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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생활 되살리기 (잠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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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일 새로 시작한 다시금 결혼에 관한 일련의 설교를 오늘도 계속하겠습니다. 건강한 결혼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결혼생활 되살리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선택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런 확신이 없습니다. 처음엔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만 지금은 너무 실망스럽고 어떤 때는 혐오스럽습니다. 사람 한 번 잘못 골라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식은 환상적이었으나 끝은 당혹스럽습니다. 그렇게 좋은 결혼이 그렇게 나쁜 결혼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질 않습니다. 두 사람이 환상적인 커플이라고 출발해서, 서로에 대한 적의를 품고 열심히도 싸우다가, 마침내 싸우기도 포기한 냉담한 상태로 접어듭니다.

출발은 환상적으로 시작합니다. 사랑하고 감동적인 지극한 축복 속에 첫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미워하기 시작하고 줄기차게 싸우다가 더 이상 싸우기도 포기한 냉담한 기류에 휩싸여 좌초하고 마는 결혼이 드물지 않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거창한 출발이 비참한 결말로 치닫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에 꼭 들던 사람이 끔찍한 사람으로 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그 원인을 살피고 결혼생활 되살리기를 위한 결혼 리모델링을 시도하겠습니다.

잘 살펴보면 문제의 원인은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희망으로 가슴 뛰던 결혼을, 가슴 쓰리게 하는 결혼으로 망치는 주범 네 가지를 차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1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입니다.

“결혼만 하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야”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부터 젊은 날 관람한 영화까지 이런 결혼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동화처럼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는 일은 현실 속에는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을 구출한 다음 석양을 배경으로 함께 사라지는 일이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석양보다는 스모그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삶이 더 현실적입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일은 현실 속에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데이트를 하고 구애를 할 땐 결혼하면 얼마나 더 잘해 줄까하는 낭만적인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오늘 저하고 영화 한 프로 보면 안 될까요?” “저녁에 시간되시면 함께 식사를 하면 안 될까요?” 이런 공손한 요청은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사귈 때야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는지, 예의를 갖춘 최선의 처신을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일상적인 삶을 시작하면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결혼을 승낙해주면 그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드레스를 입어볼 때는 온각 황홀한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장의 신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숲 속의 백설 공주만큼은 안 되지만 그날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도 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생활을 하진 않습니다. 실제 삶을 시작하면 더 이상 들러리가 좌우에 서서 시중을 들진 않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갑니다. 정말 좋은 곳에서 신혼의 즐거움을 상상합니다만 거기도 낮에는 태양이 뜨겁고 밤에는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생소한 음식, 달라진 물 때문에 신랑신부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설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후딱 지나가서 아침식탁에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대로의 머리모습을 한 새색시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마주 앉은 새신랑을 그려보십시오. 둘 다 입 냄새, 발 냄새도 나고, 나와서 방구까지 분위기를 깹니다.

한껏 부푼 결혼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빨리 일상적인 모습으로 전락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결혼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주 평범하고 불완전한 두 사람이 모여서 이룬 결혼이란 지극히 평범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완전한 결합이기에 미움과 싸움, 그리고 냉담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선택한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1.2 결혼이 시들해 지는 두 번째 이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이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차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제는 처음에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마자 그 다른 점 때문에 고생을 시작합니다. 매력적인 것이 좌절시킬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과 조금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상큼한 일입니다. 언제나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사람은 그 틀을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정 교과서는 일반 출판사에서 나온 참고서를 선호합니다.

조심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겁 없이 처신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처음에야 다르다는 점이 감동적이고 매력적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의 차이가 그렇게 깊고 넓은지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껴서 결혼을 했지 비교검토를 하고나서 결혼을 합니까?

그리고 연애할 때 한 꺼풀 뒤집어쓰고 나면 우린 공통점을 과대평가하고 차이점을 과소평가합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 잘 통해요.”라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 분위기를 깨트릴 수 없어 “살아보지”하는 말이 기억나지만 아무도 감히 내뱉질 못합니다.

