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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난 주간 동안 인도네시아동안 지진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을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바섬에 이재민들과 가족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기를 원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해에도 쓰나미로 인해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지진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이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라고 하는 이 말씀은 지금까지 1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개월동안 1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1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우리는 두가지의 내용을 인정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를 원하지만, 한편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기를 원하는 욕망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이렇지 않은데,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왜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탄식을 마치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했던 바울의 탄식처럼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사람 바울조차도 자기 안에 두 사람이 싸우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부분들을 오늘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100%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좀 무리하다는 것이지요. 마치 그것은 우리가 결혼생활 하면서 우리는 결혼생활 20년 동안 한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결코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20년동안 한번도 부부가 싸우지도 않은 이야기는 그 가정에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혹은 일방통행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커피!, 커피 가져다가 대령하고, 신문!, 신문 갖다 대령하고, 그런 수준의 일방적인 통행이 아니면 아예 부부가 담을 쌓고 하는 것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싸우고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내가 상담공부를 해 보니까 이 부부가 싸우는게 건강한 증거랍니다. 이 싸우는 방법, 그 과정을 어떻게 지혜롭고, 원만하게 해결해 가느냐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죠. 넓은 의미에서 그런 기술을 사랑의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에릭 프롬은 우리에게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고 상담이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사는 동안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사실은 우리가 처음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가는데, 우리가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 총을 마음대로 소지하는 시대인데, 신랑도 총을 차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는데 말이 말을 안 듣는 거예요. 제멋대로 가자는 대로 안 가니까 이 남편되는 신랑이 하나, 지금 무슨 소린가? 했는데, 또 말이 말을 안 들으니까 둘 그러더래요. 참 희한하다 생각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또 말을 안 들으니까 셋 그러더니 말에게 총을 쏘더라는 거지요.

그리고나서 부인이 너무 충격을 받아 가지고, 남편에게 제대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남편하고 무슨 의견이 충돌되면 남편이 하나, 그런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거 셋까지 갔다가는 총 맞을 거 같아 가지고, 20년이 넘도록 부부가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20년 묵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상담자에게 가지고 와서 상담자에게 상담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외형적으로는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들어보니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 지금의 가정에서도 이런 일방적인 남자가 있는 가정이라고 한다면 건강한 가정이 아니고, 어디 가서 우리는 20년 동안 싸움 한 번 안 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슴을 쳐야 할 일이지요. 부부가 당연히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당연히 서로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다름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부부가 현대화된 부부가 될 수도 있고, 주먹다짐으로 가거나, 싸움의 끝이 맨날 갈라서거나 이혼하자는 얘기가 나간다면 그것은 전근대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지만, 여기서 바울조차도 자신에게 갈등과 좌절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육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이러한 죄의 욕망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 7장까지의 그 많은 내용은 두가지로 그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를 인정했을 때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학의 공식을 알아야 하듯이 1절의 말씀은 이러한 문제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공식과 같은 구원의 원리를 우리에게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제 이 공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그 문제의 공식을 대입하면 문제가 풀릴 줄로 믿습니다.

제가 수학을 잘 못하거든요. 수학을 잘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공식을 잘 못 외워요. 세계사나 국사나 이런 거는 천팔백 몇 년에, 천구백 몇 년에 해서 이런 것들은 에세이로 써라고 해도 100장을 쓸 만큼 그것은 잘 외워지거든요. 이상하게 수학공식은 안 외워져요. 또 수학공식을 잘 외우는 사람들은 국사나 세계사 이런 거는 그렇게 힘들어요. 안 외워져요. 그래서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 다 잘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교회 한 청년에 홈피에 들어가 봤더니 이런 글을 써놨어요.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다. 뭐가 공평한가 보니 요즘 월드컵 시즌 아닙니까? 지난해 올해 피파가 정한 세계 최고의 선수 브라질 선수 호나우딩요, 그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제는 2006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릴 선수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외모는 아니다 그거지요.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다라고 그 청년은 그렇게 써 놓았어요.

축구 기술은 세계 최고지만 외모는 또 아니올시다. 외모까지 베컴의 얼굴이면 어쩔 뻔 했어요. 우리가 살다보면 이 사람은 앞서 간다면 이런 연약함이 있다. 이 사람은 이런 부분에 강함이 있으면 이런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는 다 사람으로 하여금 주신 달란트 대로 살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자기의 약점만을 보고, 연약함만을 보고서 늘 자신을 향해서 절망하면서 나까짓거 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생각하면서 늘 감사와 찬송으로 사는 사람이 복된 줄로 믿습니다. 늘 감사와 찬송을 한다고 해서 그에게 연약함과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예요. 그도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아요.

저도 여러분이 평안의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계시지만, 또 저도 알고보면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제가 늘 그런 생각을 가지지요. 내가 키가 5㎝만 컸어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사람이 그래요. 그럼 난 못 만났지.

저는 신학대학을 다닐 때에는 그 중창단 하는 동료들을 보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저런 좋은 음성을 주지 않으셨을까? 바리톤으로 테너로 하는 걸 보면 너무 멋있는데, 신학을 할 때 그런 친구들이 정말 그런 친구들만 사랑하시는 것만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목회현장에 와 보니까 그런 육신적인 연약함도 있지만 더 귀한 은혜를 주셔서 여기까지 당신의 종으로 사용한 줄 믿습니다. 뭐가 부러울게 있어요? 키 큰 사람이 부럽지 않고요. 성악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제 친구가 공부를 쭉 해서 이제 고등학교 대학 동창인데, 박사학위를 받고, 다녀와서 대학에서 교무처장, 학생처장을 하는데, 언젠가 저를 만났는데 그래요. ‘나는 네가 너무 부럽다.’ ‘뭐가 부러워?’ ‘그런 큰 목회 자리 너무너무 부럽다.’ ‘난 네가 부러운데? 우리가 공부를 해서 그렇게 지도를 받고, 대학에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그렇게 존경을 받으면서 난 네가 부러운데?’ ‘아니야, 난 네가 부러워.’

