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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라 (롬 6: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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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되었고,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만들어주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하게 살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시대에 로마의 인구 1/3이 자유인이었고, 2/3는 종, 곧 노예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제도적 배경에서 인간은 누구인가의 노예로 살고 있음을 말씀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만일 우리가 어떤 권세에 대한 노예로 있다면 우리는 그 세력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에 대한 주인의 지배와 행사하는 권세는 막강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어떤 권세에 넘겨주거나 팔아버린다면 나는 그 권세의 노예가 됩니다. 노예로 있을 때는 노예 소유주의 권세의 특징은 전제적이고 독재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죄의 노예이든가 하나님의 노예이든가 둘 중에 하나임을 말씀했습니다.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와 사단의 노예이거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이거나 둘 중의 하나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세력은 전적으로 다르고 서로 철저하게 반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의 노예로서 인간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을 노예로 삼고 있는 죄는 강제적이고 지배적입니다. 죄의 노예인 인간의 삶은 비참합니다. 고통과 아픔입니다. 어둡습니다. 죽음과 함께 지옥으로의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없습니다.
  또한 죄의 노예인 인간의 삶은, 죄를 지배하고 사용하는 사단의 노예로서, 사단의 조정 속에 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기쁨이 없고 사이비적 기쁨인 쾌락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 파괴의 감각 없는 무의미성의 삶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얼마나 훌륭하며 종교적이든 간에 그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훌륭함과 도덕성은, 우리가 죄의 노예로 있는 한에는, 그 자체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으로 죄와 사단의 노예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와 사단의 지배아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절망적인 속에서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노예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큰 변화를 겪은 사람입니다.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노예가 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노예로 옮겨준 매개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노예들은 이 주인에게서 팔려 저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우리가 하나님의 종, 노예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 하나님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안에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된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1-5)

  우리는 이 진리의 교훈을 믿고 받아드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의 노예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노예, 하나님의 의의 노예, 또는 순종의 노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17-18)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종, 바로 하나님의 노예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의로 된 것이고 우리가 믿고 순종함으로 되어 진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의의 노예로, 은혜의 노예로 순종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죄의 노예는 죄의 강압 속에 지배되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의 노예는 사랑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사랑의 의무를 진 노예이고 순종하기를 자원하는 노예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노예는 사랑의 노예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예가 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노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의 노예 그리고 사랑과 순종의 노예가 되는 데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듭나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 안에 새로운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본성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큰 변화를 이룩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죄의 노예의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 습성이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를 주관하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만 죄의 끈질긴 손짓과 육체에 남아 있는 죄의 습성이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의 약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고통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2-24)

바울은 하나님의 노예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무엇임을 말씀했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 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5-20)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다고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기 전의 재능과 성향까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단의 노예로 있을 때에는 이런 재능과 성향이 악을 도모하는데 이용되고 사용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로 의의 노예요, 은혜의 노예요, 사랑과 순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재능과 성격 기질의 모든 성향들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인 것입니다.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적과 내통하고 있는 군인과 같습니다. 죄의 습성이 바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행할 권리가 없습니다. 죄를 짓는 일은 괘씸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노예이고 우리가 그의 소유이고 그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그를 섬겨야 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연약하기 때문이라든지, 시험의 강해서, 그 강력함 때문에 넘어질 수뿐이 없었다고 자주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보다도 내가 누구이며 어떠한 자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엘리자베드’ 라는 가정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불만을 가지고 루터의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그만 무서운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알고 루터는 그녀의 병실을 찾아 갔습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는 그녀 옆에 앉자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을 사단에게 넘겨주고 말았어요. 그리고 나쁜 일들을 수 없이 저질렀어요. 이 사실이 나를 가장 괴롭히는 문제에요. 나는 고의 적으로 나의 연약한 영혼들을 악마에게 주었던 것이에요. 이 죄인이 주님의 긍휼을 어떻게 바라겠어요?” 이에 루터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의 집에 가정부로 살면서 내 아기를 낯선 사람에게 값을 받고 넘겨주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내 아이를 팔아넘긴 그 행동이 합법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 아니지요! 나는 그럴 권리가 조금도 없어요!” 루터는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맞아요. 당신이 내 아이를 팔 권리가 없듯이, 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교활한 사단에게 넘겨줄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당신의 영혼을 만드셨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방황할 때에 그 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으므로 당신의 영혼은 이미 모든 능력과 자격을 갖추신 그 분의 것이랍니다. 당신은 당신의 것이 아닌 당신의 영혼을 당신의 것인 것처럼 포기하거나 팔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당신의 영혼을 사단에게 넘겨주어 버린다면 그 매매행위는 불법이며 전적으로 무효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상한 심령과 은밀한 죄를 고백하고 그 분의 용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의 소유로 돌아갈 것입니다.”
  엘리자베드는 그 말에 순종하고 그동안의 방탕의 삶을 회개하고 이후 내세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충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찌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1-13)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노예이며 전적으로 그분의 임의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데서 우리는 거룩한 성도로 거룩함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며 축복이고 자랑인 것입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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