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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의 밥상 (창 47: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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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때 우리는 어른을 만날 때 “진지 드셨습니까?” 라고 인사를 했고 친구나 아래 사람을 만나면 “밥 먹었니?”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밥이 큰 인사였습니다. 요즘도 어른들은 그렇게 인사를 합니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고 귀했던 것을 여러분들도 기억하시고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흔하고 비만으로 고생하는 분이 많습니다. 비만이신 분들은 먹을 것이 원수라고 하면서 살과의 전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먹는 것이 미움을 받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버리는 음식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번 우리 교회에서 밥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이렇게 큰 식당을 주셨는데 음식물을 버리지 않도록 모두 애를 써야겠습니다. 밥이 천대받는 세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매년 483만 톤인데 돈으로 환산하면 15조에 이른다고 합니다. 마구 버리는데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이 보기 싫고 얄미운 아이를 밥맛이야 하고 말하겠습니까? 먹을거리가 흔해지다 보니 이런 문제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먹을거리가 천시 받고 농업과 어업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농업과 어업을 보잘것없는 직업으로 여기고 그저 다른 일거리가 없는 사람, 힘없는 노인네나 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총회가 농어촌주일로 정한 이 주일에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우리 생명을 풍성하게 할 먹을거리, 그리고 농업과 어업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강조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어떤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고문 중에 가장 무서운 고문이 굶기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 속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벼 한포기가 자라기 위해서 온 우주가 동원되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고 물과 흙이 있어야 하고 달빛도 별빛도 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토양 미생물이 필수적인지 모릅니다. 토양미생물이나 벌레가 없으면 농작물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역할도 필요합니다. 쌀 한 톨에는 심고 거두어들인 농부의 땀방울이 배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농부를 위한 주변 환경과 자연이 있습니다. 이처럼 쌀 한 톨 안에 우주가 담겨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것을 통해서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게 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 매일 두 세 번 드시는 그 음식 속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 삶의 지혜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먹을거리를 잃은 자는 자유를 잃습니다. 분명합니다. 창세기 때의 일이 오늘 본문에 적혀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집트와 이스라엘의 근동지방에 몇 년간의 가뭄으로 인하여 기근이 심합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양식은 다 떨어졌습니다. 애집트 백성들은 정부가 비축해 놓은 정부 구호미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애집트 총리 요셉은 백성들에게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14절) 라고 말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저축해 놓은 돈으로 양식을 사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웬만큼 돈을 저축합니다만 어느 순간 우리가 모든 돈을 다 들여서도 쌀 한말도 사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모두 식량을 사느라고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가진 모든 돈으로도 식량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이 또 곡식을 달라고 하니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계속해서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축과 식량을 서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큰 소리 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넉넉해서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생각해야 합니다. 돈 가치가 계속해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며 집과 땅의 가치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종이 쪼가리도 안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뭄이 끝나지 않고 양식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파종할 씨앗까지 다 먹어버렸습니다. 또다시 찾아가서 이제 남은 것은 자기들의 몸밖에 없으니 농토와 자기들의 몸을 사고 그 대신 농사지을 종자를 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의 논밭과 사람까지 다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땅이 왕의 소유가 되고 모든 백성이 종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백성이란 말 중에는 자유와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있으며 모든 땅이 나라 땅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고대 역사만이 아니라 오늘 날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농업의 위기, 식량의 위기 다음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상품화입니다. 목숨을 볼모로 하고 있습니다. 황금주의, 물질주의가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를 무너뜨리며 굴복시키려고 하는 가장 큰 우상이 물질주의입니다. 여러분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물질을 너무 우상으로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많은 주민이 굶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문제는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한데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잘 봐야 합니다. 농업 강대국이 잉여 농산물을 제3세계에 아주 싸게 팔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국산 농산물이나 다른 곡식들이 우리에게 아주 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물가도 별로 오르지 않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 뒤에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 정확히 봐야 합니다. 싸게 팔고 있는 농업 강대국과 초대형 다국적 농업기업들이 있습니다. 세계의 물동량을 좌지우지하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농산물들을 싸게 팔고 가져오는 결과는 제3세계의 농업의 파괴입니다. 농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강대국이 농산물을 싸게 팔기 때문에 오히려 굶주리며 구조적 가난에 시달리는 인구가 늘어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는 14억 내지 15억의 농업인구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트랙터를 사용하고 있는 농민은 약2퍼센트에 해당하는 삼 천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 외 98퍼센트 이상이 아직 소나 가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트랙터와 항공방재 등은 시장논리와 자본논리이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먹는 것은 이것만으로는 계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봐야 합니다. 무언가 세상 사람과 다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르고 식생활 관습이 다르고 문화와 전통의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다 다릅니다. 생산도 다르고 섭취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제3세계의 농업환경이 붕괴되고 난 후에 불 보듯 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식량이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무기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건 아주 확실합니다. 목줄을 틀어쥐면 꼼짝 못합니다.

