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행 20:24)

  • 잡초 잡초
  • 326
  • 0

첨부 1


  지난 2월 20일, 미국 ABC방송의 오프라 윈프리 쇼에 아버지와 아들이 출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가 65세이고, 아들의 나이는 43세였습니다. 이들 부자의 출연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은퇴했고, 아들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다니는 전신장애자였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 릭이 탯줄이 목에 감겨서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출산하고 보니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로 고통당하게 되었고, 어린 아들 릭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딕은 매우 낙심했습니다. 장애인 아들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인생을 비관하고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런 아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냐, 특수기관에 맡겨 기르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총총한 눈이 너무 아름다워 아버지는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한 집에서 함께 양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15세가 되던 어느 날, 말을 할 수 없었던 아들은 컴퓨터를 통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 지역에서 달리기 대회가 있는데, 저와 함께 아빠가 나갔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아들의 간절한 소원을 뿌리칠 수 없어서 달리기 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뛸 수 없기에 아버지가 휠체어를 밀어주며 달리기에 참여했고, 아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 릭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난생 처음 달리면서 제 몸의 장애가 사라진 것 같은 생각을 했어요. 정말 행복해요.” 아들이 행복하다는 말에 힘을 얻은 아버지는 또 다른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자는 4년 동안 훈련과 연습을 거듭한 끝에 정상인도 참여하기 어려운 철인 3종경기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출전하려면 3.9키로의 수영을 해야 합니다.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180.2키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42.195키로 여기에서 덕소까지 가는 거리를 마라톤으로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장애인 아들은 여섯 번 출전해서 완주했고, 206차례 단축 3종 경기에 출전해서 완주했으며, 64차례나 42.195키로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이들 부자의 연습과 도전은 눈물겨운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사실 수영을 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물에만 들어가면 돌덩이처럼 가라앉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서 열심히 수영을 배웠고, 이윽고 그는 세계 최강의 철인들 틈에서 아들을 실은 작은 고무보트와 자기 허리를 묶고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 3.9키로의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특수 의자가 달린 자전거를 만들어 아들을 태워 180.2키로의 용암지대를 달렸고,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42.195키로를 달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도 행복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아들 릭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없이는 이런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들이 없었다면 나도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서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참 감동스럽습니다. 저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바로 이 아버지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가정에 칠남매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아들 중에 중학생 아들하나가 집을 가출해버렸습니다. 아들은 가출한 아들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아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제대로 밥은 먹을까’ 늘 그것이 염려요 관심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아들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있다면 다른 여섯 명의 자녀들이 그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주는 것을 것입니다. 진정 잃어버린 아들이 찾아질 때 그 아버지의 기쁨은 더욱 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전도의 출발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들에게 이 전도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이 사명은 바로 전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사명을 마음에 담고 살아갔던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오늘 성경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다가 핍박을 피해서 다른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러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 전에 밀라노라는 곳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서 그들과 이별하는 이야기 중에 나오는 고별사가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내게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내 생명도 아깝지 않다.”고 증언합니다.

  왜 바울은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복음을 증거해야만 했을까요? 왜 우리가 바울처럼 복음 증거에 헌신해야 할까요?

  첫째로, 복음 증거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명령은 특별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열 두 제자나 목사들, 선교사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제자들을 향해서, 또한 오늘 믿는 성도들을 향해서 주신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성도의 사명입니다. 오늘 주보에 실린 칼럼을 읽다보면 기독교인은 전도하기 위해 존재하고 비기독교인은 전도받기 위해 존재한다고 실려있습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성도의 유일한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성령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전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곳은 가족과 이웃이 있는, 친척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온 유대는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는 조금 더 떨어져 있는 동네, 그리고 그들로 보면 가고 싶지 않은 곳, 오늘날로 보면 북한이나 일본쯤 될 것입니다. 그리고 땅 끝은 세상 모든 민족과 족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린 이 전도의 사명을 받았기에 복음을 증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왜 복음을 증거해야 할까요?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믿는 자들 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기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집안의 자녀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집 밖으로 가출한, 잃어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향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니,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냐고 말입니다. 왜 마지막 심판이 지체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곧 다 구원받기를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형벌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예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지옥에 떨어지기를 주님은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주님은 이 일을 계속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가족의 믿지 않는 자녀들이 예수 믿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과 직장동료들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으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우리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의 영혼들에게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목자가 백마리의 양을 관리하는데 어느 날 우리에 넣다보니 한 마리의 양이 부족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넣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까? 무시해도 될 텐데, 그 한 마리 때문에 온 산과 들을 다 헤매고 고함치고 다닙니다. 그리곤 그 양을 찾아 돌아와 기뻐 잔치를 베푼다는 얘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게, 한 영혼에게 주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복음을 증거합니까?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교회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우리 민족 가운데 엄격히 말하면 20%는 예수를 믿지만 80%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일생을 살다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이 땅에서는 일년 동안 5천 4백 명이 숨을 거둔다고 합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예수를 모른 채 죽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명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불신자를 향해서 복음을 들고 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왜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지금 지나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섯째 주에 걸쳐서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간은 목적 주간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입니다. 교제, 훈련, 사역, 전도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목표는 이 땅에서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예배하고 천국에서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교제를 봅시다. 이 땅에서도 교제하고 사랑하지만 천국에서도 사랑하고 서로 교제할 것입니다. 훈련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닮도록 우리는 훈련받는데 천국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더욱 노력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로 사역이란 이 땅에서 이웃을 섬기는 것인데 천국에서도 형제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목적, 전도는 천국에서는 가능할까요? 불가능할까요? 천국에서는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입니까? 다 예수 믿는 이들만 오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오직 이 땅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서 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죄짓는 것과 전도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전도의 기회는 바로 지금 이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종말의 시간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때까지 우리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소중한 전도의 기회인 것입니다.

