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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이미지 (신 3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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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것이 삶의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애굽 왕 앞에 섰을 때 질문을 받습니다. “나이가 얼마뇨?” “내 나이 일백 삼십입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삶을 험악하게 경험했다는 고백입니다. 경험을 힘들게 하면 삶을 힘들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계속 같은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슬픈 시를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젊은 어머니가 어린 딸을 향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제목은 “얘기 하나.”

귓바퀴 얇은
분홍 뺨의
딸아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삶이 얼마나 지독하게
외로운지
알려주는 일 뿐

삼십이 넘은 뒤에는
한밤에
늑골 사이 타고 흐르는
물소리 또렷이 들리고

봄 한 때의 꽃무더기
얼마나 쉽게 흐무너지는지
어미는 꽃속에서도
어찌나 소름 돋게 적막한지
알아냈을 뿐

삐뚤은 글씨로
봄꽃잎 예쁘다 쓰는
너를 보며
네 필시
외로운 어느 때
저절로 알아낼
어미 닮은 일.

야곱이 삶을 험악하게 본 것처럼 이 시를 쓴 분은 삶을 지독하게 외롭게 보았습니다. 삶을 보는 관점은 계속해서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줍니다. 일단 그 색깔의 안경이 눈에 씌어지면 아무도 벗지를 못해요.

1. 악한 경험을 끊으라

어떤 분이 말했어요.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된 것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술 먹고 집에 와서 가족을 때렸어요.” 다른 분도 말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저는 삶의 의욕을 잃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어요. “사업이 안 되는 데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 횡령을 했어요. 속이 상해서 술만 먹었어요.”

이런 경험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다 압니다. 인간의 본성은 그것을 감정적으로 훨씬 더 아프고 슬프게 느껴 신세 한탄을 합니다. 그것이 죄성으로 우리의 삶을 갉아 먹습니다. 평생을 통해 그런 경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럴 때 “왜 이런 일이 내게?” 그리고는 억울해서 계속 거기 매달린다면 그 경험을 반복하게 됩니다. 바보짓이지요.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눈앞에 놓인 상황에 어떻게 맞설지는 선택할 수 있어요. 비통함과 분노의 감정에 젖어 있다면 스스로 그러기로 선택한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삶의 이미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 식으로 삶을 보고 그런 삶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는 그러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삶이라고 믿게 됩니다.

과거의 상처를 털어버려야 하는 데 안 그럽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범한 실수를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용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갔다고 원망합니다. 기도에 응답을 안 해준다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불행에 머무는 방법입니다.

왜 사업이 계속 안 되나요? 왜 내게는 좋은 일이 안 일어나고 좋은 사람도 오지 않나요? 왜 병이 그치지 않고 삶은 그렇게 버겁기만 합니까? 내가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번, 또는 얼마간 나쁜 일을 만나면 계속 그 속에 빠져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요. 아니, 벗어나려고 하는 일이 오히려 더 거기 집착할 뿐입니다.

성경도 말합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여기서 생명과 복은 선택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나쁜 것들임이 역시 분명해집니다. 안 되는 사람은 스스로 안 되도록 선택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냥 겉으로만 보여지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영적입니다. 사업이 안 되고 힘든 일이 생기고 사는 게 힘들어지는 게 영적입니다. 또한 말씀을 믿고 도전하면 겉으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영적인 힘을 얻게 됩니다. 교회 나오고 믿음 생활하는 게 그냥 윤리적인 삶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영적 권능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현재가 불행하게 느껴지면 자신에게 말하세요. “이건 내가 선택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맛볼 삶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지를 연구해야겠다. 그대로 여기 머물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앞에 시의 내용처럼 지독하게 외롭지 않으려면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무엇인가 다른 선택을 해서 행동에 옮겨야만 하겠습니다.

2. 채널을 바꾸라

텔레비전을 볼 때 누구나 리모컨부터 찾습니다. 그리고는 재미있는 프로를 보기 위해 열심히 눌러댑니다. 리모컨만 가지면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로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나요? 괴로워하면서 그냥 보나요? 재빨리 채널을 바꿉니다. 우리 마음은 리모컨도 필요 없어요. 그냥 다른 생각을 하면 됩니다. 더 빨리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왜 절망하고 분노하는지를 몰라요. 나의 감정이 절망에게 끌려 다녀서야 되겠어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게 그렇게 금방 채널 바꾸듯 바꿔지지가 않아요. 밤새도록 떠나지 않고 괴롭힌답니다.” 정말로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요?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 겁니다.

