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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숙(賢淑)한 여성 (잠 3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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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의 발전을 과거 100년의 발전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계공업의 발전으로 많은 수고를 덜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견우는 밭을 갈고, 직녀는 배를 짜지만 오늘의 견우가 했던 일은 경우기 트렉터에 뺏기고, 직녀는 자동직조기에 그 할 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기계의 힘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여성들의 근면과 아름다운 빛깔은 변해만 갑니다. 이 시대에 기독교 여성이 먼저 현숙한 여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숙하다는 뜻은 "마음이나 몸가짐이 어질고, 정숙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현숙한 여인은 매우 부지런하고(13-15), 지혜롭게 일을 하고(16-19),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줄 알며(20), 가족들과 남편을 잘 돌아보아 사람들로 칭찬받게 내조하고(21-23), 지혜로운 언어로 사람들을 도와주는(26)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남편의 자랑이 된다고 잠언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현숙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잠언기자는 말합니다(30).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여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10)고 강조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남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돕는 배필로 여자를 허락하였습니다. 즉 부족한 남자들을 온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여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된 것이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껍데기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진정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 이 시대가 소망을 잃어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잠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지혜를 얻는 것보다 현숙한 여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잠언이 솔로몬, 르무엘등 왕의 잠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잠언의 마지막에 강조된 것처럼 현숙한 여인을 얻는 것은 인생을 성공하는 것과 동일하게 중요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믿는 성도는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렇다면 현숙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부지런해야' 합니다.

여인은 본문 13절에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5절에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그리고 24절에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일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를 짜고 근면했습니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기계문명이 인간을 안일주의, 나태주의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기계를 움직이는 노예가 되었고, 여자는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졌고, 바느질보다 30배 빠른 재봉틀이 나오더니 이제는 재봉틀도 자취를 감추고 어디서든지 돈만 가지면 아이 옷, 어른 옷, 속 옷, 겉 옷 할 것 없이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게으른 여성을 만들어 놓았고, 시간이 남아돌아가니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육체미 운동, 댄스홀, 수영장, 오락장으로 몰려다니다가 결국에 돌이키지 못할 범죄의 자리에 빠지고 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현숙한 여성은 게으르지 말고, 항상 부지런한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신부인 우리 성도는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전도하는데 열심을 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아멘>

2. '고운 마음씨'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여인은 남편에게 믿음직한 대상이 되었고, 남편에게 선을 행하였고, 남편을 보필하여 출세 시켰습니다. 29에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여성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에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값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의 향기를 맛보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의 향기는 고운 마음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성은 신체나 힘에 대하여 남자보다 약하게 창조됐지만 사랑과 인내와 덕에는 남자보다 강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여자의 노력에 따라 남편을 성공도 실패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에 축복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남자는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자기의 아내를 지배하지 못하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아합 왕은 왕후 이세벨 때문에 나라도 가정도 자신도 망했습니다. 자녀와 가정과 이웃에 고운 마음씨 가진 여인이 현숙한 여인입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얼마나 엄청난 일을 맡은 여인입니까. 처녀로 아이를 잉태할 때부터 예수께서 죽으실 때 까지 마리아가 얼마나 고난의 일을 많이 당했습니까. 그랬는데도 마리아는 그 일들을 모두 소리 없이 잘 감내해 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그렇게 큰 일을 감수하면서도 마리아는 이름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름 없이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원래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소리가 별로 없습니다. 여인들이 소리가 없는 것은 지금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말없이 소리 없이 일합니다. 그러면서도 할 일을 다 합니다. 그런 뜻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현숙하다는 말은 조용하다는 뜻,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면 고난을 받더라도 감사합니다. 라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소유한 여인이 현숙한 여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어렸을 때 봄이면 겨우내 자란 보리밭을 김매줍니다. 늦여름 먹을 것은 시원찮고 날씨는 덥고 내리쪼이는 햇빛 아래서 동네의 아낙내들이 모여 보리밭에서 풀을 뽑습니다. 보면 얼마나 더운지 모릅니다. 그때 여인들은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젖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때 어린 아이들이 그 보리밭까지 찾아와 젓을 달라고 칭얼댑니다. 그때 아이들은 참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들은 그 아이들을 마다하지 않고 땀범벅이 된 젖가슴을 열고 아이에게 젓을 먹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인데도 그 모습에서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여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힘을 세상의 여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어린 아이가 하나뿐 입니까. 집에는 큰 아이가 또 있습니다.

