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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감사를 우리도 드리려면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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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가운데 3절에 “감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에 나오는 감사라는 말은 지금 바울의 처지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말입니다.
또 어울리지도 않는 말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성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무엇 때문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일까요?

신약성경에는 바울이 기록한 편지성경이 모두 열세 권 있습니다.
그런데 두서너 권을 빼놓고는 모두 시작부분에 감사드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도 습관적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썼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1장 3절의 감사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감사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구나 빌립보서에 나오는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감사는 보통 감사가 아닙니다.
대단히 강렬한 감사입니다.
진심과 열성이 깃들어 있는 감사입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서신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모두 496번 나오는데 대부분 그냥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릴 때만 “나의 하나님” 또는 “내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살펴보니까 바울 서신에는 이 말이 세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로마서에서 한 번, 빌레몬서에서 한 번, 그리고 오늘 본문, 빌립보서에서 한 번입니다.
바울은 무슨 이유로 지금 이렇게 특별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을까요?

빌립보교인들 때문입니다.
빌립보교인들이 변함없이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이차 전도여행 때 제일 먼저 세운 교회입니다.
이차 전도 여행을 떠난 바울은 아시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바울은 밤에 환상을 봅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청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아,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구나!’ 하고서 마게도냐로 향합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이것이 기원 53년 전후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바울이 삼차 전도여행을 하고 체포당해 로마 감옥에 갇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까지, 빌립보교인들은 변함없이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5절,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수동적 믿음, 소극적 믿음이 아니라 능동적 믿음, 적극적 믿음의 주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위한 일”은 구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위해서 빌립보교인들이 물품을 마련해서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의 이와 같은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감사는 어두침침한 옥중생활을 밝게 만드는 등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감사를 우리도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전도해야 합니다.
대단히 간단하고도 기본적인 일이며 동시에 중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열심히 전도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전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전도에 대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13절을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먼저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회당을 거점으로 해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문 밖 강가에 나갔습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다른 곳에서 빌립보 성에 장사하러 온 여자들이 안식일에 강가에 모여 한 주일 동안 겪은 일들, 신세타령, 두고 온 집이 그립다는 이야기, 가족들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형편에 맞추어 말씀드리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쉬는 날에 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을 찾아가서 전도한 것입니다.
전도하는 중에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가 고발을 당해 맞고 갇히는 일도 겪었습니다.
그곳의 관리들이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뒤늦게 알고 ‘우리는 당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부탁하니,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 주십시오.’ 요청을 해서 쫓기듯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힘든 가운데에서도 힘써 전도를 했기 때문에 빌립보에 교인들이 생겼고, 그 교인들의 믿음이 자랐고, 바울은 지금 그 소식을 들으며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전도를 하지 않았으면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그저 답답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빌립보교인들 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도한 여러 곳의 성도들이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에베소서 1장 15절과 16절을 보세요.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지 아니하고

바울은 ‘하나님,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깊고 성도를 향한 사랑이 넘치는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런 감사를 드렸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 때문에도 이와 같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과  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은 ‘하나님, 데살로니가교인들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큰 것을 감사합니다.’ 늘 이런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신앙을 지도한 사람, 또 동역자의 아름다운 믿음 때문에도 하나님께 이와 같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3절에서 5절 앞부분까지의 말씀입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빌레몬서 1장 4절과 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여러분, 전도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바울과 같이 이와 같은 감사를 풍성하게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례를 서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주례를 많이 서면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 이름 지어주는 기쁨, 돌 감사 예배 인도하는 기쁨, 유아세례 주는 기쁨, 이런 기쁨도 많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작년에 통계청에서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 25일에 발표되었는데 우리나라가 늙은 나라가 되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남자의 숫자보다 여자의 숫자가 많아졌다, 새로운 사실들이 여러 가지 밝혀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염려스럽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지요?
기독교인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에도 같은 조사를 했는데 그 때 비해 기독교인의 숫자가 십여만 명 줄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천주교 신자는 놀랍게 늘어났습니다.  불교 신자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동안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었습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통계숫자로 발표된 것을 보니까 충격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이 인구주택총조사는 매우 권위 있고 정확도가 비교적 높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인구가 천만이 넘습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교회 자체에서 만든 통계입니다.
신빙성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신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미스러운 일에 교인들이 많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흐름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대외적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호도가 낮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어 주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했던 성령 역사의 흐름이 한반도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를 하나 더 덧붙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유는 전도를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전도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발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기가 죽었습니까? 염려가 되었습니까? 위축이 되었습니까?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셨습니까?
‘앞으로 10년 뒤에 이런 조사를 하면 그 때는 기독교인 숫자가 더 줄어든 것으로 발표될 거야!’ 미리 걱정을 하셨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패배주의라고 합니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면 계속해서 패배합니다.
습관적 패배자가 됩니다.

