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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하는 아버지 (창 27: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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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에 다녀온 성도들이 집에서 해야하는 숙제가 있는데 그것은 자녀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는 것이다. 토요일 늦게 집에 돌아와 축복 기도를 하는데 잠자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머리에 손을 대고 축복 기도를 해주면 아이들은 난데없는 아버지의 기도에 어리둥절하게 된다. 아버지의 축복 기도는 숙제를 수행하기 위한 축복 기도가 아니라 축복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 속에서 생활화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해주고 기도를 받는 이 이야기의 그림 속에는 축복하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이 그림 속에 나타난 아버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축복의 중심이 아버지라는 점이다. (창27:25)

축복하면 우리 민족도 굉장한 관심이 있다. 그래서 부귀 공명을 누리는 복을 눈에 띄는 곳마다 새겨놓았다. 밥 먹는 숟가락에도 福자가, 머리에 베고 자는 베개에도 福자가, 이부자리에도, 한복에도 福자를 새겨놓았다. 참으로 복받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복을 받는 복의 중심이 이방인들에게는 해와 달과 별이라고 생각한다. 북두칠성을 향해, 그리고 밤중에 떠오른 보름달을 향해, 더 나아가 큰나무, 큰바위, 하늘과 땅의 일부분인 피조물에게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복의 개념이다. 지금도 심산유곡에 가보면 바위 밑에서, 나무 밑에서 복을 달라고 빌고 빈 흔적들이 없는 곳이 없다. 유명, 무명의 산 할 것 없이 촛불이 녹아내린 오염된 자국과 산신령에게 바친 먹거리 자국들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다스리라고 준 피조물에게 피조물의 영광인 사람들이 엎드리고 굴복하는 이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실된 마음의 전형이다. 축복의 중심이 잘못되어 있다.

여기 이삭의 가정은 축복의 중심이 가정의 대표자인 아버지에게 있다.
창27: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축복을 하기 위해 아들이 사냥한 고기, 언제나 즐겨 먹는 별미를 먹고 내 마음껏 축복한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그때 이 축복을 받기 위해 아들 에서는 사냥하러 나간다. 창27:6을 보면 어머니 리브가도 일하기 시작한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리브가는 남편이 자녀에게 축복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찍이 뱃속에서부터 받았던 계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창25:23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아버지 이삭에게 야곱을 들여보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야곱도 축복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축복을 놓칠 수 없어 그 역시 축복을 향해 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변장하고 가죽 옷을 입고 형처럼 가장하여 시력이 어두운 이삭에게 나아가는 초윤리적인 행동을 한다. 야곱은 속이는 자가 되었다. 그래도 야곱은 복을 빼앗기기 싫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축복을 위해 뛰고 움직이는 것은 온 가족들인데 그 축복의 중심이 아버지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살아있다는 말이다. 축복은 아버지로부터 선포된다. 아버지의 축복을 놓치면 안된다는 온 가족들의 생각은 가정이 얼마나 아버지 중심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창27: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하였다.
기력이 쇠하고 시력이 쇠한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의 권위가 인정되고 있다. 아버지의 축복 선언에 그 복을 얻으려고 아버지에게 중심을 두는 이 모습은 오늘의 시대에서 너무도 희귀하고 특별한 모습이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 아버지 권위를 해체시켜버린 21세기 아버지는 내다버리려는 오늘의 가정과 자녀들, 그러나 축복의 중심은 아버지라는 것을 성서는 가르쳐준다.  그것이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둘째, 축복을 확신하는 아버지여야 한다는 점이다. (창27:25)

