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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인도함을 받는가?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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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자유인이다. 세상 근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근심을 한다. 그것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구영열에 대한 근심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영열의 짐이 없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멸망받는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부터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목적은 증거하기에 있다. 그 증거 목표는 바로 두말할 것 없이 영혼의 구원이다.

우리 오목천 성도들은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죄인의 구원함에 진력하는가? 구원을 위해서 몸이 움직이는가? 잃어버린 자에 대해서 기도하며 마음이 드려지는가? 믿지 않는 사람을 볼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드는가? 이 몇 가지 질문에 "아멘"으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더욱 성령을 사모하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무능할 수 밖에 없다. 성령님께 깨어있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영혼 구원을 가져온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전도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영으로 하나님의 사정을 알게 되어 영의 인도를 받는 일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있다. 그리고 고전2:10∼11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당연히 성령 충만을 받아야 사람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된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성령이 한 사람 전도하도록 지시하고 인도해 주어도 분별을 못한다. 아니 순종도 못하고 하나님이 무슨 일을 원하시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무능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성령 충만함의 명령을 본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 성령의 인도를 외면하거나 거절하고 숨어버린 무능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빌립은 성령님께 깨어있고 영혼을 건져내기 위한 하나님의 영과 일치되어 일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있는 빌립은 성령의 인도를 순종함으로 받고 있다. 어떻게 인도함을 받는가?

첫째, 광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 (행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길은 광야이다. 광야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이다. 광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전도하러 가기에 합당치 않다. 그러나 빌립은 광야로 인도하는 주의 사자 앞에 일어난다.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하였다.

광야로 가는 인도하심은 너무도 막연한 인도하심이다.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는 빌립의 사역은 많은 표적도 나타났고 사마리아 도성에 큰 기쁨이 주어진 열매의 현장인데 그곳을 뒤로 두고 빌립은 광야라는 장소에로 가는 막연한 인도하심에 순종하였다. 빌립은 어리석은 자처럼 순종했지만 주의 사자의 인도하심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그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있는 자를 전도하라는 뜻이 있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이 막연한 주의 인도를 따르기 어렵다.

오늘날에도 세상적 지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인정하지도 않고 성령의 도우심을 모른다. 사람들은 성령을 깔보고 무시하며 자신의 포부와 계획으로 성령의 계획을 압도하고 주도권을 자기 편리로 장악한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사람의 정책이 성령의 정책을 대신한다. 자아가 성령의 자리를 찬탈한다. 그래서 성령은 지금도 감화 강동하시며 인도하시지만 성령은 더 이상 성도와 교회를 준비시켜 보낼 수가 없다. 저기로 가면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가 있는데 구원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이가 있는데 성령의 도우심을 모르기에 가지 않는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교회는 사교장이 되어 버리고 잠들어 버린다. 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놓쳐 버린다.
오늘 빌립처럼 성령께 자신의 자리를 양도하고 복종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진행될 수 있다면 부흥이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둘째, 병거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 (행8:29)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셨다. 광야에 막연하게 나와 지나가는 병거를 보던 빌립은 세밀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That Chariot, Any Chariot이 아니다. 광야에 지나가는 병거가 지정되고 있다. 에디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권세있는 자가 타고 가는 이 병거로 가까이 가라고 지정되고 있다. 성령은 자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에게 더욱 세밀한 인도를 베풀어 주신다. 자신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자를 발견하면 성령은 더욱 역동적으로 역사해 주신다. 빌립은 '이 병거로'라는 인도하심을 받았을 때 거리끼지 않았다. 이방의 지체 높은 사람의 병거가 화려하다고 주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뛰었다. 달려갔다. 행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뜀박질로 달려가는 사람, 빌립은 얼마나 뜨거운 열정이 있는가? 또한 성령님을 인정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명령을 즐거움으로 행하는가? 놀라운 사람 빌립은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이방인이란 편견의 벽을 다 무너뜨렸다.

