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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르반 (막 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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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외식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겉을 꾸민다는 말로 속과 다르게 거짓되게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위선과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위선이란 선이 아닌 가짜 선 즉 선하지 않은데 선한 체 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이 외식이나 위선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외식이라는 말은 그리스 말로 휴포크리테스라고 하는데 연극배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가슴 속에는 통곡을 하는데 바깥으로는 웃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처럼 연극배우란 마음과 다른 행동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휴포크리테스는 처음에는 연극배우를 말하다가 점차 바뀌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속이 다른,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진실이 없는 위선자를 말합니다. 위선이란 말 자체가 좋지 않습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부끄럽고 치사한 모습이 바로 위선입니다.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것도 위선입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인물인 다윗을 괴롭힌 것도 다른 사람들의 위선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41편에서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시편41:5~6)라고 가슴 아픈 한탄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다윗은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9절)라고 하나님께 한탄하였습니다. 너무 너무 가슴 아프고 속이 상해서 사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 위선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외식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런 대표적인 사람이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적어도 그러지 않아야 할텐데 종교지도자들이 그 당시에 그랬습니다. 겉으로는 얼마나 인격적으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당시 그 분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인격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으로는 선한 척 하면서 가슴 속에는 시기가 가득했고 질투와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었고 교만과 명예욕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율법만 잘 지키면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사 전에 손만 잘 씻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손을 씻을 때 물도 조금 찍어서 바르고는 그것으로 손을 잘 씻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와서는 잘 씻지도 않고 물을 조금 뿌리기만 하면 깨끗해졌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속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슬람교도 전체를 폄하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리는데 참으로 열심히 드립니다. 이들은 여행할 때에 기도드리는 시간에 기도드리기 위해서 돗자리를 들고 다닙니다. 한 이슬람교도가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기도하는 시간이라는 종소리가 들리자 그 이슬람교도는 그 자리에 멈추어 돗자리를 펴고 기도를 했습니다. 외어야 할 기도문을 열심히 외우고 나서 끝나자마자 다시 돗자리를 접어서 둘러매고 뒤쫓던 죽이기 위해서 칼을 들고 뛰어가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나 신앙이라고 하면서 그 마음속에 죽이려고 하는 살인의 마음이 가득했으니 얼마나 무서운 위선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종교인들의 치사한 위선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성경에 나오는 고르반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에 대한 선물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물건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마음에 결정했으면 이제 그 물건을 고르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점유하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것입니다. 돈이나 땅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이제 그것은 내가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무엇이든 하나님의 것은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악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채무자가 돈을 주지 않자 화가 난 채권자가 고르반 이라고 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받을 돈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 되어버립니다. 지금까지 그 채무자는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되어 이 빚에 대한 부담감이 옛날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커집니다. 사람에게 돈을 떼먹는 것은 벌이 좀 작습니다만 하나님께 돈을 떼먹으면 벌이 크고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고르반으로 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다 쏟게 됩니다. 돈을 마련하면 그 돈을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갚게 되는데 아주 악하고 못된 일은 이 때 생겨납니다. 그 사람이 돈을 갚았다는 말을 들은 채권자는 성전에 가서 고르반을 취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취소하면 취소벌금만 성전에 바치고 나머지는 사람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처음에 참으로 좋게 보였던 고르반, 그 어려운 돈을 하나님께 바치는 참으로 대단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신앙을 빙자한, 하나님과 종교를 이용한, 위선을 뛰어넘는 범죄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예수님 당시에는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일을 부모에게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사는데 부모가 살기 너무 어려워 자식의 도움을 요청했는데 못된 자식은 부모님의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이것을 고르반 해버립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재산을 모두 고르반 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드릴게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취소를 하는데 취소를 하면 10% 정도는 성전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찾아와서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일들이 상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아주 악한 일입니다. 처음에 겉으로 보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같지 않고 하나님께는 얼마나 대단한 신앙으로 보입니까? 그런데 이런 내막이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위선입니까?

오늘 우리는 아주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 우리가 바로 그런 위선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혹 우리는 어떤 것을 핑계로 부모님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일은 없는가? 장인 장모 그리고 시부모님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어떤 것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데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옛날에 부모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준 것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전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너무 잘못했다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심지어는 나를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 공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부한다고 제대로 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할 것 같습니까? 이것도 부모들이 잘 가르쳐야 합니다.

또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회의 일이나 신앙을 핑계로 해서 부모님에게 제대로 하지 않는 것,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것도 일체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중대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법들 가운데 최고의 법이 십계명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이 열 가지 안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것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님에 대한 공경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세상적으로 봐서 공경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부모님께 잘 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말씀합니다. 또 에베소서 6장 2~3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본래 어머니날로 지키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날의 유래는 미국의 웨이버스트라는 작은 동네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참 어려운 시기였지만 자비스 라는 부인은 이 동네 아이들을 자기 친자식처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모든 아이로부터 친 어머니처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비스 부인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생들은 자비스 부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모두 교회로 모였습니다. 자비스 부인에게는 안나 라는 딸이 있었는데 안나는 자기 집 뜰에 핀 하얀 카네이션 꽃을 한 아름 안고 와서 돌아가신 어머니 자비스 부인 영정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 때가 되면 그 마을에서 그 행사가 계속되었고,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했습니다. 급기야 1908년에는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이 날을 어머니 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 의회에서는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식으로 채택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있는데 살아계신 어머니가 있는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분은 하얀 카네이션을 달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말씀을 합니다만 참된 그리스도인들, 참으로 가슴에 예수가 있는 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부모님을 공경합니다. 그것은 내 속에 예수가 있기만 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내 속에 계신 예수가 하나님의 법을 다 이루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정말로 내 속에 예수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내 부모뿐만이 아니고 어른들을 보기만 하면 어른들을 귀하게 여기고 어른을 잘 섬깁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만 내 속에 들어오게 되면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저절로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꾸 복을 받으려고 힘쓰고 애쓰는데 이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내 속에 정말로 제대로 모시게 되면 내가 복 받는 사람으로 자동적으로 되고 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주 부리거나 방법을 알아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완전히 내 속에 계시면 예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강철 왕 카네기는 어려서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던 가정이었으므로 생계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평균 열여섯 시간 내지 열여덟 시간 일을 해야 했습니다. 카네기가 스무 두 살 되는 어느 날 어머니께 “어머니, 저는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좋은 옷을 사드리고 어머니를 모실 사람을 집에 많이 두고 어머니가 타실 마차를 마련하여 어머니를 잘 모시고 난 뒤에 결혼하겠습니다.” 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카네기는 서약한대로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년 동안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22살에 약속을 했으니까 30년 되는 52살이 되는 해에 결혼을 했고 그로부터 10년 뒤 처음으로 자식을 보았습니다. 오로지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에 결혼을 늦추었는데 그것이 큰 복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 효도하고 공경하고 자기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한 것이 자기 자신을 복되게 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부모님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한 분들은 이 어버이 주일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내가 부모님에게 할 일이 더 있지는 않은가? 기왕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은 눈을 들어 보십시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만 내 부모가 아닙니다. 내 도움과 공경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국내를 벗어나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다 보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모든 일이 다 잘됩니다.

특별히 저는 많은 가정과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눈으로 본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자식이 더 잘됩니다. 주위를 잘 보십시오. 까닭없이 잘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내가 잘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잘했기 때문이고 여러분들이 잘하게 되면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그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최고의 복은 여러분이 잘되는 것보다 여러분의 자식이 잘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먼저 떠나 가는데 저 아이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필요한 만큼 재산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받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장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꼭 오래 사는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김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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