엄연하고도 엄청난 차이를 무시합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은 남자이고 다른 사람은 여자라는 것을 무시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래도 온건합니다. 살다보면 같은 은하계에 속한 다른 행성이 아니라 각기 전혀 다른 은하계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남자와 여자, 그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틀리는 것 같습니다. 사귈 때는 “우리는 서로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살아보면 “우리는 서로 달라요”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진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함께 지내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그냥 참고 지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란 의미입니다. 그 차이를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그 차이를 사용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머러스하셔서 다른 형을 함께 살도록 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 배합을 즐기시는 듯 합니다.

아침 형과 저녁 형을 서로 만나게 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노래하는 종달새와 밤이 깊어야 우는 부엉이를 짝 지워 주십니다. 종달새 과의 사람은 대개 아침 11시 전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않는 부엉이 과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활달하고 쾌활한 사람은 조심스럽고 꼼꼼한 사람을 만납니다. 어떤 이는 수다스러울 만큼 말하길 좋아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분은 팔을 괴고 듣기만 합니다. 돈을 풍덩풍덩 잘 쓰는 사람은 돈은 아끼는 사람과 만나곤 합니다. 어떤 이는 피부 접촉을 좋아하고 다른 이는 다가오면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웁니다.

성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쪽은 활화산 같고 다른 쪽은 아무리 만져도 터지질 않응 불발탄 같습니다. 일상생활도 그렇게 다를 수 없습니다. 깔끔하고 정돈되고 시간엄수를 하는 사람은 대개 유연하고 원만하고 늘 늦는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하고 그것 때문에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나하고 딱 맞는 사람과 결혼했어요.”라고 말하지만 살아보면 “언제나 딱 맞지는 안네요.”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실태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란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성화의 도구 첫 째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성화시키는데 최선의 도구가 됩니다. 차이가 크면 클수록 성화시키는 위력이 더 큽니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계곡이 깊은 것과 같습니다. 깊고 맑은 물이 흐릅니다.

부디 차이점 때문에 힘들긴 해도 피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거룩하게 다듬고자 계획하셨습니다.

1.3 결혼이 시들해지는 세 번째 이유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 때문입니다.

문제는 계속 터지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말하기도 어렵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때로는 일일이 말하기엔 너무 자존심 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결하지 않고 지나가는 문제들이 쌓이면 조화로운 결혼생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과 같습니다.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부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결혼을 한다고 백지상태로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난 가정이 있고 형성된 습관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서로 다릅니다. 한 사람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같은 것을 두고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과 가치관을 잔뜩 넣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결혼을 합니다. 상처를 가지고, 습성을 가지고 이전 가정에서부터 옮겨왔습니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자랐으면 더 큰 짐을 지고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더 많습니다.

살던 가정에서 형성된 장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결혼생활에 접어듭니다. 부모가 싸움을 심하게 하고 서로 이기려고 으르렁거리던 숲 속에서 살다온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무관심에 버려진 채로 자랐던 사람도 있습니다.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형성된 습관, 받아온 상처가 계속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문제를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배우자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결혼을 반드시 망칩니다. 결혼을 죽이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혹시 혼자 살고 계신 분 가운데서 다시 결혼을 하려면 과거의 결혼에서 받았던 상처를 먼저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이혼을 한 경우는 이전의 원한을 가지고 재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환상적인 조화가 순식간에 미움으로, 미움이 원한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1.4 결혼이 무너져 내리는 네 번째 이유는 용서 못한 상처들 때문입니다.

실수는 내어놓고 용서를 받고 용서해야 합니다. 모두가 불완전하기에 우린 서로에게 의도적으로, 비의도적으로 상처를 줍니다.

우린 이기적이고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처를 받고 주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매일의 음식이 되어야 결혼이 유지됩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결혼이란 엄청난 분량의 용서를 통해서만 지속됩니다.

받은 상처를 가지고 마음에 풀지 않으면 어느 때라도 마귀의 수중에 빠져듭니다. 실수를 기억하고 갚아주려고 하면 결혼이 수렁으로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는 빠르게 곪아가고 더욱 악화됩니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큰 죄악은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죄를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자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상처를 안고 뒹굴고 살면 고통을 영속시키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사태개선에 도움이 아니라 다만 사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미운 감정을 품고 살면 가장 큰 피해는 품고 사는 자신이 입습니다.