작은 아이보다 더 큰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큰 아이, 이 남편 때문에 세상의 여인들이 얼마나 또 속을 썩습니까. 어떤 남편은 아이들 보다 더 일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아내들은 그런 큰 아이를 그냥 말없이 데리고 살아줍니다. 때로 역겨울 때도 많을 것이고 분통터질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냥 봐주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인내의 힘입니까. 여인들에게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가정을 유지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삶을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힘이 없으면 이 세상의 가정들은 파괴되고 관계가 쉽게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가정이 쉽게 파괴되는 요인들을 보면 모두 여인들이 전과 같이 참고 인내하는 비율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오늘 여인들은 예전과 같이 무작정 참고, 인내하고 지혜를 발휘하기 보다는 쉽게 버리고 포기하고 파괴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정들이 결손 되는 비율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정의 구심점은 어디까지나 아내들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들 때문에 가정이 지켜지게 됩니다. 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올바른 마음, 중심 때문에 마음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뀌어 졌기 때문인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으로 바뀌어진 아름다운 마음씨,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마음씨를 소유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받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거룩한 모성애'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 27~29절에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집안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은 자녀를 잘 보살피는 일인데 본문에 칭찬 받은 아내는 이 일을 잘 한 것입니다. 섹스피어는 "약한 자여! 네 이름이 여자"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돈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그러나 여자는 그보다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자녀 앞에 여인은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19세기를 뒤흔든 나폴레옹은 "나의 전부는 어머니의 덕택이다."라 했고 1,300종의 발명 특허를 낸 에디슨도 '그 어머니의 신앙을 통한 격려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한사람의 훌륭한 어머니는 100사람의 교사보다 낫습니다. 가정에선 살림살이 잘하고, 교회에선 성경과 기도와 봉사로, 사회에선 자녀를 키워 훌륭하게 배출해 내는 여성 모성애를 가진 여인이 현숙한 여성입니다.

동시에 신부도니 우리 성도는 나 때문에 영적인 자녀가 해산되는 전도를 잘하며, 신앙을 잘 이끌어 그리스도의 제자 만드는 사역을 잘 검당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내가 속한 구역과 기관에 귀한 일꾼이 세워지도록 영적인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4.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 20절 "간곡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여성들은 허영 병, 욕심 병, 사치 병, 과시 병에 걸려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세상적인 것이 전부 인줄 압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몸치장, 주택 자랑, 가구 자랑, 자가용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거듭나고 구원 받으면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게 도비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자기 영광 받기에 급급한 세대입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 여성들은 거리에 나가 만세를 부르다가 587명이나 공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 후에 애국 부인회가 조직되어 감옥에 갇힌 애국지사들을 돌보았고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1920년 물산장려회가 조직되어 국산품애용 민족자립 경제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민족을 이끄는 일에 여성분들이 앞장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인들은 국산보다 못한 외제를 10배나 더 주고 사들입니다. 카페트 한 장에 3,000만원에 물건이 없답니다. 우리 기독여성이 먼저 앞장서서 절약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빈곤한 자에게 선덕을 베풀고, 부패한 사회에 공의의 밑거름이 되고 선을 베푸는 여성이 됩시다. 초대 한국교회 여성들은 하루 한 끼 절미운동하여 가난한 자를 도왔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성경에 보면 룻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도 참 지혜로운 현숙한 여인입니다. 현숙한 여인하면 우리는 이 룻이 더 점수를 많이 줄 수 있습니다. 룻이 시모를 따라나설 때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입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고 아무 소망이 없는 시모를 따라서 남편의 나라로 갑니다. 아무 소망이나 희망의 근거도 없는데 그 룻이라는 여인은 그냥 시모를 따라 나섰습니다.

오늘 현대인들 같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따라나설 사람은 오늘 현대인들 가운데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여인은 그 길을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섭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시모의 말을 막아가며 그 길을 주저하지 않고 갑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어머니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고, 어머니가 가는 곳이 내가 가는 곳입니다“. 아마 이 고백이 룻의 면면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대목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대목에서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룻이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이 길을 순탄하게 열어 놓으십니다. 예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룻이라는 여인의 현숙함은 땅에서도 알아주었고 하늘에서도 알아주게 되었습니다. 우선 룻의 이야기를 듣기에도 마음이 감동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현숙함이 풍기는 느낌이고 향기고 아름다움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의 구심점은 아내들이고 여인들이고 어머니들입니다. 여인들이 모두 지혜를 발휘해서 모두가 현숙한 여인들이 되면 이 세상의 가정은 건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인들이 이 신앙심을 가진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바로 그런 여인일 것입니다. 요게벳은 참 으로 현숙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아주 참담한 시대에 아들 모세를 낳습니다. 아들을 낳았어도 마음 놓고 기를 수가 없는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 기르다가 아이울음소리가 커지자 발각되면 모두가 죽음을 당할 때인지라 그 아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나일강물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보고자 숨어서 지켜보다가 마침 강에 목욕하러 나와 있던 공주의 손에 건짐 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달려가 그 아이의 유모가 되기를 자청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아이에게 민족의 정신을 심어주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교육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 모세는 성장해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일하다 마침내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 하는 사명을 충성스럽게 이루어 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여인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생각이 크고 깊고 그러면서도 조용히 그 엄청난 일을 해 냅니까. 우리는 이 여인을 현숙한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면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는 것을 믿고, 앞장서서 섬기며, 헌신하고, 한 알의 밀알이 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신부로 지혜롭게 살아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5. '말에 덕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4가지 씨가 있엉야 합니다.

