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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청년들아 (전 11:9~10, 요일 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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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청년이 쓴 짧은 글입니다. “나의 어릴 때 소원은 대통령이었다. 나의 학생 때 소원은 판사나 변호사였다. 나의 지금의 소원은 굶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 실업 50만 명을 넘은 시대에 어느 청년의 소원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청년들에게 무슨 권면과 용기를 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청년 백수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추리닝 패션도 유행합니다. 추리닝 입고 앉아서 “야 일구야, 2천원에 안 되겠니?” 하는 말이 최근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 개그의 제목도 “현대생활백수”입니다. 이것이 현대 청년들의 형편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개그 이상으로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표현한 말입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청년은 교회의 미래입니다. 청년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청년의 기가 살아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청년은 젊음만으로도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음이란 자산을 유용한다면 “청년의 때가 헛되니라”라고 성경에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다는 것은 청년의 때가 빨리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시간은 쏜살같습니다. 지나고 보면 너무 빠른 것이 세월입니다. 그러므로 아껴쓰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삶은 경건하게 대해야 할 자산입니다.

  어른들은 말입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나이가 숫자인 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에게도 나이는 숫자입니다. 생물학적 나이만 가지고 젊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생물학적 나이만 가지고 늙었다 젊었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젊은 늙은이가 있고 늙은 젊은이도 있습니다. 프로제리아란 조로증도 있습니다. 나이는 열 살밖에 안되었지만 생체적 현상은 90세 노인인 병도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젊었지만 늙은 사람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청년이란 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붉은 뺨이나 입술이 아니라 굳센 의지, 상상, 감정, 생명력에 달렸다. 청년은 용기로 비겁을 이기며 모험으로 앞일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생각이 청년다워야 합니다. 토마스 모어는 “생각 없는 젊은이는 비참한 노년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글에서 이런 구절을 찾았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아!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는 시든 나무들이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스칸이 됐다”. 젊은이는 상황을 극복합니다. 젊은이는 자신에게 먼저 인정을 받습니다.

  현실과 상황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키워가는 것이 위인입니다. 자신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위인은 없습니다. 성경적, 신앙적, 애국적 청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이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다시 한번 자신의 자세를 가다듬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마음대로 행함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청년이며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청년의 때를 즐기라는 말입니다. 마음대로 행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행하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즐기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즐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정욕으로 즐기고, 오락으로 즐기고, 개그로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워하라,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세속적 쾌락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이 거룩하고 성결하게 우리의 생활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신앙의 생활이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인간은 창의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삶이란 습관의 덩어리입니다. 습관은 인간을 만듭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성장하는 사람의 네 가지 습관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습관입니다. 둘째는 공부의 습관입니다. 셋째는 헌금의 습관입니다. 넷째는 친교의 습관입니다.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고관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모함을 짜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온전한 생활의 습관이었습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은 그의 온전한 생활의 습관이었습니다. 좋은 신앙적 습관으로 사는 것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어떤 학생이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선생님, 저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래 갔다고 오너라. 근데 넌 쉬는 시간에는 뭘 하고 이제 가니?” 선생님의 물음에 이 학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 자기 전에 화장실에 가는 습관이 있거든요”. 좋은 습관과 좋지 못한 습관이 섞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열심히 일하는 습관도 중요합니다. “서 있는 농부가 앉아 있는 신사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습관을 길러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이쇼 히로시는 그의 책 ‘아침 형 인간’에서 좋은 습관을 강조합니다. 그 책에 의하면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야행성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부터의 습관입니다.
 
명품이란게 있습니다. 옷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에 명품이 있습니다. 소위 럭셔리한 브랜드인데 주 고객층이 급격히 젊어지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명품관의 고객이 20-30대가 40-50대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주 고객층으로 등장한 이들을 ‘영(young)품족’이라고 합니다. 상품 구성도 이들에게 맞추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물건들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자기가 직접 돈을 벌지 않는 등 경제적 자립 능력이 없어 불건전한 소비 풍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젊은 문화의 과제입니다.

  젊을 때는 외모가 인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외모보다 내면이 충실하고 대화 상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명품이 아니라 내면이 명품이 되어야 하며 우리 자신이 명품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을 신앙 없이 교육하라. 그러면 그들은 틀림없이 영리한 악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좋은 신앙습관을 가진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근심이 마음에서 떠나고 악이 몸에서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근심은 ‘카아스’란 말입니다. 이 말은 분노, 슬픔, 노, 번뇌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웬 근심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근심할 것밖에 없습니다. 앞날도 불투명합니다. 나라도 세계도 그 장래가 모호합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근심도 있습니다.

  세상적 근심을 보세요. 고린도후서 7:10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을 사망을 이루느니라”고 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 사망을 이루는 세상적 근심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신앙적, 생산적 근심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만 7천만 명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매년 93조 원가량의 생산비용을 낭비합니다. 십대의 63%가 학업부진의 요인으로 지적합니다. 중년이 되면 더욱 심각하여 30-40대에 최악의 증세를 나타냅니다. 노인의 50%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치료하기 위하여 치아 교정에서 시작하여 허브 차, 명상 그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면증입니다. 하루에 아스피린, 수면제, 신경 안정제등이 무려 30톤이나 미국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수면제 판매량은 지난해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수면제 처방 건수만 4,200만 건이었습니다. 불면증은 과로나 지나친 긴장의 산물로 시대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미국인들 가운데 10% 정도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통계를 보지 못했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불명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2:13에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악에게 가장 많이 노출된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악을 피해야 하고, 악을 이겨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22에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라고 합니다. 청년이 가지는 여러 가지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전도서 11:10에는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고 합니다. 청년들은 악한 시대에 헛된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신앙이 아니면 이기기 힘든 악한 일들이 항상 앞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16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껴야 하지만 더욱 청년들은 아껴야 합니다.

  지난 성지순례 중에 이스탄불에 갔을 때에 이스탄불의 대표적 회교 사원인 ‘블루 모스크’에 가 보았습니다. 남자들이 모스크에 들어갈 때에는 세 번 씻고 들어갑니다. 모스크 밖에는 세수하고 발을 씻는 수도가 길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정성도 없이 더럽게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몸을 무엇으로 드려야 합니까? 악의 병기입니까? 선의 도구입니까?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15에는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승리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젊음을 잘 가꾸어야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에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라고 합니다. 성령의 뜻대로 살면 육체의 다스리고 육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김형경의 소설 ‘성에’에 보면 “생물학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상대방과 사랑에 빠질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데는 십오 초 내지 이 분쯤 걸린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젊은이들은 만난지 일주일 만에 입맞춤을 하고, 한 달 만에 성관계를 가진다고 하네요.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자신을 잘 지키는 자가 아름다운 자입니다.

  잠언 25:4에는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라고 합니다. 어떻게 찌꺼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시편 119:9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고 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찌꺼기를 없이하고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어느 청년이 길을 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뛰어들어 건졌습니다. 건지고 보니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여보게 청년, 자네는 나라를 위해 대단히 위대한 일을 했네. 내가 누군지 아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그러면 소원을 하나 말해보게. 내가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자네에게 보답하고 싶네”.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습니다”. “아직도 젊은데 웬 국립묘지인가?” “사람들이 내가 건져준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저는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청년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청년에게 지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열흘 후면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정말 현명한 판단을 하는 청년들 그리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후보인가, 누가 나라를 사랑하는 후보인가, 누가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후보인가를 잘 살펴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후보가 당선되어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이 시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청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이 세상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이 주의 말씀을 잘 지키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음에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을 이끌어갈 수 있는 훌륭하고 힘 있는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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