‘전도 열심히 해야 하겠다!’ 이렇게 다짐하며 분발해야합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년이 한국교회 역사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1907년의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그런 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도록 회개하고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구해야 하겠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발표를 보고 투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목양교회가 앞장서서 이런 흐름을 극복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와 같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함께 기도하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전도에 힘써 바울의 이 아름다운 감사를 함께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나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7절과 8절을 봅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그의 마음속에서 빌립보교인들이 한 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울은 앉으나 서나 빌립보교인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사랑한 것 같이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은 예수님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감사하면 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말하는데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번 주간 수요일에 5․31 지방선거를 하게 됩니다.
선거에 대해 ‘너무 요란스럽다.’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지고 다른데 사용했으면 좋겠다.’ ‘찍을만한 인물이 없다.’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어서 이와 같이  투표할 수 있는 것을,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119 새 생명 큰 잔치를 하고 있는데 선거는 민주주의의 큰 잔치입니다.
어느 새터민, 탈북자는 남한에 와서 살면서 그저 ‘아, 남한에 왔나보다,’ ‘아, 너무 복잡하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투표를 한 번 하고서는 ‘아, 내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왔구나!’ 실감 있게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선거는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입후보하고, 흑색 투표함, 백색 투표함 둘을 갖다 놓고 찬성은 백색, 반대는 흑색에 넣는다고 합니다.
선거하는 날 오전이면 투표와 개표가 모두 끝나는데 언제나 100% 투표에 100% 찬성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거를 다 주일에 한다고 합니다.
하지 않는 것만 못한 선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십여 년 전까지는 지방선거 같은 것, 없었습니다.
대통령도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뽑았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지금 이 큰 잔치,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권하지 마세요.
성도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기권하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일의 반대가 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한 사람이 여럿 번 투표하게 되어 있으니까 내가 기권하면 여섯 표가 죽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번 주간에 기도원에 들어가 있는데 투표일에는 나와서 투표하고 다시 들어가려고 합니다.

선거를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면 관심이 생깁니다.
어느 후보에게 찍을까, 꼼꼼하게 살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전도대상자 때문에 감사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한 관심도 커집니다.

이십여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습니다.
성도들이 꽤 많이 모이는 교회인데 담임목사님이 친히 집회 전 찬양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담임목사님이 그 주간에 어디 다녀오시느라고 교회를 비우셨던 것 같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면서 ‘여러분은 제가 보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여러분만 생각하다가 돌아와서 여러분을 만나니까 반가워서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찬양을 인도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찬양에는 왜 이렇게 반가운 느낌이 없습니까?’ 하시더군요.
교인들의 찬양이 금방 달라졌습니다.

