로 사라졌나, 땅으로 꺼졌나? 마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큰 기회를 놓친 것 같이 가슴이 쓰렸습니다. 그들이 오늘 범인 소탕전에 투입되어 생명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한 10분을 지났지만 그들은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30대 초반의 백인 청년이 커피에 프림을 타고 있었습니다. 다가갔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그 청년은 그러나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나는 계속했습니다. “나는 Crocker Ave. 상에 있는 금문교회 목사입니다. 오늘 아침 기도하던 중에 성령님께서 전도에 대한 부담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세주이십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청년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Sorry. I cannot do that!" 그리고는 성급하게 내 곁을 지나쳐 문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걸음걸이는 자로 잰 것 같이 일정했습니다. 그는 행동으로 내가 전한 복음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간적으로!’ 내 마음에 차오른 것은 ‘평안’이었습니다. 기쁨이었습니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들어갈 때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라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맞아들이면 좋지만, 아니라고 해도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연 그 평화를 느꼈습니다.

70인을 세우시고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다.” 하시면서 평화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1-24)

70인이 기쁨으로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은 전도의 능력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귀신들도 무찌르는 능력을 입은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날 아침 스타벅스에서 내가 빈 복음의 평화는 내게 돌아왔습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시대입니다. 물질은 풍성하지만 영적인 갈급함이 심각한 시대입니다. 마귀가 크게 역사하는 때입니다. 물질로 시험 들게 합니다. 영적 성장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만큼 전도의 때이기도 합니다. 시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예수님을 전할 때, 마음에 차오르는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들은 그 사람들은 언젠가 기억할 것입니다. 대놓고 거절했거나 관계없이 그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씨앗은 심겼습니다.

전도하면 열매를 거둡니다. 노아처럼 120년 동안 겨우 자기 식구만 열매로 거두었다고 해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변했습니다. 그 때 전도를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문제는 그 열매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소식을 전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만든 소식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보고 들은 대로 전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열매에 대하여 자랑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금문교회 창립 12주년을 맞았습니다.
나는 ‘전도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이 귀중합니다. 동시에 전도하는 목사로 거듭나는 것이 이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여러분 모두에게 전도의 기쁨을 전합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기뻤겠는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경주가 승전보를 가지고 달리던 군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달리는 기쁨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야겠습니다. 금문교회의 앞으로의 12년은 그렇게 가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의 고백입니다.

얼굴이 밝고 환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람 만나 동무 하면 세상 살아갈 동안  큰 힘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 하나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 찾았다 싶으면, 그의 다른 얼굴은 분노와 슬픔 등으로 범벅 되는 것을 곧 발견했습니다. 실망이 컸습니다.

고민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기도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네가 그런 사람이 되어라.” 그것이 남에게서 찾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쉬울 뿐 아니라 훨씬 보람이 크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소금과 빛이 되는 사람 말입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상에 그래도 착한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다 싶으면 어딘가 결정적인 허점이 보였습니다. 실망스런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쳐서 포기하려고 할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그런 일을 해라!” 조금씩 소금과 빛 된 일을 실천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이 어렵지, 일단 하고 보니까 할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엄청나게 큰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도리어 물으셨습니다. “너는 율법의 전문가 아니냐?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었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 물었을 때,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율법의 말씀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동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웃이 누구인지 몰라서 그렇게 행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소위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강도 만난 어떤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 레위인도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던 일정을 바꿔 그를 치료하는 데 시간과 물질을 썼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가 대답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주님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25-37 말씀입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었던 사람에게 “네가 이웃이 되라!” 하셨습니다. 밖에서 찾던 사람을 안에서 찾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되고’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여기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막히고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해법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해법입니다.

이런 것을 “발상의 전환” 혹은 “역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소위 “paradigm shif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밖에서 찾던 것을 안에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발상의 기본은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우리 주님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나 스스로가 되고, 나 스스로가 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 창립 12주년을 맞아, 여러분의 영혼의 양식을 책임 맡은 담임목사로서 내가 깨달은 바입니다.

이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면서, 여러분 스스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고 여러분이 하십시오. 그러면 일이 됩니다. 세상이 참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세상에는 여러분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곁에 친구며 동무가 하나씩 둘씩 모여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유명한 동화책이지요. 제목도 큰 줄거리도 잊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페인트 칠을 맡았습니다. 정말 큰 일이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그걸 마칠 도리가 없습니다. 화도 났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룰루랄라.... 노래하면서 춤도 추면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그거, 재미있어?”
"그럼. 얼마나 재미있는데!”
“나 좀 해 볼 수 없을까?”
“글세.... 안되겠지만, 인심 썼다! 너는 내 친구니까!”
“친구? 내가 네 친구야?”
“그럼. 나는 네가 좋아.”
“고마워.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이렇게 해서 하나씩 모여든 아이들이 페인트를 함께 했습니다. 힘도 들지 않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금문교회 빈자리를 채우는 것. 이건 ‘부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일은 억지로 할 것이 아닙니다.

즐겁게 일하는 한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금문교회 담임목사로서 나는 나부터 시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겠습니다. 앞장서서 주님의 전의 빈자리를 채우겠습니다. 내게 주신 영적 부담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아침 베이브릿지를 지날 때입니다. 평소 같으면 Fastrack 레인을 지날텐데, 찰를 바꿨기 때문에 현금을 내야 했습니다. 아하, 저기 저 직원에게 전도하자! 순서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3불을 내면서 입을 여는데, 그 흑인 여자가 먼저 입을 뗐습니다. “어머니날, 축하합니다....” 그 짧은 시간을 계속 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God bless you!"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그 직원은 내 웃음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축복을 기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격은 없지만 그렇게 불러 주셨고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충성’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충성’의 열매를 찾으실 것입니다. 눈물이며 피며 땀의 열매입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금문 성도 여러분의 삶에 이런 기쁨이 날마다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은혜의 주 하나님. 오늘 우리교회를 세우신 지 12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주님의 은혜로써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삶을 예수님을 따라 변화받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날마다 허락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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