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0.07.02 12:38

죄의 종과 의의 종 (롬 6: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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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진상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데서 그리스도인이 누릴 아름답고 영광스런 축복의 삶을 잃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진상을 깨닫고 확신하게 하기 위하여 ‘죄의 종’이란 말과 ‘의의 종’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죄의 종으로의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인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모두에 관한 보편적인 진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자기들이 죄의 주장에 따라 살아가고 죄에 끌려 다니는 죄의 노예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믿지 않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전혀 불신자이며 가장 위험한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의에 의하여 조정 받지 않습니다. 본문의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롬 6:20)는 말씀에서처럼 이런 사람은, 이렇게 표현하면 불쾌하게 생각할지라도, 분명히 그는 죄의 종이며, 하나님의 의가 가지는 지배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장하고 세우는 의는 자기 자신의 의이지, 결코 하나님의 의가 아닙니다. 그가 추구하는 도덕적 삶과 선함은 모두 자기 자신의 선함과 도덕적 삶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신의 의일 뿐입니다. 결국 그를 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이고 그 자신의 사상과 철학일 뿐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엄격히 따져보면, 그는 궁극적으로 죄의 지배를 받고 그 죄에 능력에 따라 조정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럼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의 종으로의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후의 인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그 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들을 어떻게 의롭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는 의입니다. 죄의 종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용서의 의이고, 은혜로 주신 의이고, 사랑으로 주신 의입니다.

  내가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죄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이미 내 안에서 주인으로 지배하기 시작 되었으며, 그 의의 권능과 힘이 이미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서 종이 되었느니라”고 함으로 그것이 단번에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임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이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간이고, 그렇게 됨으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됨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의의 본질은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과,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의 지배와 조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따라, 그 사랑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깨닫는 사람은 인간이 스스로 세우는 의가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더욱 목말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키기 위해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그 의를 갈망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간은 두 가지의 인간중 하나뿐입니다. 죄의 종으로의 인간이든가 의의 종으로의 인간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바울은 전에 죄의 종이었던 로마 교인들이 의의 종이 되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16:17-18)

  첫 번째는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이고,

두 번째는 ‘마음으로’이고, 세 번째는 ‘순종하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이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 교인들은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들었던 것입니다. 교훈의 본이라고 한 것은 이 복음은 사도들이 전해준 본질적 복음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전해져야 하고 들어야 할 절대적 교훈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나서야 두 번째 단계인 ‘마음으로’부터 믿음이 생깁니다. 이 단계는 들어서 아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단계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세 번째는 순종의 단계입니다. 곧 실천의 단계이고 의지적인 단계입니다. 즉 들어서 아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온 힘을 다해 전인격적으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복음의 부름에 대한 순종은 우리로 의의 종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난주의 드렸던 질문을 또 다시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삶 가운데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한번  더, 여러분에게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보자고 요청합니다.
  “나는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의의 종으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분명하고 확신 있게 나는 의의 종, 곧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죄의 종과 의의 종의 결과를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 더욱 분명하게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도록 하십니다.     
  죄의 종의 결과를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롬 6:20-21)
21절이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들밖에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 생활은 결국 죽음을 안겨 줍니다.”

  죄의 종으로의 삶은 우리에게 열매 없는 삶을 안겨줍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라는 말씀은 열매 없는 것과 같이 아무거도 얻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얻을 것이 없는 인생에 대해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 2:11)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전 3:9)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전 5:15-16)
  어떤 의미에서 죄의 삶은 쾌락이라는 즐거움의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의 행복은 인생의 유익과 가치를 안겨주는 참된 길이 아닙니다. 거두어들일 것 없는 허무한 삶일 뿐입니다. 

  또한 죄의 종으로의 삶은 수치와 사망의 삶입니다.
  바울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라고 하면서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그 마지막은 사망임이라”이러고 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입니까? 
  죄의 종의 삶은 어두움속의 삶이기에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움과 수치의 삶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멸망의 삶입니다. 사망은 생명이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멸망의 삶으로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죄의 종으로서가 아닌 의의 종으로서의 결과도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22절)
  의의 종의 삶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삶입니다. 이 열매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 열매는 우리로 더욱 거룩해지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모습을 실현하게 합니다. 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의 종으로의 삶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죽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삶입니다. 

  바울은 죄의 종으로의 사망과 의의 종으로의 영생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23절의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사망은 죄의 삯이고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쪽은 ‘삯’이고, 다른 한쪽은 ‘은사’입니다. 삯은 당연한 결과로 받는 것이고, 은사는 받을 수 없는 것을 선물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은 죄의 종으로 살아간 사람의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고, 영생은 예수 우리 주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구원의 선물인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의 삶과 의의 종으로의 삶이 다르듯, 그 열매와 인생의 끝도 다른 것입니다. 교회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의 종으로 구원받고 살아가도록 하는 복음을 전하는 신앙공동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구원의 선물을 나누며, 그 구원의 영원한 삶을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은 두 상전을 모시고 사는 노예와 같은 인생입니다. 죄의 노예로 사단을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으로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우리의 인생의 상전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구원받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파괴하고 망하게 하고 멸망시킵니다. 그것은 죄의 삯으로 주어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셔서 사랑의 노예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후일에 사단을 멸망시키실 때에 우리를 더욱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죄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아픔을 스스로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죄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까? 의의 종이 되십시오. 의의 종으로 구원 받은 분은 그 구원을 헛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 구원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 하나님의 의의 종과 십자가의 종이 되셔서, 예수님의 사랑의 종으로 살아가는 축복의 인생이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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