1) 모든 자족에게 안식을 주는 착하고, 정직한 '마음씨'
2) 자신의 외형 관리를 위한 고운 '맵씨'
3) 가족의 건강을 책일 질 수 있는 아름다운 '솜씨'
4) 그러나 그 중에 한 가지 더 가장 큰 영행력을 주는 "말씨"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씨'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역성경에서 “생명”으로 번역된 "네페쉬"이란 히브리어는 '영혼이란 말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한 것을 볼 때, 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그의 영혼은 상처를 입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사실 우리의 언어는 나 자신의 '마음의 표현이요, 마음의 반영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결국 잠언 말씀대로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기"(잠13:5) 때문입니다. 여기서 "흉악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아쉬"에는 "악취가 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우리의 흉악함이나 잘못된 언어들은 매우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나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겉포장을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하여도 그 안에서 생선이 썩고 있다면 그 악취를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위장하려하여해도 우리가 썩은 존재라면 다른 사람을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히길 즐거워하게 되고 결국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런 행위를 하게 되고... 그래서 잠언은 "멸망"(잠13:3)에 이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이고, 하나님을 향한 경건의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라고 기도합니다. 계속 이어서 다윗은 이 입술을 여는 열쇠가 마음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시141:4)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차 잠언기자가 강조해온 마음을 지키는 일이 우리의 입술을 지키는 열쇠임을 깨닫게 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여인은 고운 말씀 전에 남을 헐뜯고 흉보며, 이간질하고 숙덕숙덕 합니다. 미련한 말은 마귀의 괴술에 빠진 자 임으로 잠시 사람에 동정 받아도 결국 망합니다. 옳치 못한 말은 부부 사이에 상대방에게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자기 몸을 찍는 칼이 되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잠언서 18장을 읽어 보면 미련한 사람에 대하여 잠언기자는 말하기를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잠18:1),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는"(잠18:2) 사람,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잠18:9), 그리고 "교만한"(잠18:12)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미련한 자들은 "다툼"을 만들어내고(잠18:6), 남에 대하여 말하기를 매우 즐거워합니다(잠18:8).

"쓸데없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당연히 '독을 머금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쟁에 참여했던 아들로부터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매우 우울한 목소리로 지금 친구 한명과 같이 있는데, 그는 한쪽 팔과 다리 그리고 눈까지 잃은 친구라고 말을 합니다. 딱하게도 그 친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는데, 함께 살면 안 되겠는가하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완곡한 부탁에 "한 일 년은 같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아들은 "평생을 같이 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말하길 "얘야, 그런 친구는 너에게 짐밖에 안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장애자와 어떻게 평생을 살 수 있겠니?" 그것으로 통화는 끝났는데, 다음 날 그 어머니는 아들이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런 죽음에 이른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전화상의 친구는 바로 아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스스로 가족들에게 짐이 될 것을 생각하여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말을 한 결론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을 낳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의 말은 사람들을 빛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듭니다.(잠10:21)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 것입니다. '아름다운 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잠11:30; 단12:3)

골 4:6절 "말에 소금을 쳐서 고르게 하라."고 말씀 합니다. 친절하고 유익하고 은혜로운 말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싸움의 불씨도 혼란의 불씨도 분쟁의 불씨도 불화의 불씨도 '미련한 사람의 한마디 말'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교회여성은 말에 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문제의 85%가 여성도의 말에서 시작 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미스바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주님 심판대 앞에 설 때 "무슨 무익한 말도 심판 받게 되는데" 덕이 있는 말씨를 잘 구사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따라합시다. "입술을 잘 지킵시다. 덕 있는 말을 사용합시다." 할렐루야!

6. 겉모양 보다 마음을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 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외모보다 마음을 단장을 잘 해야 합니다.

오늘날 여성은 스타일 경쟁, 다이아 반지 경쟁, 고급화장품과 피부경쟁에 온갖 정성을 쏟습니다. 그러나 먹고 다듬는 일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일은 '인격'과 '값있는 생활'입니다.

"인생은 어디서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요. 무엇을 입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인간의 몸은 풀 같고 그 생명은 꽃같이 시듭니다. 우리는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고, 주의 일을 멋지게 감당하며, 남은 생애 후회 없는 삶을 보내야겠습니다.

여성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거리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여성들이 주안에서 모두 건강하고 향기 나고 아름다움으로 세상에 신앙인의 역할을 다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잠언 31장 30절을 보면 “고운 것도 거짓되며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깊은 신앙을 가진 여인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현숙한 여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영적인 신부인 우리 남성들도 현숙한 여인과 같은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여인 중에서도 얼마 안 되는 여인들에게만 현숙하다고 인정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여인을 만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본문을 통해 요구되는 이런 지혜로움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숙한 여인입니다. 동시에 에스더와 안나와 같이 항상 성전에서 국가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위해 기도하고, 마리아 같이 옥합 깨뜨려 주님 사업에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위해 자신을 던져 헌신한 현숙한 여인처럼 우리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에 몸, 마음, 몰질, 생활, 시간, 생명 드려 수고하고 섬기는 헌신 자가 되시어 예수님의 영적 신부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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