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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투자 (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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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부활 하신 지 40일이 되었습니다.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셨고,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40일이 되어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는 때가 되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사도들을 감람산에 모이게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신 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는 때가 지금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들 중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제자들과 유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 언제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 됩니까?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벗어지는 것입니까? 언제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남편이 변화되어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언제 물질의 고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이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에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의 권능이 너희에게 임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라”

  주님께서 인생의 문제를 짊어진 제자들에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주셨습니다. 그 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이 너희에게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약속은 과거 11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몇 명의 성도들을 위한 약속일까요?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오래 전에 끝난 약속이 아닙니다. 분명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8:26절 말씀에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것을 아지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말씀처럼 단순히 물세례만을 받을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성령 세례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폭발적인 은혜와 권세가 나타납니다. 성령에 충만할 때 전도의 역사도 일어나고, 연약한 믿음이 강성해 지고, 직장의 문제, 남편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물질의 문제, 결혼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 삶의 모든 문제에 해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교회에서 12명쯤 되는 교회의 리더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 선생은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하고,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성령 세례의 체험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성령이 계시다는 소리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붙들고, 머리에 손을 얻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에게 성령이 크게 임하셨고, 그곳에 모인 12명의 사람들의 입이 열리면서 방언 터지고, 예언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살찌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합니다. 브라질에서 제자 양육으로 크게 교회가 성장한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아이레스 교회에 부임하였을 때 교인의 수가 184명이었습니다. 2년 동안 교역자들과 목사님은 아주 극성스럽게 일을 했고, 조직을 만들었으며 전도에 힘을 썼습니다. 2년 만에 약 3배에 이르는 600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600명의 성도가 모이면서 교회는 아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엇인가 교회가 잘 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교회의 일에 손을 떼고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사가 잡지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쓰고 있다. 네가 전하는 일들 가운데 나의 손길을 찾아 볼 수 있느냐?... 너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성장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이 쪄 가고 있는 것뿐이다”이 음성을 통해 그는 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의 회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40일 동안 지상에서 계시면서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또다시 믿음의 본질이 아닌 외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본질을 상실하고 자꾸 외적인 회복만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령의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가난하고 배고픔으로 인해 오는 물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이 문제가 속히 해결 받기 원합니까? 자녀들이 기대치만큼 이르지 못하고 있기에 그들이 보다 지혜롭게 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가지기를 원합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기 밖으로 배회하는 떠돌이나 나그네처럼 인생으로 살고 있습니까? 직장에서 동료들과 상사와의 문제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갈등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분명하여 깊은 불안감 속에 있습니까? 인생이라는 긴 노정이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 되어 속히 인생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던 것처럼 “어느 때 우리가 회복됩니까?”라는 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본질의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같은 것은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에 충만해야 하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본질인 그 영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유대의 관원이었고, 선생이라고 불리는 랍비였습니다. 니고데모를 향해 주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본질을 뒤로 한 채 제자들처럼 외적인 회복에 대해 문제를 삼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질은 거듭남에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령으로 거듭나 있습니까? 성령의 체험이 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 지고, 예수님이 정말 나의 이 죄악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근본적인 본질의 문제와 씨름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훌륭한 아브라함이었지만 그에게도 가정의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 아내로 인한 갈등 속에서 큰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아내야 했습니다. 언제나 그는 인생이 성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아내가 애굽의 바로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용납해야 하는 겁쟁이요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설명할 것도 없이 파괴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간음 사건으로 인해 누구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버림을 받는 쓴 경험의 소유자였습니다. 모세 역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에 붙들려 분노의 죄를 범하고 혈기가 가득하여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드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850대 1의 엄청난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저 마귀의 앞잡이 이세벨의 저주와 비난에 그만 낙심하고 인간적인 절망감과 두려움으로 3일 길을 달려 광야로 도망하는 인생이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나를 죽여 달라고 한탄하고, 울부짖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요나는 더 심각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직접적인 음성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다시스로 도망했던 선지자가 아닙니까? 심지어 에녹은 그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이 오직“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4:24)는 한 구절의 기록으로 오늘까지 존경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요나와 같은 사람들 모두는 자세히 살펴보면 가정에서 신의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분노와 육체적인 욕망으로 죄의 유혹에 넘어간 실패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비록 낙심과 배반과 간음과 인간적인 욕망에 붙들린 삶의 모습으로 살았지만 그들이 실패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정체성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계속해서 연속하여 사람들 앞에서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존경 받는 분 중의 한 분인 한경직 목사님은 자신이 기독교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 상을 받는 그날에 “나는 신사 참배를 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 모두는 영적인 정체성,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때문에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자로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도 말할 수 없는 탄식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떤 믿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성령의 역사를 받아드리고,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가 가진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힘으로도 안 되고 능력으로도 안 되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부터 여러분은 영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적인 투자를 요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11명의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을 세 번 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있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눈과 손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의심 많은 도마도 있었습니다. 칼과 힘으로 유대를 회복시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뛰고 달렸던 열심당원 시몬의 모습도 보입니다. 유대인들에게서 소외되고 버려진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했던 예수님의 동생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람산에 돌아 와서 세상의 것을 끊어 버리고 한 가지를 먼저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것에 자신들의 시간과 열심을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에 자신들의 인생과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자신들의 인생의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제한 받는 것이 있을까요? 성경은 기도의 제목을 “무엇이든지”라고 말합니다. 현재 그들의 상황은 그들이 의지하던 주님께서 승천하신 상황입니다. 그들을 이끌어주고 그들을 위로해 주던 위로자요, 정신의 중심축이었던 주님마저 이제 하늘로 올라가신 정신적인 공황의 상태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외적인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를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신앙의 정체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들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반드시 자신들이 큰 능력의 사람들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가 강하게 몰아치는 태풍처럼 한 길로 몰려오다가도 아무런 힘이나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일곱 길로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오직 먼저 육신의 일이 아닌 영적인 일에 우선 투자하는 것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오직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도에 힘을 쓰자 성령의 권능이 그들에게 임했고, 그들의 인생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는 변화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불과 10일 동안 교회에 모여 기도했고, 10일의 짧은 기간 동안 그들 모두는 성령을 체험하여 방언이 터지고, 인생의 비전을 보게 되었고, 인생의 소망과 꿈을 가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예언자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변화 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주님의 말씀처럼 영적인 것에 투자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우선순위를 기도하는 일에 두었습니다.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성령의 권능과 능력을 받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한용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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