그 교회에서 예전에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친구 하나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식사도 같이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안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회 끝 무렵에 그 목사님에게 ‘목사님, 이 교회에 나오는 아무개 집사가 전에 저와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이입니다. 잘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아, 그렇습니까? 그 집사님, 참 좋은 분인데 집에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어서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사정을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 이 목사님이 성도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여러분, 전도대상자, 태신자(胎信者)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자기가 전도해서 지금 교회 나오고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보살피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선 ‘내가 전도한 그 사람, 지금 교회 잘 나오고 있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을 사랑하듯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학생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속회 인도자와 속장님들, 속도원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선교회 지회장님들, 선교회원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성도 여러분을 한 사람, 한 사람, 더욱 사랑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드렸던 것과 같은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그들을 위해 더 아름다운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9절 중간 이후를 보세요.
빌립보교인들을 위해 바울이 감옥에서 드리는 감사인데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바라노라

전도대상자를, 내가 전도한 사람을, 내가 맡은 학생을, 속도원들을, 선교회원들을, 성도들을 사랑하여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는 데까지 이르기를 부탁드립니다.

셋째, 이와 같은 감사가 귀한 감사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다음 주일은 올해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원래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6월 마지막 주일이나 7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주일을 지킵니다.
저희 교회는 6월 마지막 주일이 창립감사주일이기 때문에 중복을 피해서 6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7월 마지막 주일에 맥추감사주일을 지켜 왔는데 좋은 일은 일찍 하는 것이 좋다는 뜻에서 6월 첫째 주일로 바꿨습니다.
저희 교회는 추수감사주일도 11월의 첫째 주일에 지키고 있는데 이 일도 퍽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의 절기를 맞이할 때 꼭 해야 하는 일이 감사의 제목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맥추감사주일을 앞둔 이 한 주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나라에, 특히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많은 감사한 일들을 찾고,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추수감사가 있고 맥추감사가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감사에 대해 설교할 때 예전 희랍 어느 철학자의 감사를 예화로 많이 인용합니다.
동물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지 않고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다른 때 태어나지 않고 소크라테스가 살아있을 때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감사는 상대적인 감사,  비교적인 감사, 조건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절대적인 감사, 무조건적인 감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405장은 이 절대적인 감사에 대한 찬양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성도들은 이 절대적인 감사를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감사에는 또 시작 감사가 있고, 중간감사가 있고, 완료 감사가 있습니다.
개업 감사, 출생 감사, 결혼 감사, 신년 감사는 시작 감사에 속합니다.
졸업감사, 장례 감사, 송년 감사, 이와 같은 것들은 완료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추감사는 성서적인 의미로는 첫 열매를 드리는 감사인데, 시기적으로는 한 해의 중간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감사가 다 귀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빌립보서 나오는 바울의 감사, 나 때문이 아니고, 내가 전도한 사람 때문에 드리는 감사는 아주 귀한 감사입니다.
차원이 높은 감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감사입니다.
우선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이 이 감사를 통해서 은혜와 교훈을 얻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감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순교를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어떻게 처형을 당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로마 성문 밖 서쪽 5Km 되는 곳, 아피아 가도(街道)에서 처형을 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많았는데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목이 세 번 튀었는데 튀었던 장소마다 샘이 솟았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처형당할 때 공개처형을 당했는지 비공개로 처형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장소가 길옆이었던 것을 보면 공개로 처형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끝까지 바울을 수행했던 누가, 디모데, 그리고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했는데 마가도 바울이 처형당할 때 함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성도들도 바울이 처형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왔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로마교인들의 믿음 때문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로마서 1장 8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그렇다면 바울은 순교하면서 두 가지를 감사했을 것 같습니다.
원래 바울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랐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고,  23절에서는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어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순교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누가, 디모데, 마가, 로마교인들을 보면서 이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가는데 나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세상에 남아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하면서 순교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감사입니다.

이 감사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전도한 사람들 때문에 감사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감사의 제목들이 아주 풍성해집니다.
119 새 생명 큰 잔치 가운데 맞이하는 올해 맥추감사절은 이와 같은 귀한 감사를 꼭 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칩니다.

성도 여러분, 전도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전도대상자를, 이미 전도한 사람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더욱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하여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드리는 이 보석과 같이 반짝이는 귀한 감사를 함께 드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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