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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우리의 가정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엡 5: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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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도 리모델링 [remodeling] 이 필요합니다.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리모델링으로 바꾸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리모델링이란 낡고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 대형건물 등을 현대감각에 맞게 최신 유행의 구조로 바꾸어 주는 개보수작업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레모델링이라는 말이 아주 넓게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즘 심리학에서도「셀프리모델링」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민규 교수는「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는 책에서「셀프리모델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셀프리모델링이란 건축의 리모델링과 흡사한 개념으로 현재 상태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을 때 타고난 외모나 주요 성격적 특성은 유지하면서 사소한 사고방식이나 행동패턴 등을 변화시킴으로써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개혁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가족 간에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 사업에 실패한 비즈니스맨, 공부가 안되는 학생 등 자신의 현재 상태에 불만족스런 사람은 누구나 셀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타고난 성격과 외모는 바꿀 수 없지만 사소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의 패턴을 1%만 바꾸어도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원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바꿀 수는 없습니다. 타고난 외모와 성격은 쉽게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사고방식이나 잘못된 행동의 패턴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많이가 아니라 1%반 바꾸어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조준점에서의 조준 각도를 1도만 바꿔도 탄착 지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조준점에서의 1도의 차이는 목표물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마찬가지로 생각과 행동을 1%만 바꿔도 인생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도 사고방식이나 행동의 패턴을 바꾸는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과 생활의 용품들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듯이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가정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최대의 가정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상담자가 자신의 책에서 자신을 찾아와 상담했던 사람들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각방을 쓴지 10년이나 되는 부부, 서로 지독한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는 부부, 바람난 부인과 못살겠다는 남편, 알코올 중독자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맞고 사는 아내, 아내의 쇼핑 중독 때문에 카드 빚을 짊어진 대기업 간부, 아내의 끊임없는 잔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친 남편, 아내의 게으름과 비만증에 환멸을 느낀 의사, 남편의 완벽주의 때문에 해골같이 마른 직장 여성, 변태적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이 두려운 새 신부, 자신을 하녀 취급하는 남편에 절망한 중년부인, 
그 상담자는 자신의 책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의 모습이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 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알콜, 도박, 외도 등의 문제가 가정의 가장 큰 문지였는데 이제는 인터넷 채팅, 원조교제, 마약, 저출산 등 다양한 문제들이 가정을 위협하고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애틋한 글입니다.
아빠! 왜 이혼하려 하시나요? 아빠 이혼하시면, 어린 나는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나요?
엄마! 왜 이혼하려 하시나요? 엄마 이혼하시면 어린 나는 누구 품에서 자라야 하나요?
아빠! 엄마! 두분의 행복을 위해 이혼하려 하시나요? 우리 모두의 행복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도 아빠와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빨리 어른 되어 아빠, 엄마에게 효도해 드릴께요. 어린 이 마음에 상처를 남겨주지 마세요. 내 마음에 한번 남긴 상처, 너무나 오래갈 것만 같아요. 아빠! 엄마! 이혼하지 마세요.

깨어진 가정,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그들의 끝없는 외로움과 깊은 절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 땅에 깨어져 널브러진 가정의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OECD 국가중 이혼율 세계 1위. 1.08의 저출산, 성인남여의 51%가 결혼을 원치 않음. 결혼하여 자녀를 낳겠다는 사람 23%(97년 73.7%)
그래서 요즘 ‘킹삐모’ꡐ포에버 걸(forever girl)과 같은 모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ꡐ킹삐모‘란 킹카가 눈이 삘 때까지 기다리는 모임의 약자로 노처녀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런 통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가정이 해체되고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가 왜 망했는가? 힘이 없어서인가? 길이 없어서인가? 아닙니다.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고 국가도 무너집니다. 지금 사탄은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정을 공격하여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건축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셀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부부사이에는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리모델링을 잘 하면 새것 못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침대와 가구들도 리모델링만 잘 하면 새것처럼 예쁘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지간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타이어가 구멍이 날 수 도 있고, 살다보면 하수구가 막히고 창문이 깨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차를 버리고 집 전체를 부수어 버립니까? 그런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살다보면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부지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배우자를 버리고 가정을 깨어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요즘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 볼 것을 잘 손보고 고칠 것은 잘 고치면 되듯이 부부간에 문제도 수리할 것은 수리하고 고칠 것을 잘 고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생각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레모델링을 하면 지금보다도 더 멋지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2)이 하나(1) 돼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취지 아래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부부간의 리모델링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리모델링의 전제 조건

