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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시기를 (요 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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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하늘나라 일을 전파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성령과 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중에 성령 충만 함을 받고 사명을 감당한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강림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엘서에 보면 내가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물 붇듯 부어 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욜2:1-3)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자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1. 생수의 강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었는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 그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명절이 등장하는데 그 명절은 바로 초막절이 되겠으며, 초막절이 시작된 지 8일이 되겠습니다. 이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장막절은 유월절 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살던 것을 기념하면서 지키는 절기로 이때가 되면 다른 절기 때와 마찬가지로 열두 살 이상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일주일간 밤에는 추위와 싸우면서,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더위를 이겨가면서 장막을 치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고 들으면서, 그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조상들의 삶을 추억하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먹이시고 입히시며 인도하셨는가를 후손들에게 들려주어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앙의 교훈을 얻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느닷없이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7:37,38절을 함께 읽어 주시겠습니다.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왜 예수님께서 갑자기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막 절기를 어떻게 지키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아주 특별한 종교행사를 가집니다. 그것은 실로암 우물의 물을 길어서 성전으로 가져가는 행사입니다. 모인 수십만의 무리가 실로암으로 행렬을 지어가고 제사장들도 순금 항아리에다 실로암의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들고 행렬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이때에 부르는 찬송이 사12:3절의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라”라는 주제로 찬송을 부르면, 백성들은 시113편, 118편으로 찬송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행렬이 성전에 있는 제단으로 들어서면 거기에 그 물을 붓습니다. 이 때 군중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반석의 물로 마실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 특별행사가 지금 초막절 마지막 날(8일째 되는 날)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바로 제사장들이 금 항아리로 물을 길어서 들고 올라오는 그 자리에 서셔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물을 긷는 이 행사도 중요하지만, “그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지만 여기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있다고! 그 생수가 바로 나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생수는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에게 하셨던 말씀과 흡사한 말씀입니다.(요4:14)

그렇다면 그 생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39절이 해석해 줍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전10:4절에서 예수님은 신령한 음료를 내는 반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신령한 음료를 내어 주시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날 것입니다. 여기서 생수는 성령을 의미함이요, 생수가 흘러 나리라는 말씀은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을 강조하십니까? 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는 것을 중요하게 보셨습니까? 얼마나 중요하면 승천하시면서 까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성령 충만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 때에 성령이 계시지 않으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미 창세 때부터 계셨고,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도 성령의 역사로 되었으며, 베드로의 신앙고백도 성령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흘러나는 생수처럼, 즉 성령의 충만은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아직 십자가도 지시지 못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영광을 누리실 것입니다. 그 후에야 생수의 강이 철철 넘쳐흐르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시는 중에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과연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내어다 보시면서 주님은 초막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는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야 하겠습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해야 믿음생활에 힘이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저앉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변할 때에 변하더라도 잘 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받은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두 종류입니다. 기쁨으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있고, 마지못해서 의무감 때문에 감격 없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신 직분이 부담이 아니라 만삭되어 나지 못한 나를 믿으시고 큰 직분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분이 너무나 부담이 되어서 할 수만 있으면 벗어 보려고 하고, 피해보려고 하고, 너무나 무거워 천근만근인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각자의 하나님이 다릅니까? 아니면 성령을 받지 못하여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다 성령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차이가 납니까? 성령의 충만함으로 신앙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느냐? 아니면 그 배에 생수가 메말라 있느냐의 차이라는 말씀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다!”라고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같은 상황에서도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그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느냐의 차이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니 비록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유 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감사했습니다. 풍부하면 풍부한 대로 감사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상황에 매이지 아니하고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외쳤습니다.(빌4:4,11-13)

바울은 누구이며,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바울의 하나님이 다르며 우리의 하나님이 다릅니까? 다 같은 하나님이시나 바울의 배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쳤고, 저와 여러분의 배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세상살이에 피곤하여 생수가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3. 성령님이 누구십니까?

그 분의 별명은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인데 그 의미는 ‘곁에서 속삭여 주시는 분’, ‘옆에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죽음과 죄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저와 여러분 옆에서 도우시고, 좌절과 절망, 낙심으로 인해서 지쳐있는 사람들 곁에서 속삭이시며 격려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분이 보혜사이셨습니다. 그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주님의 일을 할 때에든지, 설사 여러분들이 세상에 나가서 살 때에라도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 곁에서 속삭여 주실 터인즉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더라도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눅12:11-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11)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12)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에게 바른 것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14:26절에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굳게 믿으시고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시고 무서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혜사가 여러분들 곁에 계셔서 속삭이시면서 우리를 지도하여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4. 끝으로 어떻게 하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내가 갈증을 느끼고 사모하여야 합니다.

37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로 오라고 합니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만 하고 사모하고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어나 주님께로 달려 와야 합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생수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주님의 부르시는 이 음성을 외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4: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이성에 유하라”라는 말씀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믿음으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성과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면서 기다렸습니까? 그들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약속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붙잡고 전혀 기도에 힘쓰는 이들에게 과연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입고 천국의 사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도들의 배에서 흘러내린 성령은 예루살렘을 적셨습니다. 온 유다를 적셨습니다. 사마리아와 땅 끝을 향하여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임한 곳에 소생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생기의 역사가 일어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피곤하더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해서 마귀의 노리개가 되어서 신자답지 못한 신자가 되느니, 차라리 피곤하더라도 성령 충만해서 능력 있는 신자로 마귀를 이기는 신자가 되는 것이 더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대신에 뱀을 던져 주면서 “야! 먹어라!”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이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던져 주면서 먹으라고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 많고 허물만은 우리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 않습니까? 하물며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라고 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이 성령강림주일에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그래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무기력한 신앙, 귀하고 값진 것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귀한 줄 모르고 감격 없이 살아가지 마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셔서 눈물로도 값을 수 없어 이 몸을 드린다고 하면서 충성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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