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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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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의 가치에 대해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영적인 소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가치와 그 능력에 대하여 20세기 최고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저서“역사의 연구”에서 밝히길“기독교는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중명하고 있습니다.

김동길씨는 말하기를“우리의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두 가지가 있는데 교육과 종교가 그것이다. 이 땅의 교육은 그 기능을 상실한지가 오래이다. 지금의 교육은 지식인과 기술자는 되게 할지 모르나 교육의 근본인 인격자를 만드는 데에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 우리교육의 현실이다. 이제 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기독교 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관계가 곧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날 밤에 하신 설교입니다. 이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꿈꾸고 계신 교회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 꿈을 말씀하시되 포도나무를 비유로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우리들의 모습은 열매가 풍성하게 맺힌 포도나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곳은 풍성한 열매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조사한 내용 가운데 이러한 대목이 있었습니다.“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나라”(민수기 13:23) 하나님이 인도하신 가나안 땅은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로 풍성한 열매가 있는 기름진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대해 보고하기를“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민수가 13:27)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이처럼 풍성한 곳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본문인 요한복음 10:1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처럼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육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신 배경에 대하여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방에 밖에 있는 포도나무 가지가 창문 사이로 들어온 것을 보시면서 말씀하셨다고 하며, 혹은 달빛이 비취는 포도원을 내다보시면서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 하고, 또 어떤 분은 당시 창문에 새겨져 있는 포도나무를 상상하시면서 말씀하셨을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일행이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가시는 도중 포도원을 보시면서 말씀하셨을 것이라고도 예측했습니다.


一. 포도나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는 특별히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시면서“나는...이다”라고 표현한 곳이 여러 번 나타나 있습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라”“나는 생명의 물이라”“나는 선한 목자라”“나는 생명의 떡이라”그리고 본 문에서는“나는 포도나무라”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보편적이고 쉬운 낱말들입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빛, 물, 떡, 목자, 나무 등 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 특정은, 모두가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들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고, 빛이 없어도 그렇고, 먹을 양식이 없어도 안 됩니다. 우리가 포도나무 가지라면 줄기가 없으면 안 됩니다. 줄기 없는 가지는 곧 말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하셨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가 원 줄기에서 끊어지면 말라버리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는 이처럼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내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울 사도는 고백하기를“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1)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그가 살아가는 삶 자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그의 삶의 목적이며, 존재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관계를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이 곧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만족이 있고,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 무엇을 하겠습니까? 마귀의 자식으로, 죄의 종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또한 무엇을 이루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7:26에는 예수님을 떠난 삶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공 같으나 실패입니다. 행복 같으나 불행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복음 12:1-2)하셨습니다. 예수님 없는 지식, 예수님 없는 물질, 예수님 없는 권세, 이는 모두가 허무한 것으로 끝날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솔로몬은 고백하기를“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도서 1:2~3)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잘려나간 가지와 같습니다. 그 가지는 곧 불태워지듯 그리스도 없는 삶은 영원한 멸망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二. 예수 그리스도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본문 1절에“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하셨습니다.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을 볼 때 거짓 포도나무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1-4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21의 말씀에도“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에는 황금으로 포도나무를 조각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셨으나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죄악의 열매를 맺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타낸 것은 쓸데없는 들 포도와 같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나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와 같이 그들의 영적 눈은 어둡고, 귀는 진리를 듣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하셨습니다.


三. 맺혀야할 열매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포도나무는 포도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된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혀야 하겠습니까?


1. 내 자신의 내적 변화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먼저 변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2~24의 말씀에“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하셨습니다.

구습을 벗어버린 새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5:22-24의 말씀에“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이란 가장 소중한 열매이기에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맺혀야 할 열매가 사랑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의 말씀에“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열매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살게 내여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1-3)하셨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콜롬비아대학 의과대학에 지원을 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불합격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될 자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될 자격이 없듯, 사라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 있어서도 사랑이 없으면 그의 신앙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요한일서 4:7~8에는“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하셨습니다.


2. 외적인 복음증거의 열매입니다.

복음 증거에 대하여 하나님은 매우 시급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디모데후서 4:1~2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냥두면 그 영혼이 지옥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은 시급합니다. 그런데 사탄의 전략은 내일로 미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이라 하시는데 사탄은 자구만 다음으로 미루도록 미혹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사였던 D.L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벙어리라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벙어리로 태어나는 것을 커다란 재난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 사실에 큰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벙어리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교회에는 그러한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못한다. 그들은 정치, 예술, 경제, 과학, 유행 등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곧잘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는 벙어리이다.” 복음증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무디의 심정을 밝힌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찾으시는 포도나무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 많이 맺혀야 포도나무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四. 열매 맺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자기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하셨습니다.“붙어있다”는 것은“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4~10절의 말씀에“거한다”는 말씀이 9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거한다”는 것은“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삶의 포도열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의 순종을 가리킵니다. 본문 10절에“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하셨습니다. 계명이란 어떤 계명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계명이란 사랑입니다. 본문 9절과 12절에“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하셨습니다.

계명의 순종은 곧 사랑의 실천이라 하셨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갈 때 예수 그릿도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이 곧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내적 열매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 그 영혼들이 감동을 받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五. 열매 맺음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곡식이나 과일 나무에 있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량종자라 하여 농부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잘 보호하고 육성합니다. 번식을 시킵니다. 좋은 열매 많이 맺는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마음은 이와 같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본문 8절에“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은 영광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언 4:8)하셨습니다.

미 우주선 패스파인더호의 화성착륙은 “천문학의 승리”였습니다.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는 요한 케플러(1571-1630)라고 합니다. 그는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단순히 원형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초점으로 타원의 궤도를 그린다는 이론을 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말하기를 “천문학자는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연이라는 책에서 무언가 찾도록 허락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일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도할 때마다‘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작곡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유명한 곡 가운데 “천지 창조”가 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톤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입니다. 그때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곡이 공연될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날 지휘를 하던 지휘자는 정말 놀랍게 이 곡을 지휘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좌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킵니다. 말합니다.“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은 이때 청중들을 향해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말했습니다. 그는“아니오” 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라고 하고는 공연장을 급히 빠져 나갔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의 영광이 있습니다.


2.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본문 7절에“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의 조건이 열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좋은 열매 맺는 과일나무를 사랑하며 돌보듯, 아름다운 열매 즉 심령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를 사랑하셔서 이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가득한 행복이 있습니다.

본문 11절에“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행복입니다. 땅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순간적입니다.

마랄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이렇게 공허함 속에 살아가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하셨습니다.

행복이란, 헬라어로 “유다이모니아”라고 합니다. “다이모니아”란 “하나님”이란 말이며,“유”란 “같이”라는 말로 “하나님과 같이”란 말입니다. 즉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만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자리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채워도 참된 행복은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마치 포도나무 줄기에 가지가 붙어있듯 주안에 거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처럼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참된 보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활의 푯대를 삼고, 주님의 말씀이 내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맺혀야할 삶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이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이 행복하도록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한 축복이 풍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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