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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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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연습 없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히 소중한 것일수록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기들이 일어나 걷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합니까?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섭니다.

공부도 연습입니다. 문제를 한번 틀렸다고 못한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자꾸자꾸 하다보면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이 나옵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과는 ‘동업’하지 마십시오. 실패가 없기 때문에 성공의 가치를 모릅니다. 다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그러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사람이 여러분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거리를 다니면서 나이 드신 분들이 걷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노년이 되면 걸음을 걷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힘들더라도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걷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요, ‘연습’은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하다가 그만두기 쉽습니다.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문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운동기구를 사는 사람의 90%는 그 기구를 쓰지 않습니다. 먼지만 뽀얗게 묻습니다. 옷걸이로 사용하는 수가 많은데, 옷 거는 부분만 깨끗합니다. 여러 사람의 공통적인 경험입니다.

연습에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간절함은 ‘목적’이 있어야 생깁니다. “왜 이것을 하는가?”

오늘 우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라는 주제를 놓고 말씀을 전합니다. 영적인 성장에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침체기나 슬럼프가 왜 없겠습니까?

다윗처럼 영적인 거장도 깊은 슬럼프에서 헤맨 적이 많았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시편 28:1-2

문제는 거기 그대로 주저하지 말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방향이 있습니다. 주님의 성소가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고통을 겪을 때, 잠시 교회 쪽으로 의자의 방향을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들으실 것입니다.

왜 우리의 영이 성장해야 합니까? 구원 받기 위해서입니다. 나 스스로도 구원하고 남도 구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장해야 합니다. 주저앉아 있으면 너 나 없이 망하고 맙니다.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세상은 나 때문에 복 받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이 그랬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세기 12:2-3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갔을 지라도,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감옥의 죄수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7년에 걸친 큰 기근으로 죽을수밖에 없던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타는 버스는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은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경영하는 비즈니스는 여러분이 파는 물건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저 집에 가면 평안이 온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게 된 데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2006년 6월 첫 주일에 하나님께서 금문 강단을 통해 이 말씀의 강물을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것은 수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1-2절). The Spirit clearly says that in later times some will abandon the faith and follow deceiving spirits and things taught by demons. Such teachings come through hypocritical liars, whose consciences have been seared as with a hot iron.

세상에는 우리를 미혹케 하는 거짓 가르침이 많습니다. 말세가 되면 온갖 거짓이 가득하게 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미혹할 것입니다. 영적인 가치관을 흐리고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별해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거짓 정보, 해로운 정보는 버려야 합니다.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6절) If you point these things out to the brothers, you will be a good minister of Christ Jesus, brought up in the truths of the faith and of the good teaching that you have followed.


우리는 “예수님의 선한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형제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여기서 “일군”은 디아코노스(diakonos)입니다. “집사”(deacon)라는 말이 여기서 났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직분으로서의 집사’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이 ‘섬김’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가장 귀한 섬김은 바른 길을 가도록 깨우치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삶’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7절).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딤전 1:4에 언급된 “끝없는 신화와 족보”입니다. 사실이 아니라 상상의 이야기가 신화입니다. 족보 또한 그렇습니다. 거짓으로 만든 족보로 양반 행세 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족보가 거짓으로 꾸며졌습니다. 너나없이 양반으로 행세하게 되었습니다.

신화와 족보 같은 꾸며낸 것이 우리의 인격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경건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함이란 무엇입니까? 영어로 godliness입니다. 하나님(God)에서 난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실한 사람이 지니는 성품입니다. 이에 대한 반대말은 불경건(godlessness)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의 마음태도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8절). For physical training is of some value, but godliness has value for all things, holding promise for both the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육체의 연단, 즉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는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금생, 즉 이 세상의 삶과 내생, 즉 다음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12-13절). Don't let anyone look down upon you because you are young, but set an example for the believers in speech, in life, in love, in faith and in purity. Until I come, devote yourself to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to preaching and to reaching.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연소하다는 것, 경험이 없다는 것,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경험이 아닙니다. 나이가 아닙니다.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우리가 경험이 많다는 것, 그런 것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건함’으로 시작해서 ‘경건함’으로 마쳐야 합니다.

1. 말과, 2. 행실과, 3. 사랑과, 4. 믿음과, 5.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영적인 일은 다른 어떤 ‘경력’을 내세워 될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 Be deligent in these matters give yourself wholly to them, so that everyone may see your progress.

하나님을 아는 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삼국지>의 장비가 어떤 다리 이편에 서서 마주 오는 십만 대군을 다 무찔렀습니다. 그는 십만 명이 가지는 힘보다 더 큰 집중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한 번 살고 천국에 갑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지도자’로서 서야 합니다. 영적인 감화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절). Watch your life and doctrine closely. Persevere in them, because if you do, you will save both yourself and your hearers. 

우리는 끝없는 훈련의 길을 갑니다. 계속 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살 길입니다. “너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우리 스스로는 물론 우리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에 깨어 일어납니다.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는 매일 어떤 말씀을 전할까? 늘 묵상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성도들만 챙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내가 살 길임을 압니다.

