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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약할 때 찾아오시는 성령 (행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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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서(極西)쪽 지방을 방문하게 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産)의 거목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거목은 삼나무와 적색 삼나무, 두 종류가 있는데 대부분의 고원에서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식물학자들이 큰 나무를 잘라 내고 나무가 성장한 과정을 나타내 주는 나이테에 대해 설명해 준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이 테는 아주 가물었을 때 성장했다는 표시입니다.  여기 몇 개의 테는 아주 비가 많이 왔을 때를 알려주고 있으며, 여기 이 테는 이것들을 정상적으로 성장한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테는 숲 속에 불이 나서 나무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이고, 이쪽은 사나운 병충해와 질병이 유행했을 때 나무가 성장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라고 식물학자들이 설명을 해 준다고 합니다.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이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지난 과거를 심층부에 안고 있습니다.
나무의 모든 성장과정이 나이테에 자서전으로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외모에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람마다 마음속에는 생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이력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을 지라도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습니다.
인생의 비바람 속에서 자라오던 일,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던 일, 땀 흘리며  몸부림치던 일, 우리 속에는 오래된 아픈 상처의 순간들이 남아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에 실려 있는 실화입니다.
크리스마스 날을 맞아 한 어린이가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선물을 넣는 자기의 양말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양말에는 선물대신 더러운 돌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짓궂게 장난질을 한 것입니다.
크게 실망한 소년은 그것이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한 벌로써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소년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크리스마스 날에 있었던 사건을 의식하면서 산 것이 아니었지만, 이것이 무의식 속에 잠재하며 소년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고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순간의 일입니다.
단 한 차례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3살 때에 내가 무엇을 하였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분이계십니까?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까?
비록 무의식 속에 있는 사건이지만 이것이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절망하고 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을 대하는 우리는 “젊은 사람이 왜 저렇게 변변치 못할까”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가 왜 절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망이 있으면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까닭 없이 이렇게 된 것입니까?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를 곰곰이 더듬어 생각해 봅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고 얼마나 많은 시련 속에서 오열을 삼키며 살아왔던가?
또한 행복했던 순간은 얼마나 되었던가?
이 모든 과거가 우리의 마음에 이력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처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떤 사람은 벼랑 끝으로 절망하게 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일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상처의 노예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됩니다.
절망은 상처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절망에서, 인생의 상처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방법과 길을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도 엄청난 절망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재산목록 1호인 그물도 버렸고, 부모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런 아내마저 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자식까지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가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들은 충격적인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힘없이 끌려가고, 뺨을 맞으며 조롱과 멸시를 당하면서도 한마디 저항도 못하는 심약한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를 통치하리라 믿었던 우리의 스승이 이렇게 연약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니....’
이 순간 제자들의 마음에는 혼돈이 찾아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예수는 흉악범에게나 해당하는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지만 저항한번 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며 누구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제자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해가 빛을 잃었으며 땅이 진동하였는데 아마도 제자들의 마음에도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절망과 어두움이 찾아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은 조금씩 소망과 용기를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다는 제자들의 말이 퍼지면서 다시금 소망을 갖게 된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의지하면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은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행 1:14절에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고 했습니다.
만사 제쳐두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선출하기까지 했습니다.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약해보고자 하는 결의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제자들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맛디아]를 선출하기까지 하였지만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고 하셨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면 뭔가 징조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열흘이 지나도 징조는커녕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20일이 지났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습니다.
30일이 지나고 40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실현되지도 않았으면 실현될 기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일이 지나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어느덧 50일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이란 3대 절기의 하나로써 대단한 축제일입니다.
오순절 이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구약의 칠칠절, 맥추절, 초실절과 같은 것입니다.

이 축제는 본래 추수 의식이었습니다.
보리의 수확을 시작해서 밀 수확을 끝으로 곡식을 추수하는 전체 기간을 약 7주간으로 잡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로 불리워진 것이 이 오순절입니다.

이 축제는 수확계절이 끝난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축제였으며 이날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며 모든 축제 행사가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레위인들을 초청하여 공동식사를 함으로써 끝을 맺었습니다.
헬라인과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 축제는 7주간의 추수기간을 의미하는 오순절로 불리어졌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자들은 땀을 흘리며 기도하였고 목을 놓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주시마 하시던 성령은 임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겠지요.
육체도 지쳤고 마음도 지쳤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구나!’ 하는 절망의 생각이 스며들 법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장 약해져 있을 때에 주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허탈과 절망 속에서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더니 각 사람에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주님의 약속은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의 설교가 왜 그리도 따분한지 졸다가 깨다가 졸다가 깨다가....
빨리 예배가 끝나기를 고대하면서 시간만 때우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모두 마치고 걸오 나오는데 웬 아가씨가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속이 복받쳐 오르는 눈물인지라 대부분의 성도들이 놀라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자세히 보니 자기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아가씨였습니다.
한참이 흘렀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돌아간 빈 성전에서 한참을 울고 있던 아가씨가 눈물을 닦고 일어났습니다.
이 때 기다리고 있던 집사님이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수?”
아가씨의 사연을 이러했습니다.

아버지는 반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을 얻어 병상에 누워계시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두 동생들의 학교생활을 뒷바라지 하면서 살림을 꾸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직장마저 잃게 되어 앞날이 막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어서 삶의 애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지’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오늘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 주님의 음성처럼 들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말씀이 비수가 되어 자기의 마음을 도려내더랍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기를 앉혀놓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날 삶의 깊은 절망 속에서 탈진해 있는 아가씨에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뼈 속 깊이 체험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이제는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울고만 있었지만 이제는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얻었고, 동생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희망을 얻었으며,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담대함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체험 하나가 이제는 이 여인의 남은 인생에 크나 큰 영향을 줄 것이며 그로 인해 승리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요, 오순절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이 가장 약해져 있고 신앙적으로 심히 흔들리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이 여인에게도 가장 절망적인 환경에서 용기를 잃고 있을 때 성령께서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지쳐있던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나더니 제자들이 어떻게 돌변했습니까?
밖으로 뛰쳐나가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14절 이하에 보면,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행2:14) 하면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 모두 도망치고 예수를 부인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제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연약할 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요, 내가 절망할 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요, 내가 연약할 때 성령을 주시는 것은 나에게 승리의 삶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령 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제자들에게 임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이제 잃었던 소망을 다시 찾으십시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인생의 절망에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주님을 불러 보십시오.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치면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제자들에게 임하여 변화시켰던 것처럼 연약한 나를 변화시키는 오순절의 역사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입었던 많은 상처들, 실망스런 일들, 절망하고 아픈 사연들, 오늘 성령께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를 싸매 주실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처럼 직분 자를 선정할 때마다 시험들만 한 일을 당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코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 누구를 시험에 들게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다만 최선의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만 사람들의 손을 통해 하는 일이기에 부족한 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홀연히 여러분의 심령에 임하여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며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이 같은 성령의 은혜는 여러분의 모든 것을 바꾸어 줄 것이며 천국에 가는 날까지 은혜와 능력으로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박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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