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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준이냐, 인간의 기준이냐? (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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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준이냐, 인간의 기준이냐?

우리가 ‘인간의 허물이나 잘못을 누구의 기준에서 보느냐’ 하는 이 기준을 모르면 선과 악의 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허물이나 잘못을 봐야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진리지식의 통치를 받는 것인고로 진리지식의 기준으로 허물이나 잘못을 보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은 기본구원(중생)을 얻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지만 성화구원, 건설구원 면으로 본다면 예수 믿는 사람 속에 천국의 지식 마음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 들어 있는고로 천국에 가는 것이고, 반면에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중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훈성적인 면으로 본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의 생각 사고 판단 소원 목적성이 지옥 쪽으로 향해져 있기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 목적 지식이 지옥 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정신 사상 면에서 자신이 어느 쪽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또한 어느 쪽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느 쪽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왔으니 하늘 쪽으로 생각을 하고 사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경(모세오경)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그런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는 예수님에게 눈이 세 개가 달렸다거나, 코가 세 개가 달렸다고 해서 죽인 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는 것마다 자기네들 양심에 거리끼는 말을 하고, 자기들 생각과 정 반대적 말을 한다고 해서 죽인 것입니다.  즉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소원 목적 이해 타산 가치 평가성이 예수님과 다른고로 그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세상에 살지만 생각 마음 소원 목적 다르고, 각자의 마음속의 지식이 다른고로 사람들마다 국가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선과 악의 기준이 제각기 다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기준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기가 비록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것을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지식과, 이방사람들의 지식이 같은가?  이방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과,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과는 같은가, 다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믿는 사람도 나그네입니다.  ‘그렇다면 나그네로서 이왕 세상에 사는 것 예수 믿어 하나님의 속마음을 닮고 가자’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소리가 싫다고 할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멘’ 할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을 닮겠노라고 해도 예수님이 보시는 지식의 기준을 가지고 살지 않는다거나, 모든 사물을 그렇게 대하고 보지를 않는다면 하나님으로 닮아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소원 목적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이 세상은 언젠가 불에 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날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이 불탈 것이고,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불탈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기준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받아 나온 존재이므로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들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지식 면에서, 지혜 면에서 하나님의 것, 옳은 것, 옳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선도 거룩도 진실도 모두 하나님의 옳은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실은 선악과를 먹고 나온 진실인지라 환경이나 시간에 따라 진실의 그 기준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듯이 영원히 갑니다.  하나님의 ‘내가 너를 말씀의 실력으로 온전케 만들어서 신령한 천국에 살게 해 주겠다’ 하는 우리에게 향한 이 약속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본다’고 했으니 사람을 선택을 해도 속 중심을 보고 선택을 하십니다.  이 말은 ‘안 믿는 사람의 속 중심을 본다’가 아니라 ‘믿는 사람의 속 중심을 본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속 중심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눈에 보이는 기준이니 인간들이 다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깎고 닦고 다듬으며 인격 면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으로 닮아가는 것을 보고 ‘영리하다, 똑똑하다’ 하시고, 이런 자를 하늘나라서도 존귀영광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이 땅 쪽으로 향했는지, 하늘 쪽으로 향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그런 속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지식에서 나온 마음입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지식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인간 자기 기준으로 보니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워서 따먹었고, 그 결과로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영육 간에 죽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그게 있는 것인데 믿지 않는 자는 물론이고, 믿는 자 중에도 이걸 부정하고 사는 자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는 지식이 있고, 죽는 또는 죽은 지식이 있습니다.  사는 기준이 있고, 죽은 기준이 있습니다.  살아나는 기준이 있고, 죽어가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는 지식, 영생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허물이 뭐고, 죄가 뭐라는 것을 성령님의 조명과 성경말씀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제사가 교회로 들어와 진리인양 둔갑한 것이 교회에서의 추도식인데 하나님 앞에 옳고 그른 지식의 기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공공연히 추도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사하는 것을 잘한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추도식이란 이름으로 그걸 하면 믿는 사람이라면 그걸 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옳은 것인데 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자기 엄마가 이웃집 아줌마의 옷을 입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 엄마가 아닌 것인가?  옷을 달리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라 속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지식의 기준을 가지고 ‘죄다, 아니다’ 하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지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는 지식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하나는 하늘의 지식이고, 하나는 땅의 지식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받고 타락된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귀신이나 마귀를 섬기기 때문에 제사하는 것을 옳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여러 군데에서 죽은 사람에게 제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 믿는 사람은 이런 면에서 믿지 않는 사람과 대립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믿는 사람끼리도 ‘제사건 추도식이건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제사는 안 되지만 추도식은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믿는 사람끼리도 대립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지식이 옳은 것이냐?  생명과를 먹으면 그 사람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은 지식의 삶이 저주받은 삶으로 보입니다.  그런 삶은 하나님 앞에 죄인의 삶인고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지식을 자신이 가져야 마음과 정신부터 바로 서게 됩니다.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윤리 도덕성을 어긴 것도 없고, 양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인고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저주 받고 타락된 죄인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하나님과 대적자가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자타에게 영원한 구원의 유익을 주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허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옳은 것, 하나님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줘야 합니다.  이런 삶속에는 나도 너도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연생명과 영의 생명으로 생명이 둘입니다.  육신생명이 끝나기 전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부지런히 만들어가야 합니다.  ‘내가 온전한즉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쓰여졌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으로 되려면 하나님의 사고방식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가능합니다.  그러함에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잘못하면, 깨달아가지 않거나 가만있거나 시간낭비를 하거나 자타를 주님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여러 가지 사건과 환경을 통해 얻어맞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악의 기준을 밝혀주고, 그 길을 가는 방편을 제시해줘서 그 길을 가면서 주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궁극교회 홈페이지:http://909.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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