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 (요일 3:1-12)

  • 잡초 잡초
  • 1064
  • 0

첨부 1


요1서3 : 1 - 12절 2006.6.4(일)2.3부<1>
제 목 :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
최근에 생긴 용어 가운데 비트 가정이란 말이 있는데 혹 들어 보셨습니까?
비트란 바로 컴퓨터를 말하는데 비트 가족이란
가상 가족, 또는 사이버 가족이란 말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비트가족은 세상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지금
급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한 단면입니다.
비트가족이란?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려고 하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사이버 안에 들어가 구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 상대자가 나타나 사이버 안에서 결혼도 하고
사이버 머니로 집도 마련하고 승용차고 사고 세간도 들르고
저녁에 퇴근하여 여보 나 왔소, 하면 여보 반가워요 하며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드라마 가운데 불량가족이란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애요.
문제는 N-세대들이 삶을 사이버 공간에서 살다보니
가상 현상을 현실로 착각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비트 가정에 물론 갖출 건 다 갖추었습니다만
문제는 그기에 가정 구성에 가장 본질인
친권적인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정의 행복이 깃들 수 있겠습니까?
비트가족 - 사실은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 부터인가 교회 안에도 시뮬레이션 예수란 말이 생겨났듯이
신앙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Spiritural space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리스도인은 현실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아버지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도 있는데
그 속에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은
마치 비트 가족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인들마저도 생명이 없는 신앙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며
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요한이 지금 우리에게 빛 가운데 거하라, 주 안에 거하라 고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오는 기쁨이 넘치는 삶
성도의 진정한 웰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요한1서의 전체 주제는 “빛 가운데 거하라” 즉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방해하기 위해서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합니다.
이 미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2>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에서 아비로, 청년의 신앙으로 성숙해야 하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주 안에 거하는 삶, 즉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녀답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1.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그리고 사도 요한이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1절)
1절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떠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이런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감탄을 하면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 합니다.이 말은 얼핏 보기에 매우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살펴보면 절대 단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어떠한 사랑이란 말의 ‘어떠한’ 은 성경에 「포타포스(potapos)」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말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놀라움과 경탄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그 좋은 예로 마8:27에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어 잠잠하게 할 때
제자들이 [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 이것은 인간의 차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포타포스의 사랑 오늘 우리가 이 사랑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3:16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겠습니까?뿐만 아니라 그리고 ‘주사’ 라는 말도 그렇습니다.이 말도 역시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부어 준다 즉 영어에 샤워(shower)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여름에 폭우같이 쏟아 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는 우산이나 비옷이 그리 도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이 왜 하나님의 포타포스의 사랑을 강조할까요? <3>
왜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비행 내지 불량 청소년들이 되어 사회에 문제를 일으킵니까?
지금 미국이 앉고 있는 문제는
이라크 전쟁이 아니라 커가는 청소년 비행문제입니다.
왜 미국이 이런 청소년 문제가 일어나는가 하면 가정이 붕괴되니깐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맛보지 못하고 자라다 보니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은 지금 교회 안에 이단의 세력이 들어와 유혹하고 미혹하여
교인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 포타포스의 사랑을 바로 깨닫고 맛보면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폭우 같이 쏟아 부어시는 하나님의 포타포스의 사랑
이 사랑에 감동 받고 감격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이 뭐가 있느냐? 는 것입니다.
1절 하반절 [ [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 진가를 다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 믿고 난 후
세상의 잣대로 재어보면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가가 나타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하나님의 포타포스의 사랑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예수 안에 누릴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구원을 알고 영생을 알고 하늘나라 유업을 알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의 자녀가 그 진가가 나타날 때가 언제입니까?
2. 하나님의 자녀의 진가는 언제 나타납니까?(2절)
2절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
이 기이한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4>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도 놀라게 하며
우리에게 베푸시고 나타내실 그 기이한 사랑 앞에
어떻게 무엇이라 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양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인가? 하면 바로 주님 앞에 설 때인 것입니다.우리들이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비밀로서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세상은 그리스도를 모릅니다.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도 모릅니다.
구원도 영생도 친국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부요한 사람들이요 가장 명예로운 사람들인데도
세상에서 무시를 당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우리는 낙심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의 진가가 나타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심이 되면 그대로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나온다고 누구에게나 다 이 영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는 삶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3-6절)
3절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진 성도는 - 깨끗한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삶 -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삶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 그의 깨끗하심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그 비결은 바로 예수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 Godliness
하나님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흙은 "주인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도 요한을 보세요.