IMF때 우리나라의 기업이 아주 헐값으로 팔린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이 발간한 쌀 백서에 따르면 곡물생산 1%만 줄어도 가격이 47% 폭등할 정도로 수요공급에 민감한 품목이라고 합니다. 식량 자급률이 26.9%, 쌀을 빼면 5% 미만인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 때 쌀농사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 식량시장은 미국과 중국 손에 놀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실제로 1972년에는 세계 식량파동으로 세계 곡물 생산량이 3% 감소했는데 쌀과 밀의 국제 가격은 각각 360%와 212% 올랐습니다. 세계 4대 곡물 가격이 평균 100%이상 급등했습니다. 선박회사의 말을 들어보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흉년이 들면 전 세계 선박들의 흐름이 전부 그 쪽에 집중이 됩니다. 그러면 선박 운임료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모릅니다.

1980년 우리나라가 기상이변인 냉해로 쌀이 부족하자 미국 쌀을 세배의 가격을 주기로 하고 그 해 뿐만 아니라 향후 5년간에 걸쳐 계속 수입하기로 계약했는데 재고로 썩어 들어가는 쌀이 그 때 들어온 것입니다. 그 여파로 재고량이 89년까지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농업 전문가의 말입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은 엘리야 시대에만 역사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날에도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농업에 있어서 바알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이다. 이것은 농민들에게 편리와 다수확을 약속하였다. 모든 농민이 그 길로 걸어갔다. 기독교 농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겼다. 공업중심인 문화생산력 중심의 문화는 현대판 바알 신이다.’ 다소 지나친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리가 있습니다. 효율과 경제적 문제만 생각하는 물질주의는 나락 한 알과 우리의 먹을 것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건강한 삶과 사람들의 생명을 외면합니다. 나락 한 알, 고추 하나, 오이 하나를 돈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돈으로 계산합니다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주의는 인류가 만든 가장 맹독성 성분의 독약이 들어간 제초제와 온갖 농약을 거리낌 없이 사용합니다. 많이 생산만 하면 많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물질주의입니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제초제와 병충해에 내성이 강한 농작물을 키웁니다. 농약을 많이 뿌리고 그 농약에 강한 농산물을 자꾸 연구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다 먹고 우리 속에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간편한 것, 빠른 것, 맛있는 것, 부드러운 것, 달콤한 것, 보기에 아름다운 먹거리의 대부분의 음식에는 방부제가 들어있고 인공감미료, 발색제, 탈색체, 인공색소, 살균제등 400 여 가지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을 찾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질병들이 다 여기서 연유하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병이 왜 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과 생물은 먹어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생명의 양식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만나에 대해서 하루 분량 이상의 만나를 남겨두면 썩으므로 하루 이상을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공급하심을 알게 하는 지혜,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양식의 절대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식은 무기도 힘도 될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 양식으로 무기로 삼고 힘을 삼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는 응분의 대가가 돌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이윤은 남길 수 있습니다만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에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들은 먹을 것을 미리 모아두지 않으며 하늘 아버지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먹이십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나님은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가지고 무기도 만들지 말고 그것을 무슨 힘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에 대한 우리 주님의 가르치심은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라는 기도처럼 우리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밥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염된 먹을거리, 그릇된 음식 문화입니다. 그저 맛있는 것을 찾고 그저 많이 먹고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밥상은 몸을 망치고 우리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가정에서 병이 한 번 들어 보십시오. 경험해본 사람들은 압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건강만 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밥상은 자연을 무너뜨리고 이웃을 굶주리게 하고 이웃으로 하여금 신음하도록 만듭니다.

죽음의 밥상을 이기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의 밥상입니다. 생명의 밥상은 살리고 회복시킵니다. 생명의 밥상은 농부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부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생명의 밥상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농사를 했는가? 누가 어떤 가치관으로 음식을 만들었는가? 음식 속에 담긴 의미와 생명을 새기며 먹는가? 누가 어떻게 농사와 먹는 것을 연결해서 참다운 이웃으로 연결하는가?’

이 모두를 함께 어울러서 하나가 되게 한 것이 바로 생명의 밥상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의 밥상을 통하여 참된 의미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고 우리 생명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먹을 때 이것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육의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또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육의 생명을 공급해 주시고 영의 생명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숟가락 젓가락으로 음식을 뜰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눈을 뜰 때마다 우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김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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