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금과 은 나 없어도 (행 3:1~10)

by 운영자 posted Jul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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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자주 듣고 부르는 「나」 라는 가스펠 송이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 공평하신 하나님이/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이 가사를 작시한 분은 ‘하늘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명희 시인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분입니다. 지금 나이가 43세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루하루 살면서 제일 고민이 되는 게 화장실 가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대로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눌한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온몸을 비틀어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입니다.

  그는 모진 고통 중에서도 그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기에 그런 시를 쓸 수 있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 1,500회 간증 집회, 100여 곡의 찬양시 작시, 25권의 책 저술 등 초인적인 일을 해냈습니다. 지금은 몸이 더 나빠져서 거의 전신마비 상태지만 여전히 열정을 갖고 기도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인 학교를 설립하려는 꿈을 위해 오늘도 일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에게 예수님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고통을 이길 기쁨과 보람을 소유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놀라운 분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도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인생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각자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지만, 각각의 인생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비천한 어부였던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화된 당당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소개받은 앉은뱅이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는 이미 이와 같은 변화를 체험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 줄 압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다시 한번 그 변화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그런 체험이 아직 없다면 예수님을 만남으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함으로 그들에게도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1] 앉은뱅이 걸인의 비참한 모습 : 예수가 없어서 불행했던 사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맞춰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제9시는 지금의 오후3시에 해당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제3시(오전 9시), 제6시(정오), 제9시(오후3시) 등입니다. 그날도 그 시각에 맞춰 기도하러 갔던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통하는 문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여 ‘미문’(美門)이란 이름의 문이 있었다. 그 문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걸인들에게는 목 좋은 자리였을 겁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게다가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정심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미문 앞에 걸인 하나가 앉아서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2절 보니까,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그의 나이가 40세 정도였으니까(행4:22) 무려 40여년 동안 그런 고통을 겪은 겁니다. 그는 그날도 제 발로 오지 못하고 남들이 데려다 주었을 겁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그 날도 그 몸으로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불쌍한 인생입니다. 육신의 건강도 물질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가족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들마저 이제는 지쳐서 무관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정말 비참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장애인이 성전 임장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레21:18~23 참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한 후라 이미 신약시대가 됐지만, 1세기에는 아직 과도기라서 구약의 풍습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고통스러운 것도 안타깝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죠. 짐승은 영혼이 없습니다. 그냥 먹고 마시고 육신의 본능해도 살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혼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혼에 하나님을 모시면 육신이 고통스러워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송명희 시인이 바로 그런 예가 아닙니까? 그런데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곤고합니다. 참 만족이 없습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또 한 가지는 내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짐승은 살다 죽으면 그냥 흙에 묻히고 끝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영혼은 내세로 들어갑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한 내세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 천국의 소망을 갖지 못한 것이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눅16:19 이하를 보면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옷(관복)을 입고, 베옷(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고가품)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엽니다. 그러니까 권세, 재물, 향락을 다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음부에 내려갑니다.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합니다. 반면 나사로(‘하나님은 나의 도움’이란 뜻)는 노숙자요 음식 찌꺼기를 먹고 살며, 몸에 병까지 있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겉으로 보면 비참한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영혼이 천사의 손길에 이끌려 천국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대조시키면서 과연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고, 비참한 인생인지 밝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저 육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불행인 줄 압니다. 물론 힘들겠죠. 그러나 인간의 영혼이 중요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게 불행입니다.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사니까 더욱 비참한 겁니다. 본문에 나오는 앉은뱅이 걸인도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면서 오직 하나 육신을 위해 하루하루 살 방법에만 골몰하고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육신이 앉은뱅이인 게 비참한 것보다 사실은 영적인 앉은뱅이 상태인 게 더 비참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무엇이 자신의 근본 문제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앉은뱅이 걸인에게 동전 몇 닢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것은 몰랐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마치 위암에 걸린 사람이 수술을 하는 등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매일 약국에서 가서 활명수나 사다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지금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합니까? 혹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무엇 때문에 남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합니까? 혹은 부럽다고 생각합니까? 과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있으면 행복한 것이고, 예수가 없으면 불행한 겁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의 당당한 모습 : 아무 것도 없는, 그러나 예수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보면 그들이 위대한 사도요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앉은뱅이도 어렵지만, 그들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박해의 시대에 잘못하면 투옥이요 매 맞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행색도 초라하고, 빈털터리였습니다. 오죽 하면 그날도 걸인에게 줄 동전 한 닢도 없었겠습니까? 6절.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