본래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형 야보고와 함께 ‘우레의 아들’입니다.
성질이 얼마나 불같던지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보듯이
항상 주님의 곁에서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도니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한 것입니다.
요한이 얼마나 변했으면 약 일 세기 전에 일부 신학자들은 <5>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를 제기할 만큼
예수님 가까이 하다 보니 요한이 이처럼 변한 것입니다.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4절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
불법이라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을 말하는데
사도 요한이 서신에서 율법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점으로 보아
여기에 불법은 하나님을 뜻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죄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다른 영적지식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깨끗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5절에 [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성도의 의로운 삶의 동기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이
우리 죄를 없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 없이 사셨고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그의 삶으로 우리를 따라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짓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 연약함이 이를 때가 있어도
주 앞에 죄를 자백하며 회개함으로 죄에서 벗어납니다.
결코 의도적으로나 제 멋대로 죄를 범하고 무감각하게 살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6절에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 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 거하는 삶
주님과 가까이 하고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살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란, 그리스도를 믿어 거룩하게 된 자들일 뿐 아니라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적극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때로는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6>
계속해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6절 하반절 [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고 합니다.
거리낌 없이 범죄하고도 아무런 회개나 변화가 없는 사람은
사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주님과의 사귐이 없는 사람임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는 의롭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바로 의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7-9절)
1) 7절에 [ 자녀들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 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에 머물지 아니하고
아비의 신앙으로 자라야 하며
예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8절 [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니이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십니다.
마귀의 일을 "멸한다."라는 말은
"힘을 제거하여 무력하게 한다. 무장을 해제한다."라는 의미인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순간에 마귀의 권세가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16:33에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합니다.
예수 이름이 불러지는 곳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마귀는 혼비백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패배를 의미합니다.
불행과 저주와 멸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모실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씨가 내 속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9절 [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거하도록,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7>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5.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갈 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10-12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특징은 첫 번째로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나아가 적극적으로는 10-12절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고 마귀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혹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굉장히 기분 나쁜 소리지요.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구분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 속했느냐? 아니냐? 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요1서4:7-8절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바로 사랑하는 자인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손길 -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아주 평범하면서 진한 사랑의 손길 한 분 소개할까 합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키 150cm의 82세의 최(복순) 할머니이야기입니다.
다리 관절염 때문에 유모차에 의지해 걷지만
동네 국유지 공터를 일구어 자칭 [행복한 만물상 밭]에 채소농사를 짓습니다.
밭이 엄청나게 넓은데 할머니가 그 동네 이사온 후
황무지를 4년 동안 일구어 가꾼 밭이라고 합니다.
취재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 이렇게 많이 농사를 지어 무엇 하려고 하느냐? ] 고 물으니
[ 이 많은 걸 나 혼자 먹으려고 한 게 아니여.
이거 지어서 나도 먹지만 교회 노인대학에, 복지회관에 나눠 먹고,
이웃들과도 나눠 먹고, 오다가다 먹고 싶은 사람 뜯어 먹고,
뭐 그렇게 먹으려고 하는 거지 ] 라고 합니다.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 모터도 오래 되면 녹이 슬고 고장이 나지 않겄어.
부속품도 삐거덕거리고 말야.
그런다고 안 써봐. 아예 녹이 더 슬어 아예 못쓰게 되지.
그렁께 더 녹슬어서 못쓰기 전에 자꾸 써야지.
녹슨 것에 기름칠 하드시 말여 ] 라고 합니다.
자신이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회 갔다가 일을 하러 오는 것은 <8>
고장 나고 녹슨 관절에 기름칠을 하는 거라고 합니다.하나님 앞에 가장 감사한 것은
1) 초등학교 3년 중퇴인데 그때 한글 깨우쳐 성경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
2) 이곳에 오기 전까지 65세 때부터 약 20년 동안 병원 찾아가
자원봉사 할 수 있었던 것이야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요사이 교인들 좀 그래. 정직하질 않어,
좋은 사람들끼린 누가 안 친하게 지내겠어. 그런데 그건 그런 게 아녀.
안 친한 사람 함께 어울리게 하고,
나쁜 사람, 좋은 사람 만들고 하는 게 사랑이고 사는 거지.
요사이 교인들은 예수님을 잘 모르는 것 같어
내가 전도회 회장도 하고 그랬는데 나 그럴 땐 안 그랬어.
근데 요즘은 안 그래. 다들 끼리끼리 놀아.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거지.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왠지 뜨끔하게 느껴지네요.

사실 사랑타령 처음 듣는 소리 아니지요
2000년 동안 이 강단에서 사랑타령을 하지 않습니까?
11절 [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한 두 번 들은 소리가 아니지요.

그런데 왜 교인들이 사랑의 삶, 실천하지 않습니까?
이기주의 신앙, 이기적인 삶 때문인 것입니다.
12절 [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마귀의 자녀의 모델로 가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가인은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의 모델입니다.
하나님도 형제도 자기 위해 존재하고
자기에게 손해나면 고개를 돌리는 이기주의자의 모델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너희는 가인같이 하지 말자고 합니다.

<맺는 말>
우리는 폭우 같이 쏟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포타포스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진가가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진 자로서 깨끗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손길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인 것입니다.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