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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신앙의 신비 (엡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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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가 완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 하는 씨앗도 땅속에 묻혀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푸르른 잎사귀도 낼 수 있고 달콤한 열매도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그 성장과정이 없으면 한 생명체의 완전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3월경이 되면 꽃샘추위라 하여 유난히 강한 바람이 한번씩 붑니다. 그때에 어린 나무 가지들도 애처로울 정도로 마구 흔들립니다. 그런데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 강한 바람은 나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겨우내 활동을 하지 못한 나무줄기를 통하여 새싹부분까지 원활히 영양이 공급되도록 하는 운동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에 이르는 필수적인 성장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어디 식물들 만이겠습니까? 텔레비전을 보니까 새들이 날개를 활짝 펴기까지의 과정도 그렇습니다. 껍질도 채 깨치기 전에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되기도 하고, 무지막지한 들짐승들의 발아래 무참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얼마동안 껍질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오면서 바로 날개 짓을 마음껏 하며 날아 오르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합니다. 숱한 상처를 남기는 날개 짓의 훈련과정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자기 의지대로 하늘을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류의 동물들도 성장의 과정을 거쳐서 성숙에 이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그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육 척 장군이 있을 수 있으며 나오면서 박사학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평균 몸무게 3.3kg, 신장은 남자 51cm 정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미숙아로 태어나서 부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아이들도 있긴 있습니다만 그러나 건강하고 균형적으로 성장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의 철칙이 있습니다. 생명은 생기면서부터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태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태중에 생명이 생기면 그때부터 태아는 어머니로부터 전달되는 것, 혹은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모든 것을 교육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태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나온 연구결과에 의하면 임신 중에 산모가 흡연을 하면 아이가 태어나서 8살까지 성장과정에 과체중이나 비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조금의 술을 마셔도 아이의 지능지수를 떨어뜨린답니다.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자,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그 이후로도 성장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유아기,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과정이 문제입니다. 균형적인 성장을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몸과 정신이 함께 균형을 이루며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은 자라는데 정신이 함께 자라나지 못하면 문제입니다. 반면에 정신은 정상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는데 몸이 자라주지 못해도 큰 문제입니다.

생명은 자라야하고 생명은 성장해야 정상입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더구나 한 생명이 정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니 반드시 이런 성장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보다 더 중요한 성장 하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영적 성장입니다. 육적인 성장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신적 성장이요, 영적인 동물인 인간이라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영혼이 강건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신앙인답게 살아가느냐는 표증인 영적 성장이 있어야 하겠고 이것이 인생 최고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성숙한 영적 어른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영적 어린아이를 벗어나지 못한 걸음마 하는 영적 어린아이입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그 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자라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주어지면 어떤 유혹도 쉽게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유혹이라는 것이 언제나 본능적인 것에 머무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먹을 것, 순간을 즐겁게 하는 것들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에 유혹되고 장난감에 흔들려서 아이들이 납치되거나 유괴 되기고 했습니다. 요즘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하도 교육을 잘 시켜나서 웬만해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가지를 않습니다만 어려운 시절에는 아이들이 철저하게 본능적으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먹을 것, 즐길 것에 만족했습니다. 언제든지 그런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사탕 하나만큼의 가치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과 잘못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병든 것입니다.<성장장애>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영적 성장 장애>라는 중증에 걸린 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 미숙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생물이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성장해야 옳습니다. 몸도 정신도 자라야 하고, 나아가 영적으로 성숙해야만 합니다. 이 영적 성장이란 말은 곧 믿음의 성숙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소망은<성장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거저 세월이 흐르는 대로 시간이 지나는 대로 나이만 먹어가는 신앙이 아니라 그 내용도, 정신도 함께 성장해 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어진 믿음입니까? 또한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믿음입니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로 얻어진 믿음이요, 그 피의 흔적으로 세워진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새 생명이 주어졌다면 자라가고 성장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의 신앙이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사명으로 깨달아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필수적 사명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이런 사명을 자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이 거꾸로 어린아이로 내려가지 말고 어른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오세창 장로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늘 생각납니다. 천국에 제일 안전하게 먼저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은 뜨거운 신앙을 가진 초 신자이고, 그 다음이 서리집사, 그 다음이 안수집사, 권사요, 그리고 장로와 목사가 제일 천국 가기 힘들 거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시간이 가고 직분은 중해지는데 신앙은 성장해 가지 않고 오히려 쇠퇴하여 간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거든요. 늘 언제나 초 신자 같은 자세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열심을 내면 신앙이 자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야지드]라는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내가 젊었을 때 나는 혁명가였고, 하나님께 드린 나의 기도는 ‘주여, 저에게 세상을 뒤엎을 힘을 주소서.’였네. 그러나 내가 중년에 이르러 내 인생의 절반이 덧없이 흘렀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기도의 내용을 바꾸었네.‘주여, 저에게 저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그러나 나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위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을 보았네. 이제 내가 늙고 여생을 헤아리게 되면서 나는 나의 우둔함을 눈치 채게 되었다네. 지금의 내 기도는 이렇게 되었네.‘주여, 저에게 자신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내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했더라면 내 인생을 허송하지 않았을 거야.”

[바야지드]의 고백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먼저 나 한 사람이 변화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내가 성숙하고 내가 성장할 때 세상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로 성경에서 사도 바울을 기억합니다. 원래 사울이라 불리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이름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 한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마침내 세상이 변화 됩니다. 사도 바울이 직접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된 사람도 많지만 그가 써놓은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 2천년 동안 구원 받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변화 받은 한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한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직접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이 말씀도 역시 신앙적으로 성숙을 이룬 바울이 우리에게 성장하는 신앙의 신비로움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중에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돌면서 다른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다고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만약에 그런 신앙에 빠져 있다면 유감스럽지만 얼른 벗어나지 않고는 소망이 없습니다. 먼저 나 자신이 변할 때 가정도 변하고, 이웃도 변하고, 마침내 세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입니다. 내가 변해야 교회도 변하고, 내가 성숙하면 교회도 성숙한 교회가 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인생을 낳고, 성장 형 태도는 성장 형 인품을 낳습니다. 성장하는 자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고, 퇴보하는 자는 패배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시인이 승자와 패자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승자는 구름 위의 태양을 보지만 /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본다. 승자는 눈은 밟아 길을 만들지만 / 패자는 눈이 녹기만을 기다린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지만 /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다시 한 번 해보자"이지만 / 패자가 자주 쓰는 말은"해 봐야 별 수 없다"이다. 승자는 꼴찌를 해도 의미를 찾지만 / 패자는 일등을 했을 때만 의미를 느낀다. 승자는 달리는 도중에 이미 행복해 하지만 / 패자는 경주가 끝나봐야 행복이 결정된다. 승자는 모든 문제에서 해답을 보지만 / 패자는 모든 해결에서도 문제를 찾는다. 승자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지만 / 패자는 죽기 전에 이미 성장을 포기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정신이 건강하고, 믿음이 자라고, 영적으로 성장을 이루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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