  대전에서 ‘미가엘’이란 미용실을 경영하시는 김복희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은 자기 미장원을 선교센터처럼 꾸며놓았다고 합니다. 머리하러 왔을 때 기다리면서 기독교 텔레비전을 보도록 설치를 해 놓고, 기독 서적을 준비해 놓고, 마이크까지 준비해두어 CCM을 듣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교회 다니는 사람에겐 혜택도 주어 컷트는 공짜라고 합니다. 그는 많은 이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한 배경이 있는데 수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 써 버리고 말았답니다. 자기 집도 다 내놓고 16만원짜리 월세방에 사는 신세가 되었는데 너무나 어려울 때 깨달은 것이 있답니다. ‘돈을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아무것도 아니구나. 한 순간에 날아가는구나. 이 땅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전도구나.’하는 것을 깨닫곤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이 형편과 처지를 주님이 도와주시면 전도하는 삶을 살겠다고 서원했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열심히 전도를 했고 하나님이 미용실을 통해서 축복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용실을 통해서 많은 이들을 구원했답니다. 딸과 함께 운영하는데 솜씨가 좋아서 손님이 아주 많답니다.

  그녀가 말하는 다섯 가지 원리가 있는데, 첫째는 전도하기 전에 칭찬을 한답니다. 사람은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두 가지는 칭찬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믿어서 좋은 점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니까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있다는 간증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든든한 후원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두렵지 않아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요.”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의 원리는 예수님을 강조하다 보면 지금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그가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를 스스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나오지 않아도 “예수 믿어야 당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예수 믿어야 바른 삶을 살 수 있어요.” 라고 얘기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인생의 성공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있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장과 자원, 재능과 여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왜 미용실에서 전도하느냐고 듣기 싫다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들을 향해서 그녀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미용실을 경영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사람입니까? 나는 적어도 한 영혼을 더 구하기 위해서 미장원을 경영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한답니다.

  어떤 안경점을 하는 집사님은 이렇게 전도한답니다. 안경점에 안경을 맞추러 가면 시력을 재게 되는데 가갸거겨 기호와 나비 대신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글씨를 써 놓았답니다. 시력테스트를 하면서 그 말씀을 읽을 수 밖에 없게 말입니다. 사람들은 글씨를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집사님은 어떻게 전도를 하느냐하면, 목적이 이끄는 40일 포스터를 그 분이 도맡아 붙였는데 그 동네에 유명한 악명 높은 사람이 포스터를 열심히 떼더랍니다. 조금 있다 오면 금방 찢기고, 떼었답니다. 붙이고 떼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말을 걸더랍니다. 포스터를 보고 “정말 교회 나가면 나도 소그룹에 참여할 수 있고 따뜻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나요?”하고 묻더랍니다. “물론이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하곤 소그룹에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말씀을 듣고 소그룹에 참여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집사님이 한 일은 포스터를 계속 붙인 것 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런 일을 통해서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고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단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도의 명령을 주고 계십니다. 너희는 만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모세처럼 “저 말인가요? 전 능력이 없어요.” 요나처럼 “저는 싫어요.” 아니면 하박국처럼 “왜 하필 저입니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사야처럼 “주님, 저를 보내주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저를 보내주세요.”가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자원, 재능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큰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주어진 기회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라고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나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면 이 땅에서 축복을 받고 너희가 100배의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시겠습니까? 오늘도 복음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전도의 사명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이 사명을 위해서 힘차게 나아가시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찾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