오늘 축복의 중심이 아버지라는 것을 안다면 아버지가 사는 길은 아버지가 마음껏 축복을 확신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창27:25에 기록된 말씀처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려는 이삭은 자신의 말에서 나오는 축복이 아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별미의 음식을 요구하며 그 음식을 먹고 내 마음껏 축복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확신이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줄 수 있는 축복은 모두 다 주겠다는 결심이다. 아버지가 축복의 확신을 가졌기에 별미를 가져오라는 요구는 정정당당하다. 이 축복은 싸구려가 아니다. 아버지가 살아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버지 됨의 자리를 버리고 있다. 아버지의 역할은 돈 벌어오는 사람, 죽도록 일하느라고 분주하고 바쁜 사람, 사업상 거래처 사람들과 술에 취해 오는 사람, 주일이면 피곤하다고 잠만 자는 사람,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느냐, 올라가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 여유가 있으면 골프채나 잡고 왔다갔다하는 사람, 이런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버지는 영적 제사장으로 자녀들을 축복하는 축복의 메신저인데 축복은 아버지가 먼저 확신하고 사는 자여야 한다. 아버지가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는 일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 진해에 있는 해군본부를 들렀었는데 장군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군목하기 어렵겠다고 하니까 장군 장로님들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진급 때, 큰일이 있을 때, 축복 기도를 받고 교회의 일의 대장은 목사님이라고 순종한다고 한다. 부모들은 내 계급이 무엇이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 앞에 자녀처럼 서야 한다. 그때 자녀에게 축복을 베푸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축복 기도가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정의 영적 제사장으로 세워지지 못하니까 축복도 못하고 축복 기도를 확신하지 않는다. 축복의 말조차 내뱉지 못한다. 오히려 무관심과 냉대와 싸늘한 언어로 축복대신 원망으로 자녀들을 방치한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불신앙의 연못으로 빠뜨리고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옷을 사주었고 명품을 사서 가지고 다니게 했고 밥을 굶기지 않았고 해달라는 것 다 해주었는데 왜 아버지인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치지만 큰소리치는 아버지, 자식을 나무라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국 축복의 방해자일 뿐이다. 죽도록 일하지만 그는 길을 잃은 아버지이다. 내가 아버지라는 것은 신앙적인 삶에서 아버지의 길을 찾는다. 내가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축복이 됨을 확신해야 된다.

셋째, 성취하는 하나님의 통로가 아버지라는 점이다. (창27:29)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아브라함을 부름으로써 진행되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이삭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그 이삭이 다시 야곱을 축복하여 열 두 지파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히브리 민족을 창대케 한 것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구속 사역에 쓰여지는 가정이 잘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또한 언약을 받은 가정, 그 가정의 대표자인 아버지는 가정이 성별된 가정, 창대케 되는 가정, 복의 통로가 되는 가정으로 자라나게 이끌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을 이어가는 자다. 그 언약을 자녀에게 이어주고 그 언약은 자자손손 연결된다. 구원을 이루는 날까지 부름받은 가정은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중요하다. 아버지는 대리자다. 즉 통로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을 이행하는 하나님의 통로이다.
창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렇다. 이 예언대로 야곱은 그 시대 속에서 만민에게 섬김을 받았다. 그러나 영적으로 야곱의 후손을 통해, 유다의 지파를 통해, 다윗을 가문을 통해 마침내 왕되신 예수가 오셨다. 모든 열국이 야곱의 후손으로 온 구세주 앞에 엎드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축복을 위해 가정을 사용하고 아버지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자녀들에게 신앙이 있다면 아버지에게 축복을 부여받고 그 축복을 향해 집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땅한 일이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가정 살리기, 자녀 살리기가 여기에 있다.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이루시고 섭리하신다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또 신앙이 있는 이상 그 어떤 가정 회복 운동이 대신할 수 없는 지름길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자, 축복의 통로이기에 아버지가 복을 빌어 주신다면 우리는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어 통로를 가로막는 방해자가 되지 말자. 이제 아버지들은 가정의 축복에 대한 열쇠를 놓치지 말자. 성경이 보여주는 이삭 가정의 그림을 그리자.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자. 그리고 지난 날 격식과 체면으로 권위를 세우려는 것을 버려야 한다. 마음을 열고 자녀들과 아내에게 다가가라. 자신을 개방하여 가족 구성원들과 친밀하게 되기 원하는 아버지임을 알려 주어야 한다.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 맞추라"고 이삭이 말하듯(창27:26) 아들의 향취를 맡는 이삭이 되었듯이 아들의 냄새를 맡는 아버지, 아내의 아름다운 향취를 맡는 아버지, 가슴에 가족을 품는 축복의 권위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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