결혼을 망치는 주범은 비현실적 기대,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마치 여러분의 결혼생활을 꼬집어 말하는 것 같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에겐 희망이 없어 보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롬 4:17, 현대인성경)가 만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린다면 죽은 결혼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되살려내는 일에 전문가이십니다.

진단에 따른 전문가의 여섯 가지 처방을 따라 순종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결혼생활은 하나님이 바라는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마음에 꿈꾸던 결혼생활 이상이 될 것입니다.

2.1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맨 먼저 내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지금 드리려는 말씀은 결코 실천하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힘들지만 확실한 방법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갈 6:5,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배우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배우자의 태도를 바꾸어 놓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로 하여금 여러분을 사랑하라고 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 속에 머물라고도 명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행동은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를 바꾸는 확실한 방법은 그들을 향한 여러분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달라지면 그들도 여러분을 대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책임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결혼해서 고달프고 불쌍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셔야 합니다. 또 여러분의 배우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당장 멈추십시오. 그것은 결혼을 파괴시킵니다. 그것은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여러분의 결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해서 여러분의 결혼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엄청난 에너지 낭비입니다. 불행에 대한 비난을 배우자에게 퍼붓지 마십시오.

행복이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도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여러분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삶이란 바로 여러분 자신의 반응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하나님께도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행복도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더 행복해 지길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거기에 참된 행복이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배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십시오. 꿈을 깨십시오. 환상을 버리십시오.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을 옹호하고 꿈만 꾸고 있으면 더 나은 결혼을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결혼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개선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울타리 저편의 초원이 더 푸르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울타리 이편의 풀이 더 푸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물을 주고 거름을 줄 때 초원은 더 푸르러집니다. 불평하는 대신 두 사람의 관계에 시간을 들여서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더 푸르러집니다.

책임을 수용하는데 가장 큰 장벽은 서로 안 맞는 사람이라는 신화 때문입니다. 이혼을 하면서 내뱉는 변명이 “우린 성격이 맞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결코 없습니다. 성격이 틀려서 못 산다고 하는 말은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습니다.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합니다.

성격이 맞지 않아서 이혼을 한다는 것은 재판정에서 만들어낸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실패를 변호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격이 안 맞는다는 것은 성숙하기 거부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야” 라고 우깁니까? 우리 모두 ‘나도 한 고집하고 너도 한 고집하는’ 모두가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린 서로 함께 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성숙하고 고집 세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함성입니다. “내버려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변명입니다.

성격이 안 맞는다는 주장에 대해서 심리학자들은 반대로 말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노력만 하면 누구하고도 맞추어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남자와 여자라도 두 사람이 노력하면 누구라도 맞추어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쉬운 문제부터 풀면서 다음 문제로 나아가고 맨 나중에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십시오. 결혼생활의 어떤 난제라도 여러분은 풀어갈 수 있습니다.

2.2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 결혼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여러분의 느낌이 어떠하더라도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미 미움을 지나 냉담한 자리에 빠져들었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절망감 밖에 남은 것이 없더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여러분의 결혼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냉정하게 진리를 직시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결혼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포기하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신 분은 없습니까? “그랬더라면 자유로왔을 것을” 하고 아쉬워합니까?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유에의 길이 막히고 감옥에 갇힌 느낌입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분노하는 대신, 이혼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 화를 내는 대신 왜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싫어하시는지, 여러분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지 그 이유를 잠깐 생각해 보시진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슬에 묶어두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을 비참 속에 가두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마음속에 여러분의 최고 유익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시는 것은 그로 인해 여러분이 입을 상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결혼생활을 회복시키려는 것은 결혼생활이 줄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우리가 경험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인간적인 관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관점입니까? 전능자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십니다. 끝나버린 결혼도 다시 살려내십니다. 죽어버린 사랑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순종하기만 하십시오.

2.3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값을 지불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 사람들은 참 행운아야 정말 복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잖아”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하지만 복이 많은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한 것입니다. 좋은 결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복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가꾼 열매입니다.

훌륭한 결혼 생활은 노력을 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겸손과 정직, 비이기심과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변화시키려는 소원과 지속적인 노력과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결혼에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루밤새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개선하는 일에 시간을 드려보십시오.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결혼은 대단한 노력을 지불한 열매입니다. 하늘로부터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십시오.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요? 기분에 따라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기도하면서 순종하십시오. “기분도 아니고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의 삶이 복되길 원하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바를 순종하길 원합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어쨌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감정을 앞세우지 마시고 바른 행동을 뒤따르게 하십시오. 기도하고 순종하면 감정을 따라올 것입니다. 감정이 생길 때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먼저 기도하고 순종하면 감정을 뒤따를 것입니다.

