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울의 마지막 고백① : 다 부었노라 (딤후 4:6-8)

  • 잡초 잡초
  • 618
  • 0

첨부 1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본문을 보면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의 제단에 다 부어드렸다는 것입니다. 원래 관제라는 말은 전제라고 나오는 구약 시대의 제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전제(奠祭 a drink offering)에 비유합니다.
  전제는 어린양이나 숫양 수송아지 또는 소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포도주 등을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민 15:5)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사분 일을 예비할 것이요
(민 15:6)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한 힌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비하고
(민 15:7)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삼분지 일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민 15:8) 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민 15:9)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삼에 기름 반 힌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민 15:10)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믿음의 삶 자체를 '산 제사'(롬12:1)로 여겼던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마지막 제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주를 만난 후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드렸던 그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자신의 늙고 병든 몸마저 순교의 제물로 부어드리고자 합니다.
  잔속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다 부어드리는 전제와 같이…
  젊었던 시절 끊는 피도 온전히 다 부어드렸고 이제는 그 생애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다 부어드리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부어드렸습니까?

  1.  눈물을 부어드렸습니다.
  바울은 눈물의 목회자였습니다. 성도들을 눈물로 훈계하고 눈물로 가르쳤습니다.
  행 20:18-19절에 보면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행 20:31절에서는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라고 했습니다.
  고후 2:4절에서도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 3:18절에서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눈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눈물을 가져야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우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 때문에 울었습니다. 고전 2:3절에 보면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처음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리고 딤전 1:15절에 보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하여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감격의 눈물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좀 유하여져서 작은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도 감격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셋째는 영혼에 대한 거룩한 부담으로 울어야 합니다.
  고후 11:29절을 보면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거룩한 부담이 있어야 합니다. 
 
2. 땀을 부어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을 어영부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고 땀 흘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 20:35절을 보면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전 4:11-13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그의 사역에 있어서 피 땀을 흘리는 수고를 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수고하지 않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고후 11:23절에서는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그리고 갈 4:19절에서는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 라고 했습니다.

  3. 피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는 주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고 원수들에게 끌려가 40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이나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끊는 피를 십자가의 제단에 부어드렸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순교의 제물이 되어 자신의 피를 주님의 제단에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은 주의 나라 위하여 순교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제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순교의 제물이 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다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를 피해나가려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그래서 그는 다시 로마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면 자신은 거꾸로 죽어야 한다면서 그렇게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요한 계시록을 적은 요한은 도미니안 황제 때에 박해를 받아 끓는 가마 속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아서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합니다.
  안드레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리이스에서 죽었는데 그리스 밧드라에서 안드레는 엑스형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교수형에 처했다고도 합니다.
  바돌로매는 알매니아에서 죽었는데 살가죽을 벗겨 참수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여 죽었습니다.
  다대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 탑에 던져져서 돌과 곤봉으로 맞았으나 다시 살아나 톱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시몬은 페르시아 만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다 죽었는데도 교회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1기 제자들이 모두 순교의 피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피가 부어드려진 곳에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드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처럼 눈물을 부어드립시다. 땀방울을 부어드립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순교의 제물로 부어드릴 수만 있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죽어서 순교는 못할지라도 살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주님의 제단에 부어드리는 전제의 삶을 삽시다.  (박재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