생각은 금세 바꿀 수 있는데 이미 일어난 분노의 감정은 얼른 사라지지 않지요? 남편이 오래 전에 한 말, 행동을 절대 잊지 않아요. 누가 나를 속이고 사기 친 일을 너무도 뼈아프게 기억해요.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면 말합니다. “당신이 내 아픔을 알 수 있어?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 못해!” 그래서 언제까지나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어떻게 내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까? 물론 슬픔을 느끼거나 괴로워하지도 말라고는 할 수 없어요. 고통도 느끼지 않는 슈퍼맨이 되라고 할 수는 없어요. 문제는 리모컨이 고장 난 것처럼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과거의 나쁜 경험들은 계속 남아 유령처럼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내 삶의 이미지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그를 의지하라.” 이것이 리모컨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게 해 달라고요. 그러니까 내 돈보다도 내 가족보다도 내 체면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다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의지하세요. 예수는 믿는 나에게 수없이 말합니다. “너는 능력이 있다. 너는 나와 한 몸이다. 네게 세상을 이길 힘이 있다. 용서할 사랑도 있다. 생각 바꿀 힘도 있다. 감사하고 기뻐하라. 노래하며 일어나라. 38년 된 앉은뱅이처럼 상을 들고 일어나라. 왜 네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 불평 말라. 좋은 삶의 이미지를 선택하라.”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이 아파서 죽게 됩니다. 밤낮 기도하며 하나님께 고쳐 달라 기도합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어요. 울부짖으며 외쳤어요. 그러나 일곱째 날에 아들은 죽습니다. 이제 소식을 들으면 절망으로 다윗이 죽어버리지 않을까요? 신하들은 너무도 두려웠어요. 그러나 그 후 다윗의 행동에 모두가 놀랍니다.

일어나 목욕하고 새 옷을 입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새롭게 바뀝니다. 신하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었어요. 다윗의 대답입니다. “아들이 아플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느라 그랬다. 이제 죽었는데 그냥 그 상태에 머물러야 하겠느냐? 슬퍼하고 절망해야 하겠느냐? 아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일어나야하지 않겠느냐?” 다윗은 채널을 바꿉니다.

3. 축복을 선택하라

다윗은 생명과 복을 선택했어요.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누구에게 모욕을 당했나요? 버림받았나요? 죽도록 기도했는데 응답해주지 않았나요? 지난 일에 잡혀서 삶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면 손해지요? 38년 된 문제라도 버리고 일어나야지요. 앞으로 또 다른 38년을 고통 속에 앉아있을 겁니까? 생명과 복을 선택합시다. 그러면 다 갚고도 남아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모두가 보통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다 경험했어요. 아니, 오히려 더 심하게 당합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됩니다. 다윗은 10여년을 왕에게 쫓겨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어려움이 오고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도우십니다.

죽음의 문턱이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망과 저주를 선택하지 말라. 마음을 밝히고 미소 지으며 생명과 복을 택하라. 하나님만 사랑하라. 말씀 순종하고 의지하라.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리라. 삶은 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최상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너의 믿음이다. 승리의 채널을 돌려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도대체 내 차례는 언제 오는 겁니까? 저보다 못한 사람도 다 결혼했고 잘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편법을 써서 앞 설려고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신자는 그러면 복을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방해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은 확신을 가지고 꾸준해야 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큰 공장에서 일하는 기계공이 있었어요. 퇴근 후 술자리 회식에 가지 않는다고 동료들에게 왕따 당했답니다. 모욕도 당하고요. 그러나 실력으로는 회사 내 최고였어요. 그런데도 7년 동안 승진은커녕 봉급 인상도 없었답니다. 모든 관리자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공평하기만한 삶이었던가요.

그러나 성경말씀대로 했어요. 상사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일했어요. 불평하며 억지로 참는 게 아닙니다. 기쁘게 살며 실력을 향상시켰어요. 어느 날 사장이 그를 부릅니다. 말단이기에 만나본적이 없었어요. 은퇴할 때가 되어서 회사 맡길 사람을 찾는다는 겁니다. “나는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할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네.” 실화입니다.

삶은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를 줍니까? 성경대로 하면 삶은 모습이야 어떻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좋은 것입니다. 저주로 바꾸지 마세요. 생명과 복이 삶을 이끌게 하세요. 그것은 그냥 외형적인 것을 넘어섭니다. 영적인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절대로 어두운 감정을 유지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의지해 삶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고집하세요.


QT를 위한 질문

1. 일어난 나쁜 일에 대해 어떤 반응을 선택할까요?(1/1-3)
2. 복과 저주를 내가 선택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1/6,7)
3. 일어난 일에 대해 괴로운 감정을 유지하면 어찌 되나요?(2/3,4)
4. 다윗은 아들을 잃고 어떻게 반응했나요?(2/6-8)
5.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삶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나요?(3/2,3)
6. 생각처럼 일이 안 풀릴 때 어떻게 하지요?(3/4-6)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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