2.4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풀지 못한 상처를 해결하십시오.

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용서를 구하고 다음 용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의로운 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큰 능력과 놀라운 효과를 가져옵니다.”(약 5:16, 현대어성경)

잘못한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믿지 않는 배우자에겐 우선 전도하려고 화장실까지 성경말씀을 붙이고 몰아갔던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알았으면 하는 열심이 지나쳐서 힘들게 한 것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미안해요” “잘못 했어요”면 충분합니다. 이 말들은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놀라운 효력이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베푸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관용을 베풀어 언제나 남을 용서하고 원한을 품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골 3:13, 현대어성경)

결혼은 매일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질 않습니다. 30주년 결혼기념여행을 해도 용서를 구할 일은 생깁니다. 아니면 휴가에 돌아와서도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두고도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이 일용할 용서도 구해야 합니다.

서로 다르기에 사물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 말할 수도 있고 상처 주는 일도 합니다. 그래서 용서를 매일 구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데 필수적입니다.

“다신 용서하나 봐라”고 말하는 것은 결혼을 위기로 몰아넣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분한 마음을 품으면 기뻐하는 이는 마귀입니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용서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혼을 망치려면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아름답게 가꾸려면 서로 용서하십시오.

2.5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십시오.

혼자서 씨름하지 마십시오. 후원자를 확보하십시오. 여러분의 결혼관계를 튼실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과 사랑을 갖는 사람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여러분이 상처를 받으면 그들은 여러분을 상처받는 자리에서 구출하려고 할 뿐입니다. 위로를 받는 데는 부모가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에는 그분들은 도움이 안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집은 지혜로 지어지고, 명철로 튼튼해진다.”(잠 24:3, 표준새번역) 또 말합니다. “충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 들여라. 그리하면 마침내 지혜롭게 된다.”(잠 19:20, 표준새번역)

우리 교회는 그래서 상담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가정생활 세미나를 해마다 하고 부부세미나를 가끔 하고 있습니다. 30가정 넘게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신청을 받아들이지 못한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를 기다려 주십시오.

꼭 기억하십시오. 혹 문제가 생길 때 혼자서 씨름하지 마십시오. 필요한 도움과 지원을 찾으십시오. 후원자명단을 확보하십시오. 성공적인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건강하고 성숙한 결혼을 위해서 구역이나 교회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지옥 같은 순간을 통과하고 30년, 40년 살다보면 정말 함께 산다는 것이 축복인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2.6 결혼생활 되살리기 위해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 12:2, 표준새번역)

우리 삶과 믿음의 시작은 그리고 완성은 예수님이십니다. 초점을 잃지 마십시오. 지난주일 말씀드렸습니다. 결혼은 제대로 서려면 세 다리로 된 의자와 같다고요. 두 다리로는 안정되게 설 수가 없습니다.

결혼은 나와 배우자 두 사람만으로 꾸려가도록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나와 배우자,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순종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빌2:13, 현대어성경)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랑하질 않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선택입니다. 누굴 사랑하고 누굴 사랑하질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사랑의 감정은 뒤따를 것입니다.

조금도 그럴 마음이 없다고 강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변화된 새 마음을 주고, 또 새 정신을 불어넣어 주겠다. 내가 그들의 가슴속에서 돌처럼 단단해진 마음을 들어내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겠다.”(겔 11:19, 현대어성경)

잘못된 사람과 결혼했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단지 잘못된 방법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넣고 들으시고 서약이 끝나면 다시 “예”라고 대답해 보십시오.

“신랑 000 군은 신부 000 양을 아내로 맞아,” “신부 000 양은 신랑 000 양을 남편으로 맞아”

“한 평생 길이 사랑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 때나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그 어떤 때에도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부부의 신의와 순결을 굳게 지키기로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까?” 아직도 배우자가 곁에 있는 분이라면 “예”라고 대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서약을 지키도록 하실 것입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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