  하지만 그들의 태도가 어떠합니까? 당당합니다. 4절 보면 걸인을 향해 외칩니다. “우리를 보라!” 이런 말은 당당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마음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록 육신적으로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자신의 풍요를 나누어 주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풍요는 영적 풍요였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육신적인 궁핍을 극복할 뿐 아니라, 앉은뱅이 걸인의 육신적 영적 궁핍까지 해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하게 동전 한 닢을 주고 말았다면, 일시적이고 육신적인 위로가 됐을지언정 진정한 풍요를 제공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신령한 기쁨과 평안, 그리고 천국의 소망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보화입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모신 자들을 가리켜 뭐라고 말합니까?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의 육신적인 풍요는 오히려 가질수록 자기 혼자서도 부족합니다. 궁핍합니다. 안 가져도 궁핍하고 가져도 궁핍한 것이 바로 육신적인 풍요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져 버립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풍요를 소유하기 전에는 궁핍함 가운데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어부로서의 육신적인 궁핍이 있었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도 서로들 앞서려는 세속적인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끊임없이 궁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성령을 체험한 그들로서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예수 한 분을 모심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부요해진 것입니다.

[3] 앉은뱅이 걸인의 변화 :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은 변화

  다행히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앉은뱅이 걸인에게 주님의 은혜가 전달됩니다. 4절 보면 베드로에게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금과 은은 없었으나 가장 소중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6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뛰어다닙니다. 그는 금이나 은을 소원했지만 ‘금보다 귀한 선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름은 당사자의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즉 인격, 권세, 능력 등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에는 위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그 능력과 권세를 행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날 앉은뱅이에게 전해준 그 이름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난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일어나 걷게 된 육신의 기쁨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앉은뱅이 되었던 사람은 그 후 어떻게 됩니까?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이전에는 남들에게 누가 되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됩니다. 9절~10절 보면, 백성들이 다 놀랍니다. 여기서 ‘기이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충격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놀라다’라는 단어는 황홀경(엑스타시)에 빠졌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그 사람에게 나타난 변화가 증거가 되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한 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까? 행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오순절 성령강림 후 3천명이 되었고, 이제 5천 명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이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받은 그 큰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구질구질하던 삶에서 180도 달라진 영광스런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살아계신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온갖 축복과 은혜가 찾아오게 됩니다. 설사 다른 것이 변화되지 않아도 영혼 구원 그 자체가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기쁨과 평안은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어느 장로님의 전도 간증이 신앙 잡지에 게재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평소 늘 전도하는 분이신데, 어느 날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분이 젊은 나이인데 얼굴이 너무 어둡고 말도 퉁명스럽게 하더랍니다. 이야기를 걸어 전도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데, 말하기 싫다는 뜻으로 자기는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사연이 있나 살살 달래면서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마음이 서서히 열리며 자기 사연을 말하는데, 정말 자살할 생각을 가질 만했습니다. 큰 교통사고가 나서 누워있는데 부인이 도망을 갔답니다. 그리고 누님은 중풍으로 누워있어 대소변을 받아내야 되고, 여동생은 정신 이상으로 격리 수용되어 있어서 조금만 틈나면 면회 가서 돌봐줘야 하고 ... 당장 죽고 싶어도 자기가 죽고 나면 누님과 동생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면 차마 자살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장로님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면 집 나간 부인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누님의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동생의 정신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는지 솔깃해져서 말씀을 다 듣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 못 가요! 먹고 살아야 되는데 시간이 있나요? 게다가 헌금할 돈도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장로님은 교회 가고 헌금 하는 게 당연하고 좋은 일이지만, 교회 안 나가도 되고 헌금 안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방송을 듣고 설교 테이프 들으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주소를 묻고 설교 테이프를 보내준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지난 어느 날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 서있는데, 멀리서 택시가 총알같이 달려와 끽~하고 서는 것입니다. 보니까 그 기사분입니다. 택시를 탔는데 영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모든 게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마음이 왠지 기쁘고 평안하니까 너무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손님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여러분, 그렇습니다! 때로는 예수 믿어도 주변 환경이 바뀌지 않고 문제가 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변화되면 그 어떤 고난도 이기게 됩니다.

  여러분! 이 좋은 주님을 모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D. L. 무디는 세계적인 부흥사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 미국 역사에, 그리고 세계에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디를 누가 변화시켰습니까? 물론 예수님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전해 준 것은 평범한 한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무디가 구두 방에서 일하고 있을 때, 에드워드 킴벨이란 주일학교 교사가 찾아와 복음을 전해 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디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킴벨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를 아시죠? 그는 20세기 미국과 세계에 영향을 끼친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한 명의 전도자입니다. 헨리에타 미어즈 여사인데, 그는 본래 화학자였습니다. 그런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젊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수양관을 세워 젊은이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 젊은이들 중 하나가 바로 빌리 그래함입니다. 사람들은 빌리 그래함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미어즈 여사가 한 일도 기억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산목록 1호입니다. 금과 은 없어도 예수님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금과 은 나 없어도!” 이런 고백으로 승리하시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이름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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