1.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라
그런데 리모델링을 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먼저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부부 리모델링도 마찬가입니다. 결혼과 가정과 부부에 대하여 잘 못 알고 있는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구체적인 리모델링에 앞서 서로의 다른점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요즘 신혼여행 중인 커플들을 보면 똑같은 색상의 옷을 쌍둥이처럼 입고 다닙니다.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신혼여행을 갈 때 양복입고 한복입고 다녔습니다. 제주도로 갔는데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같은 옷을 입고 동질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동일한 옷을 입고 다녀도 남자와 여자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화성에서 온 사람과 같고 여자는 금성에서 온 사람과 같습니다.

남자는 개, 여자는 고양이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는 기분 좋으면 꼬리를 내리고 흔들고 기분 나쁘면 꼬리를 빳빳이 세웁니다. 고양이는 기분 좋으면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내립니다. 개와 고양이가 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개와 고양처럼 천부적으로 인식구조와 표현구조가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육체의 생물학적 구조뿐 아니라 그 정신, 언어, 감정의 구조 역시 완전히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대화를 할 때에도 남자는 남자는 대화의 목적이 문제 해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적인 대화보다 공적인 대화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과 우정을 최고 가치로 여깁니다. 공적 대화보다 사적 대화를 중요시합니다. 비밀을 공유  함으로 친밀감을 높이려고 합니다.  대화를 통하여 공감과 위로를 얻고자 합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남자와 여자의 표정은 너무나 다릅니다. 이야기를 듣는 여자의 10초간의 표정변화와 남자의 표정변화를 보면 여자는 슬픔, 놀라움, 분노, 기쁨, 두려움, 원망등 감정 표현의 변화가 다양합니다. 그러나 남자는 감정 표현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쇼핑을 할 때도 남자는 들어가자 마자 직선 거리로 가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물건을 사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백화점의 모든 곳을 다 돌아다니며 마지막에 삽니다.
남자의 생각은 언제나 단순합니다. 그래서 그림에서처럼 ON-OFF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생각은 그림처럼 복잡합니다.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늘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배둘레힘이 장난이 아니면서도 항상 날씬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십시오. 배우자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성격은 하루 아침에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패턴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모델링입니다.

2. 부부란 어떤 관계인가를 알아야 한다.
리모델링에 앞서 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도대체 부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를 아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보면 바울은 부부의 관계를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3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교회의 관계란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예수를 믿는 신자들이 몸이 되는 관계를 말합니다. 얼마나 신비하고 특수한 관계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부의 관계를 몸과 머리의 관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과 머리의 관계를 너무나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헤어지고 쉽게 무너지고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부의 관계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믿는 우리가 몸이 되는 것처럼 신비한 관계입니다. 특수한 관계입니다. 결코 허약한 관계가 아닙니다. 누구도 뗄 수 없는 거룩한 관계입니다.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리모델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복종도 할 수 있고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 리모델링의 원리

첫 번째 원리: 복종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① 복종이란?
복종이라는 말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을 말한다. 33절을 보면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33절)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경외는 공포감에서 나온 두려움이 아니라 남편의 권위에 대한 인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경외하라는 말은 존중하라는 말이다.
존경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가치를 알아 주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들의 가장 큰 불만은 ‘다른 사람은 나를 알아 주는데 왜 당신만 나를 몰라 주느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나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는 것입니다.
가끔 남편에 대한 기도를 부탁하면서 “목사님 그 인간은 깨져야 돼요” 라고 말하시는 부인들이 계십니다. 여기서 그 인간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자기 남편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깨져야 할 그 인간은 누구일까요? 그 인간은 바로 부인입니다. 남편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오랜 시간 기도한 사람은 절대로 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남편의 영혼이 너무나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②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23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남녀의 평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그것은 가정의 질서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만이 아니라 부모의 관계에 있어서도 먼저 자녀의 복종을 언급합니다. 상전과 종의 관계에 있어서도 종의 복종을 먼저 언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질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운행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혼돈과 공허가 사라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질서가 없는 무법천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몸은 머리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만일 몸이 머리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면 그순간부터 병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질서를 위하여 교회의 질서를 위하여 사회의 질서를 위하여 복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3) 복종의 범위
24절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범사입니다. 모든 일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라고 해서 죄를 짓는 일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까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범사는 영혼의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모든 일을 말합니다.