대학에서도 그런 위치에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것은 욕심이겠지요. 우리가 한 길로만 가야하는 것, 욕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것 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달란트를 선용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문제해결을 위해서 원리를 가져야 하는데, 바로 이 수학의 공식처럼 1절의 말씀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문제는 우리의 육신의 노력과 의지와 수고만 가지고는 극복될 수 없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전쟁터에서 무장된 군사라고 생각을 해 보세요. 머리에는 투구를 썼고, 갑옷을 입었습니다. 방패도 들었고, 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화살의 공격을 받고,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방패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렵고, 이제는 점점 긴 창을 든 보병들이 나에게 다가온다고 할 때에 이제는 자기가 무장한 무장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고 곧 죽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서 뒤를 돌아다 보았을 때 요새가 발견되었습니다. 한 5분만 뛰어가면 요새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할 때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방패, 그것을 자랑하면서 끝까지 우길 것이 아니라 요새를 향해서 생명을 걸고 달려가야 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요새 안에 들어갔다면 그 수많은 화살도, 수많은 군사들의 공격에도 안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해서 다윗은 늘 고백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방패시라고 고백한 줄로 믿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늘 주관하고, 우리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원하지만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심지어는 하나님의 원수만 되는 일들만 골라서 하던 우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에 의해.... 6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7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8절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

육신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 죄와 사망의 법을 따라는 사람들에게 육신의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육신의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생각은 결국 사망이요, 그 생각은 결국 원수가 되는 일 밖에는 없다. 어떻게 너는 하는 일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만 골라서 하니? 골라서 하는 일은 아닌데, 우리가 하는 일의 주도세력이 결국 육신의 법이다 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주일 거룩한 아침,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 이런 분들, 여러분의 마음의 법이 우리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하나님의 법이 여러분의 중심을 주장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성도이면서, 집사이면서, 권사이면서도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한 이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하나님의 법이 주장하지 않고, 육신의 법이 그들을 주장하기 때문에 육신이 원하는 방법과 생각을 따라서 그들의 삶의 발걸음을 지금 옮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밖에 있지만, 그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성도인데, 지금 주일아침 11시 우리 성도들은 지금 3부 예배를 드리고 있을 터인데,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 되나? 백화점 쇼핑하면서도 집사가 여기 있어도 되나? 이러면서 마음의 한 켠에서는 죄책감과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겠지요? 일말의 신앙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에 세상을 위해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의 염려와 갈등은 가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이들이라면 혹 육신의 법이 그들을 주장한다 할지라도 마음 한켠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자녀됨의 삶을 살지 못한 죄책감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데, 문제는 그런 갈등과 연약함이 오래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어찌 허구헌날 1년 365일을 그렇게 갈등만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루 이틀이지. 52주를 그렇게 갈등하면서 주일을 성수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다시 5절로 돌아갑니다. 5절 후반에 보니,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6절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요... 9절 마지막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을 쫓는 자들은 영의 일을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감당하는 줄로 믿습니다.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한다. 왜 그럴까요? 그의 중심에 하나님의 법이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을 언제나 하나님의 법, 생명과 성령의 법이 여러분을 주장하도록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성령의 법이 여러분을 주장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하는데, 성령이 임하려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너희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줄 믿습니다. 회개할 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무슨 이야기입니까?

내가 아직 성령을 선물로 받고 있지 못하다면 내가 아직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아직 회개하지 못한 부분들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부분들이 회개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까? 인간관계에서 아직 회개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틀어져서 말하지 않고 상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인사는 하지만 마음을 내어놓지 않고 꽉 닫아놓고 있는 인간관계라고 한다면 그것 회개하지 않고는 결단코 성령에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질문제에 회개할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였습니까? 다른 사람의 물질을 사용하고도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러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생활을 한다면 결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윤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윤리적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그것이 회개되어지지 않았다면 성령은 우리에게 근처도 오지 않아요.

왜 내게 성령이 충만하지 않을까?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요. 병을 앓았을 때 먼저 의사가 알아서 병을 진단하지 않습니까? 문진이라고 그래서 대화로 먼저 진단을 하지요. 전문가적인 소견을 가진 의사에게는 문진만 해도 웬만한 병을 다 찾아냅니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성령의 사람으로, 내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예요. 뭔가 성령이 내게 임하는 거에 반하는 그러한 장애가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령이 내게 임하려면 말씀을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말씀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형식적으로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적어도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개 그 분이 성도야? 그 분이 집사님이야? 그 분이 권사님이야? 그렇다고 하는 말은 거기에는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따라가요. 존경심을 우리가 만드는 일은 세속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기에 세상이 우리를 존경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성령이 임합니까?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베드로가 자기를 감옥에 넣었던 관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합니까?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순종하는 이들은 겸손과 온유라고 하는 말과 이웃사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사나운 거 보셨습니까? 순종하는 사람이 교만한 거 보았습니까? 순종은 겸손의 모습이요, 온유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회개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안에 아직 회개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고, 성전을 나갈 때에는 회개하지 않은 어떤 것도 가지고 가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초점을 흐리지 마세요. 여러분의 눈을 보면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건지, 딴생각하는 건지 그 정도는 알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령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주의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 속에, 여러분들 심령 속에 계셔서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밀어내고, 생명의 법이, 성령의 법이 여러분들을 주장하도록 하셔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을 근심케 하며, 언제까지 성령을 근심케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원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주님의 선포가 이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든 심령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연약함을 가졌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시고, 이제는 성령의 법이,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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