오늘날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 춤출 듯 뛰어갈 사람,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를 들은 듯 뛰어나가는 육상 선수처럼 전도할 자에게로 달음질할 사람이 누구인가? 성령을 인격의 신으로 모시고 예배하며 순종해야 한다. 평신도 사역자인 빌립 앞에 서면 내가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성령을 사모하지 않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원하지 않고 있기에 그의 음성 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아! 어리석은 것으로 가득 차서 무가치한 것만 소유하기 원하는 이 세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목회자의 모습이다. 어리석은 육의 생각, 이것을 깨뜨리고 비고 빈 마음에 성령을 갈망하자. 성령을 구하자. 그러면 전도의 증인이 된다. 전도를 위해 뛰어가는 자가 된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하는데 보지 못하던 집사가 나와서 너무도 열심히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밤낮으로 기도해서 감사하고 너무도 고마워서 나중에 물어보았다고 한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은행에 대출받은 돈을 갚기 위해서라고 하여 겉으로는 축하해 주었지만 '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융자만 받기 위해 기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슬했는데 마음 속에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성도들이 무엇을 구하는지 알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있지만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 같아도 사실 구하지 않고 다른 기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뜨겁게 기도를 해도 영혼에 대한 음성,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정녕 교회가 살고 나의 신앙이 살려면 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우리 오목천 성도들은 정말 보혜사 성령을 구하자. 받을 줄 믿고 일어서자.

셋째, 영혼 구원의 열매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 (행8:35)

행8:35을 보면 병거에 올라타고 가게 된 빌립은 에디오피아의 큰 권세있는 내시에게 말씀을 가르쳐 복음을 전한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이 이사야의 글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성령이 함께 하였다. 길을 가던 내시는 행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라며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내시가 된다.

고전12:3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영혼을 구원해 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빌립은 온전히 쓰여지고 있다. 나의 가르침에 예수가 드러나야 한다. 나의 복음 제시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증거되어야 한다. 복음이 이해되고 구원의 선물을 받아드리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우리가 영혼 구원의 열매를 보지 못하는 것을 끝까지 성령께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안될 것 같아요." 내 계산으로 판단을 미리 내리기 때문이다. 빌립은 성령께 맡기므로 내시를 세례 받게 하였고 복음이 에디오피아로 들어가는 일에 쓰임 받았다. 영혼 구원의 열매를 인도함 받기 위해 더욱 성령님을 인정해 드리자. 나의 복음 전함에 성령이 교사가 되시면 열매가 주어진다.

넷째, 새로운 사역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 (행8:39)

행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성령과 일체가 된 빌립은 전혀 새로운 사역지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행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우리도 성령에게 이끌리어 오늘은 청구, 내일은 푸르지오, 모레는 우림, 성령의 이끌어 주시는데로 가자. 그곳이 가까운 곳이든지 먼 곳이든지 불평하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며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림도 환영하며 받아드리자. 오늘은 수원, 내일은 한국, 모레는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사역을 하자. 아니 오늘도 수원, 한국, 세계, 내일도 수원, 한국, 세계, 모레도 수원, 한국, 세계로 나아가는 인도함을 받자. 성령의 이끌림으로 새로운 사역을 감당하며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자.

성령의 사람 토레이는 무디가 세상을 떠난 후 뜨겁게 기도회를 인도하였다. 세계 각국에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였다. 어느 날 성령께서 그를 여러 나라에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는 사역으로 이끈다. 토레이는 시카고 에브뉴교회의 사역과 성경학교 사역을 내려놓고 호주로, 인도로, 영국으로 간다. 이 집회가 20세기 초의 부흥, 1904년 웨일즈의 부흥, 1905년 인도의 부흥, 1906년 아주사의 부흥, 1907년 한국의 부흥이 되었다. 영혼을 향해서 보내시며 이끄시는 인도자가 성령이시다. 성령에 취하여 인도함을 받자. 거절하면 기회를 놓친다. 순종하면 영혼을 얻는다.

오목천 태산아파트의 맞은 편 집에 살던 이 가정은 아이가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 녀석이 공부를 못했는지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죽자고 하였다. 아들은 차 밖으로 튀어나가고 아버지가 차에 불을 질러서 가족이 모두 죽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 아들도 아픔과 괴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여 죽었다. 이 가정에 복음이 없었기에 공부 못하는 문제가 가문의 몰락을 가져왔다. 복음이 들어가면 구원 얻을 이들이 많은데 성령의 인도를 거절해서 구원 받지 못한다.

우리는 전도 구조대다. 성령이 이끄시는 인도를 받아 영혼을, 새 생명을 건져 올리자.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기도이다. 성령 충만을 위해 6월은 기도의 날로 작정하자. 한 사람을 건져내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이다. 일어나는 순종, 뛰어가는 순종, 새로운 사역을 맡게되는 순종이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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