4) 복종의 기초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과 주인,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피차 복종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내에게 있어서는 남편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요 남편에게는 아내에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종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존중하는 것은 나보다 많이 배웠고 나보다 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이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예를 가져서가 아닙니다. 또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남편에 대하여 복종하고 남편을 존경해야 하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나의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2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죽도록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 그 주님 때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2.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물론 에로스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에로스의 사랑만을 가지고는 평생을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뛰어넘는 아가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사랑은 만일의 사랑입니다.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랑은 때문에의 사랑입니다. 예쁘기 때문에, 매력이 있기 때문에, 건강하기 때문에, 물질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농도가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25절)
예수님이 교회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아무런 조건이 없이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주님은 우리가 의롭고 완전할 때가 아니라 죄인 되었을 때에 경건치 아니할 때에 연약할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남편 된 자들에게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8절에서는 좀더 현실적으로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자기 몸을 학대하고 자기 몸을 구박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까? 그런데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자기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혼과 동시에 한 몸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한 지붕 두 가족이 아닙니다. 한 지붕 한 가족 한 몸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곧 자기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아내를 저주하는 자는 곧 자신을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싸움을 하더라도 지혜롭게 싸워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부싸움을 해야 합니다.
너무 자주 싸우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 가지고도 툭하면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협정을 맺었습니다.
모든 말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칭찬을 고백하는 표현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상대방의 말보다 더 닭살 돋도록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얼마 후 또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ꡒ사랑하는 여보. 도대체 집안 꼴이 이게 뭐요? 꼭 돼지우리 같네.ꡓ
ꡒ무지하게 멋진 여보. 나는 뭐 하루 종일 집에서 놀기만 하는 줄 알아요?ꡓ
ꡒ미치고 환장하게 사랑하는 여보. 하지만 밖에서 피곤하고 지쳐서 집에 돌아오는 사람 생각도 해주어야 할 것 아니야.ꡓ
ꡒ까무러치게 예쁜 여보. 하지만 나도 오늘 많이 바빴다구요.ꡓ
ꡒ매력이 철철 넘쳐 홍수가 날 여보. 하지만 …….ꡓ
ꡒ내 몸이 터져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여보. 그래도 …….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칭찬을 고백하는 말로 표현하면서 부부싸움을 할려고 하니까 부부싸움이 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 영광스러운 교회

26절과 27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26절-27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교회를 죽도록 사랑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입니다.
주님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자기 앞에 세우시기 위하여 그토록 교회를 사랑하셨다면 동일하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가정을 세우시기 위하여 그토록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원하시는 가정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가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을까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온 가족이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난 이후에는 가정의 예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가정이 또 하나의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가정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온 가족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가정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공격하는 사단의 궤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정예배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는 가정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주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이혼율이 급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5일제 근무로 예배를 소홀히 하고 들과 산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소홀히 되면 아무리 여가를 즐기고 여행을 많이 해도 가정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정도 예배가 무너지면 영적으로 시들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의 신선함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영적으로 시들지 않으려면 신선한 가정을 유지할려면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실 웬만한 문제들은 가정 예배를 드릴 때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 남편은 존경을 아내는 사랑을 먹고 산다.
남자들은 존경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아내는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될 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학자들이 임상학적으로 얻은 결론 가운데 하나는 남편들의 외도 뒤에는 남편을 무시하고 깔보았던 아내들의 경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일은 남편에게 존경할만한 매력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아내에게 가장 비참한 일은 존경할 수 없는 남편에게 복종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아내 역시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미모의 얼굴을 가졌고 날씬한 몸매를 가졌고 똑똑하고 맞벌이를 잘 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애정은 아내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습니다. 애정이 있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합니다. 애정이 있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삶이 흥겹습니다. 얼굴 표정부터 다릅니다.

애정은 곧 관심입니다. 특히 아내들은 이런 관심을 무척이나 바랍니다.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워합니다. 조그만한 애정에도 감격해 합니다. 아내의 생일을 잘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격해 합니다. 장미꽃 한 송이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로 여자입니다.

□ 그렇다면 누가 먼저

오늘 우리는 부부의 리모델링의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성격과 기질은 바뀌지 않아도 성경의 원리를 따라 잘못된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1%만 바꾸어도 우리의 가정은 작은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누가 먼저 이 일을 시작하겠습니까? 
남편일까요? 아내일까요?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서로 먼저입니다. “내가 먼저”로 바꿔 읽어야 합니다. 당신이 먼저가 아니라 바로 내가 먼저입니다. 내가 먼저 남편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깨달은 내 자신이 먼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김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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