어미닭이 모이를 찾으면 “구구구!” 소리를 내면서 병아리들을 부릅니다. 그 모양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어미는 언제나 먹나?”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아리들은 제 스스로 먹을 것을 찾다가, 어미가 “구구구!” 하면 쏜살처럼 달려갑니다. 그리고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으로 먹어치웁니다. 누구 하나 “아니, 이제는 어머니 잡수세요!”하는 병아리를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미닭이 너무 안타까워서 병아리들을 떼어놓는다면 어떨까요? 그것이 어미닭에게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미닭은 새끼들을 돌보면서 그것이 그에게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누구도 은혜를 수동적으로 언제까지나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섬김(봉사)이 없이 받아먹기만 해서는 아무리 좋은 음식으로도 기쁨이 없습니다.

봉사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듣는 기쁨보다, 가르치면서 받는 기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처음 개척교회 나갔을 때 만 스물 한 살 되던 여름이었습니다. 정신적인 충격이 왔습니다. 내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지 않고 내가 설교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어떻게 양육하나?

그러나 한 번 두 번 설교를 하면서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결혼하는 딸들은 그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어머니 품을 떠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막상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품에서 투정하면서 지내던 날과 달리 스스로 부모가 되어 책임을 맡게 되니까, 말할 수 없는 보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에게 “스스로 작은 목회자가 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복음 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여러분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도 구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많은 자질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양육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부족합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섬기고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금문교회는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처음 누가 왔을 때, “금문교회가 차갑다.” 그런 인상을 받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안타까운 생각이 많았습니다. 한 눈에 다 보입니다. 왜 저기 처음 와서 서먹서먹한 사람을 찾아가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하나? 왜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만 식사하고 이야기 하나?

이해가 됩니다. 저들도 일주일 동안 고생하면서 지냈습니다. 교회 와서는 이제 쉬고 싶은 것입니다. 또 돌봄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감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성도들이 얼마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믿음과 헌신을 ‘영적 지렛점’으로 삼아 보다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렛대 (lever)
요약

막대를 어떤 점에서 받쳐서 그 받침점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게 한 것.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기도 하고, 작은 이동거리를 큰 이동거리로 바꿀 때 쓰인다.


설명

막대를 어떤 점에서 받쳐서 그 받침점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게 한 것.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꾸기도 하고, 작은 이동거리를 큰 이동거리로 바꿀 때 쓰인다. 큰 바위 등의 무거운 것을 움직이는 데 이용될 뿐 아니라 가위·대저울·도르래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에도 응용되고 있다. 막대를 받치고 있는 점을 지점, 힘을 가해주는 점을 역점, 물체에 힘이 작용하는 점을 작용점이라 한다. 지점에서 역점까지의 길이를 , 지점에서 작용점까지를 라 하고, 힘의 크기를 , 물체의 무게를 라 할 때 ×=×가 될 때 지레는 평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일 때 가해진 힘 보다도 더 큰 힘 가 물체에 걸리게 된다. 지점·역점·작용점 등 3점의 위치에 따라 지레의 작용은 3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림 1〕은 역점과 작용점이 지점 양단에 있는 경우이며, 장도리·대저울 등에 응용되고 있다. 〔그림 2〕는 지점과 역점이 지레 양 끝에 있고 작용점이 중간에 있는 경우이며, 병따개·깡통따개 등에 응용되고 있다. 〔그림 3〕은 지점과 작용점이 양단에 있고 역점이 중간에 있는 경우이며, 물체에 걸리는 힘은 역점에 걸린 힘보다 작아지나 이동거리가 확대되므로 미소한 움직임을 관찰하기 쉬워진다. 가위·핀셋 등은 이러한 지레작용을 응용하고 있다. 지레를 이용하여 물체를 움직이는 경우 물체에 걸리는 힘이 2배로 되면 움직여지는 거리는 반이 되므로 힘과 이동거리의 곱인 일량은 직접 물체를 움직인 경우와 같아진다.

금문교회 성도들은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합력하면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일이 크고 어려운 것일지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지렛점이 됩시다. 기쁘게 사용됩시다.

이제부터 교회 와서는 섬기는 자로 신앙생활 합시다. 한 눈에 봐도 누가 어색해 하는지, 누가 따뜻한 말이 필요한지, 누가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인지 분명합니다. 섬기는 자세가 되면 그것이 보입니다.

훈련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훈련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 말입니다. 스스로와 듣는 이를 구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 중에 분명히 ‘섬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7절).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물질적인 것, 거짓된 전통, 옛날이야기, 그런 것들입니다. 자기자랑입니다.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누구인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데, 무슨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제부터 우리는 그런 것을 다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섬기는 도’를 따르기로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Prayer
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연습, 넘어져도 다시 시도하는 훈련을 계속하렵니다. 주여,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우리 스스로와 듣는 이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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